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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화가 芝村 許龍(지촌 허룡)“한국의 서예와 전통 동양화 맥 잇는 작업에 남은 생도 진력(盡力) 다할 것”
  • 최양진 기자
  • 승인 2019.09.1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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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진. 선. 미의 요체를 거침없이 함축시킨 필력과 농담의 기맥
멋과 묵향의 매력.. 애정과 향수가 농축된 고향의 정 묘사한 서화로 정평
한미동맹친선협회 인연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한글이름족자 선물 화제

[민주신문=최양진 기자] 90세, 한 평생을 동양의 묵향이 깊숙이 베여 있는 서화에 헌신해온 지촌 허룡 선생에 대한 존경과 관심이 앙데팡당전을 전후하여 그에게 집중 조명 됐다. 

지촌 허룡 선생 그림은 동양의 대표적인 진. 선. 미의 요체를 거침없이 함축시킨 필력과 농담의 기맥속에 고고하고 멋과 묵향의 매력 때문에 애정과 향수가 농축된 고향의 정을 묘사한 서화이기에 많은 미술 애호가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마음가짐이 맑고 깨끗하면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좋아하는 일을 하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 기쁘고 행복합니다. 제 나이 89세입니다 육체의 모든 기능이 쇠락하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초유이자 아시아권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프랑스 앙데팡당전에 초대 받게 되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지촌 허룡 선생은 집념 하나로 한결같이 전통 예술의 길에 매진했다. 자산의 좌우명 한 마디를 들려주었다. “피라미드의 정상에 올라갈 수 있는 동물은 독수리와 달팽이다. 나는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 수는 없지만, 그러나 달팽이처럼 말없이 꾸준히 한 발짝 씩 정진해서 최종적으로 피라미드의 정상에 올라갈 수 있다.”

-지촌 허룡선생은 초기 서예가로서 입문했으며, 그후 문인화의 산수화 등을 섭렵하면서 일가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60년∼1970년대 한국화단은 모더니즘과 권위예술 등 추상표현주의 운동이 뜨겁게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외래문화가 봇물 터지듯 밀려왔습니다. 상대적으로 전통 동양화가 진부한 것으로 매도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국의 미술계가 외래풍으로 떠밀리고 있을 때 한국인으로서 예도의 길을 걷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독학으로 동양화에 매진 보고 분석하고 수많은 연습을 거쳐 한국의 서예와 전통 동양화의 맥을 잇는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한미동맹친선협회 자격으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을 비롯한 여러 유명인사들에게 한글 이름의 붓글씨 족자를 선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들었다.
“한미동맹의 증진과 우의 증진을 모토로 비록 국가의 인종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붓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에게 “한희숙”.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에게 “라이수”. 바웰 벨 전 주한미국사령관에게 “빅보국”. 알렉산더 버시바우 미국대사에게 “박보우”. 전월터 샤프 주한미국 사령관에게 “송한필대장” 이라는 쓴 붓글씨 족자를 선물했습니다. 한국의 예술인으로서 서양인의 마음에도 한국의 예술혼을 담게하고 한국인의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느낄수 있게 하는 귀한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화단에 투영된 허룡 선생의 한국적 전통적 역사적 업적과 의미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평생을 연구하고 터득한 동양화에 대한 이론과 실제를 전통동양화보 1.2권과 서화집을 통해  동양화 공부에 길잡이를 제공했습니다. 지난 1999년 전통화보에 제 1권을 펴낸지 꼭 8년만에 전통화보집 제 2권을 펴냈습니다. 여기에는 붓글씨로 시작하여 사군자, 문인화, 화조화, 동물화, 초충도 등을 비롯하여 문인산수화에 이르기까지 한국화의 영역을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저명한 미술평론가 김남수는 지촌 허룡의 저서 전통동양화보를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지촌 허룡의 저서 전통동양화보는 글씨와 그림을 손수 육필로 완성해 낸 역작이며, 모든 미술 지망인에게 필독의 귀중한 지침서이다. 비록 화제시와 해설은 옛 선배들의 시구를 채용했지만, 서체와 회화양식은 작가의 독창적인 경지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 높이 평가된다.”

오랫동안 한국의 미술계는 작품의 우수성보다는 대전 수상경력과 출신작가의 배경이 된  학맥중심으로 미술권력이 독점되어 왔다. 이런 풍토 속에 학맥도 없고 인맥도 없으며, 미술 공모전에 한번도 출품한 적이 없는 재야 작가가 독학으로 화단에서 인정 받는 화가가 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다. 그러나 각종 민전의 심사위원을 두루 거쳐 2002년에는 관례에도 없는 한국미술협회로부터 대한민국 미술대전의 심사위원으로 위촉을 받았으며, 현재도 고문으로 있다.

지촌 허룡선생은 1931년 충청남도 서산군에서 허후득(1895-1946)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인 허후득은 한학자였으며, 1919년 기미독립우동의 주동자였다. 항일운동의 후손으로서 부친이 50세의 젊은 나이에 독립운동의 옥중 고통으로 일찍 작고한 후, 14세의 소년가장으로 삶을 헤쳐 나갔다.

5세부터 부친에게 배운 서예와 한문실력으로 한때 서기로 공직생활을 하다가 뜻한 바 있어 서울로 상경하였으나, 계획했던 사업도 수포로 돌아가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가 35세에 자신의 주특기를 살려 서예학원을 운영하게 되었다. 후로는 가족의 싱계를 위해 38명의 화가들을 거느리고 일본으로 수출하는 동양화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직업적인 화가로서의 첫 발걸음 이였다. 생계를 위해서 어쩔수 없이 일본인 취향의 그림을 그려야 했지만, 허룡선생은 한국의 전통 화법을 고집하였다.

고독하고 외로운 자신과의 싸움속에서 나름대로 체계를 세울 화법과 서법을 탄생시킨 선생의 작품이 차츰차츰 미술애호가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앙데팡단전을 통하여 지촌 허룡선생의 묵향깊은 작품은 동양을 넘어 지구촌 미술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건강이 염려되는 90세의 고령임에도 아직도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지촌 허룡선생의 지고지순한 외길인생에 존경의 갈채가 쏟아지고 있다.


최양진 기자  100le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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