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심사서 회계방식 고의변경 인정한 듯한 발언 나와...회계전문가들 "삼성 방어논리는 감성 호소한 말장난"

4조5000억원대 분식회계 의혹에 관여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김태한 삼성 바이오로직스 대표가 지난 7월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민주신문=서종열기자] "자본잠식에 빠지게 둘 수 없어 회계처리 방식을 변경했다."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로직스) 대표가 회계변경과 관련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진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9일 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김 대표가 지금까지 삼바로직스가 주장해온 방어논리와는 다르게 진술했기 때문이다. 

회계전문가들은 이 같은 삼성 측의 발언을 접하자 "말장난에 가깝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자본잠식 위기라면 추가투자 등 다른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면서 "삼성이 사실상 회계사기를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고 전했다. 

방어논리 바뀐 삼성

삼바로직스는 지난 19일 김태한 대표의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삼바에피스)의 회계기준을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처리한 것과 관련해 "자본잠식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바이오업체인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의 부채를 반영할 경우 삼바로직스가 자본잠식에 빠질 수 있어 회계법인과 논의해 부당한 자본잠식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설명은 지금까지 삼성 측이 취해왔던 입장과는 완전히 대치된다. 삼바로직스는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의 조사 당시 "삼바에피스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적자였지만, 2015년 바이오복제약 승인을 통해 가치가 크게 올라 회계처리 방식을 바꾼 것"이라고 해명해왔기 때문이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삼성의 입장변화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영장실질심사에서 삼성이 내놓은 해명대로라면 '자본잠식 회피'를 위해 고의적으로 회계기준을 변경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삼바로직스가 고의적으로 회계사기를 저지렀다는 의미다. 

또한 삼바로직스는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부채는 공정가치, 자산은 순자산가치로 평가하는 회계기준이 부당하다"는 취지의 주장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콜옵션은 시장가치인 1조8000억원으로 평가받는데, 삼바에피스의 자산은 장부상 3000억원대에 머무르다보니 모회사인 삼바로직스까지 자본잠식 위기에 놓이게 됐다며 회계기준의 부당함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자산을 순가산가치로 평가하고, 부채는 공정가치로 반영하는 것이 국제적인 회계기준의 룰이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관게자는 "모든 기업이 똑같이 적용받는 회계기준이 나(삼성)에게 불리하니, 규칙을 바꾼 것이란 해명처럼 들린다"면서 "이런 설명은 회계기준의 불리해 회계사기를 쳤다는 설명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그룹 확산 차단이 목적?

삼바로직스의 이 같은 해명이 알려지면서 재계와 회계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이 지금까지 주장해왔던 논리를 버리고, 다른 방어논리를 내놓은 배경을 주목하고 있다. 영장실질심사에서 사실상 분식회계를 인정하는 수준의 방어논리를 편 것은 자충수로 여겨지는 만큼 삼성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오후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반도체 필수 소재 수출 규제 해결 방안 모색 차 일본으로 출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재계 일각에서는 삼바로직스가 회계사기 사건의 여파를 계열사로 국한시키고, 그룹 전체에 영향을 주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분식회계 및 회계사기 혐의를 사실상 인정하면서, 이번 사태를 삼바로직스 내부문제로 국한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는 해석이다. 

실제 삼바로직스 회계사기 사건은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성을 갖고 있다. 2015년 삼바로직스 회계기준 변경을 통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에버랜드와의 합병법인)이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수혜를 받은 이가 바로 이재용 부회장이기 때문이다. 당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통해 이 부회장은 사실상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인 삼성물산의 개인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됐다. 

검찰은 향후 이 부분에 대한 수사를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삼바로직스의 회계사기 사건의 뇌관이었던 삼바에피스의 콜옵션 부채에 대한 보고를 이 부회장이 받았다는 삼성그룹 내부 문건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평가할 수 없었다던 삼바에피스의 콜옵션의 가치를 미국의 유명투자은행인 JP모건읕 통해 평가했고, 해당 보고서도 이 부회장에게 건너간 정황도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이를 근거로 삼성그룹 지도부에 대한 단서 확보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측 관계자는 "수사팀이 관련 단서들과 증거를 추가로 확보하고 보강하고 있다"며 "삼성그룹 경영진에 대한 소환도 고민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