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ㆍ교토 제국대학 조선인 유학생 1000여명, 상당수 일본 관료 복무
해방 후 남북한 행정, 경제, 사법, 지식 체계까지 막대한 영향력 행사

▲ 정종현 ▲ 휴먼니스트 ▲ 2만원

올해는 광복 74주년을 맞는 해다. 하지만 아직까지 식민지 시대 흔적은 우리 주변에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게 서울지명으로, 아직까지도 전체 30%가 일본식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어느 분야든 아직 일본식으로 명명돼 사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관련 조사도 부족하다.

이런 가운데 일제 강점기 시절 친일 엘리트 양성소이자 조선 독립운동의 수원지였던 제국대학 조선인 유학생들을 10년간 추적해 기록한 책이 나왔다. 이 책은 식민지 시대 도쿄대와 교토대에 유학한 조선인들을 행적을 쫓았다.

추적 결과 이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해방 후 독립 국가를 세우는데 참여했고, 대한민국 설립 이후 대법관은 물론 장ㆍ차관, 국회의원, 대학총장, 경찰국장, 의대교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상당수가 제국 일본의 관료로 복무하며 친일을 했거나, 제국의 첨단 지식과 관료 경험을 밑천으로 해방 후에도 남북한의 행정, 경제, 사법, 지식 체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물론 유학 갔던 모든 이들이 당시 출세의 지름 길이였던 관료가 되지 않았다. 일부는 변혁운동에 뛰어들거나 독립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한국 엘리트의 기원

이들은 해방 후 대한민국 사회에 유무형의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들의 행적을 쫓다보면 정치부터 의료까지 사회 리더로 활동한 흔적이 엿보인다.

일제 강점기 제국대학은 일본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면서 국가 관료를 양성하는 수급처로, 조선인 유학생이 입학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상당수 조선인 졸업생은 식민지 총독부 관료로 돌아와 나리로 대접받고 일했지만, 정작 일본 본토에서는 중요한 공직자는 되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제국 최고의 엘리트이지만 식민지인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은 필연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는 조선인이 일본 본토의 제국대학으로 유학을 간 것은 출세와 식민지 중반기 설립된 경성제국대학의 부실한 교육환경 때문이라고 봤다.

해방 이후 제국대학 유학한 조선인들은 식민지 관료였거나 판검사, 혹은 교수나 사업가였던 경험을 밑천으로 해방 후에도 대한민국 행정, 사법, 교육, 경제 거의 모든 부문에서 활동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따른 영향력도 컸다. 어찌 보면 일본 제국주의의 일사불란한 관료제를 경험한 이들이 해방 후에는 새로 건설하는 대한민국에서 급한 대로 참조해야만 하는 롤 모델처럼 여겨졌을 일인지도 모른다.

특히 이들의 영향력은 지도자 부류에서는 공식적으로 부인되거나 묵살됐지만 대부분 현장 실무를 총괄하는 실질적인 역할에서 두드러진 것으로 추적됐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계보

제국시대 유학생들은 현재의 한국사회 엘리트와 계보가 이어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광복 후 57주년을 맞았던 2002년 말 제16대 대통령 선거 때 당시 야권 유력 후보인 이회창 후보다. 이 후보 집안은 본가, 외가, 처가가 모두 제국대학, 고등문관시험, 식민지 관료라는 사회자본의 종합적 구현체였다. 조부는 충남 예산의 지주였고, 백부는 교토제국대학 교수를 지냈던 이태규였다. 또 외삼촌 김성용은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해 일본 군수성 관료를 역임했다. 이 후보 장인은 일제 고등문관시험 사법과를 패스하고 해방 이후 대법원장 직무대행 및 대법관을 지낸 한성수였다. 이는 제국대학과 식민지 관료라는 사회적 자본이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제국시대 경성방직을 경영해 조선인 최고의 사업가로 인정받았던 김연수도 열다섯 살에 일본으로 유학 가 교토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그는 전라도 대지주 집안의 자제였지만 그의 사업이 항상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위기 때마다 교토대 졸업생이라는 네트워크를 활용해 위기를 넘겼다. 그 결과 그는 경성방직, 남만방적, 삼양사 등으로 사업체를 늘려가며 한국 최초의 재벌을 일구었다. 그의 친형인 김성수는 고려대 설립자이기도 하다.

역사 이해가 필요한 제국대학

이처럼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로 대접받는 인물들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의 제국대학과 만나게 된다. 저자는 일제강점기 제국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비난의 대상이 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제국대학 유학생이라는 찬란한 휘장 속에 가려진 그들의 네트워크와 현재까지 지속되는 영향력에 대한 역사적 이해라는 것.

인하대학교 교수인 저자는 10년 전 교토에서 처음 조선인유학생 명부를 보고 이들의 실체에 관심을 가졌고, 이를 정리하는 작업으로 이어갔다. 이들의 명단을 하나하나 살피며 정리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 이후 귀국해 이들의 이후 행적을 여러 자료를 종합해 하나씩 채워 넣고 서사를 발굴하다 보니 근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당초 목표는 일곱 개의 제국대학을 전수조사해 제국대학 졸업생이나 재적생의 행적을 모두 정리하는 것이었지만, 그 작업의 분량과 시간은 가늠하기 어려워 우선 제국대학 중 가장 핵심이었던 도쿄ㆍ교토 제국대학의 명부를 완성했다고 한다.

저자가 10년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제 치하에 본토에 유학했던 학생은 1000여 명이 넘는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근현대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데 중요한 사료로써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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