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대우건설·대한통운 인수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와...항공계열사 매각 후엔 금호산업·리조트만 가진 중견사 전락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지난 2017년 11월28일 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그룹 본사에서 금호홀딩스와 금호고속 합병완료 소식을 전하며 그룹재건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뉴시스

[민주신문=서종열 기자]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을 중심으로 그룹재건을 추진하겠다."

지난 2017년 11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룹재건의 마지막 퍼즐로 여겨졌던 금호타이어 인수를 포기하면서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을 중심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을 경영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박 회장의 이 약속은 단 15개월만에 공염불이 됐다. 지난 15일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기로 결정해서다.

15일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따르면 금호산업은 의사회를 열어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금호산업은 현재 아시아나항공 지분 33.47%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매각방식은 지분매각과 3자 유상증자를 묶은 방식이다. 또한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인 에어부산과 에어서울도 같이 '통매각'할 계획이다.

재계에서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아시아나항공 등 항공게열사들을 통매각하게 되면 연매출액 2조원대의 중견사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2008년 재계서열 7위로 올라서며, 업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사실상 중견사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대형 M&A 이후 승자의 저주로 그룹해체 위기

2000년대 중반만 해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재무상황은 그야말로 탄탄했다. 캐시카우인 금호석유화학을 기반으로 건설과 물류, 금융에 이르기까지 계열사들이 제몫을 제대로 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재계서열은 10위권이었다.

변화는 2006년 11월부터 시작됐다. 당시 박삼구 회장 등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진은 대우건설을 6조4255억원, 2008년에는 대한통운을 4조1040억원에 인수했다. 이 두 차례의 인수합병(M&A)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재계서열 7위로 퀀텀점프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2007년 대우건설의 사옥이던 대우센터빌딩(현 서울스퀘어빌딩)을 모건스탠리에(9600억원) 매각했다. 사진=민주신문DB

문제는 먼저 인수한 대우건설에서 시작됐다. 당시 박삼구 회장은 대우건설 인수 과정에 총 6조4000억원을 들였다. 이중 절반이 넘는 3조5000억원이 재무적투자자(FI)들의 투자금이었다. 박 회장은 FI들에게 대우건설 인수 후 3년 뒤인 2009년 말까지 주가가 3만2000원(인수당시 주가 2만6000원)이 되지 안을 경우 해당 가격에 주식을 되사겠다는 풋백옵션을 체결했다.

그러나 2006년 미국에서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2008년 금융위기로 재탄생하며 위기감이 커졌고, 대우건설 주가는 인수당시 가격보다 낮은 1만원대에에서 오갔다. 결국 투자자들은 2009년 말 박 회장 등 경영진에게 풋백옵션을 행사했다. 당시 폿백옵션 행사 금액만 4조2000억원에 달할 정도였다.

별다른 해결책이 없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결국 엄청난 자금을 들여 인수했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다시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금호가(家)는 박삼구 회장과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다투는 '형제의 난'을 연출하기도 했다.

유동성 위기에 형제의 난까지 겪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결국 2009년 그룹 전체가 워크아웃과 채권단 자율협약에 편입됐다. 사실상 그룹해체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그룹재건에 동원된 아시아나

그룹이 어려움에 처하자 아시아나항공의 상황도 급격하게 악화됐다. 그룹의 주력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 역시 대우건설·대한통운 인수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는데, 이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당시 아시아나항공은 대우건설 인수전에 2500억원의 현금을 갹출했으며, 대한통운 인수과정에서는 1조4000억원을 투입했다. 이중 대한통운 인수전에서 투입한 자금 중 1조2500억원을 외부차입금이었다.

실제 2006년만 해도 외부차입금이 2조원대였던 아시아나항공은 2008년 차입금 규모가 4조원을 돌파했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금융위기가 터지자 아시아나항공의 모기업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위기를 맞았다. 그룹 차원의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결국 2009년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등 주력계열사들이 잇달아 워크아웃을 신청했으며, 아시아나항공도 결국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으며 위기를 맞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15일 금호산업 이사회 의결을 통해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을 결정했다. 사진=뉴시스

그러나 위기는 해결되지 않았다. 높은 차입금과 악화된 재무상황은 아시아나항공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기존 차입금을 갚기 위해 더 높은 이율의 차입금을 빌리는 '돌려막기'가 시작된 것이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한 영구채는 최초 이자율이 8.5%에 달할 정도였다.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지자 경영진들은 미래에 발생할 매출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 2014년 발행한 2조원대 규모의 ABS(자산유동화증권)이 대표적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해당 ABS 발행액 중 1조2000억원 정도가 상환되지 않은 상태다.

그렇다면 아시아나항공의 부채 규모는 얼마일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지난해 말 아시아나항공의 감사보고서를 확인해보면 금융권에서 대출받은 차입금은 4076억원에 불과하다. 1년 이상 단기차입금이 961억원이며, 1년 이상 장기차입금은 3115억원 수준이다.

문제는 ABS 발행잔액이다. 앞서 밝힌 것처럼 ABS발행 잔액이 무려 1조2474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항공기 금융리스부채가 1조4154억원이다. 단순계산해도 부채가 2조7000억원대에 달한다.

게다가 4월부터 회사채들의 만기가 돌아온다. 당장 4월에만 600억원의 회사채를 시작으로 2023년까지 상황해야 할 회사채 규모를 기존 부채와 더하면 3조원을 훌쩍 넘는다. 아시아나항공이 통째로 매각되도 최소 1~2조원대의 자금이 필요한 상황인 셈이다.

재계7위에서 중견사 전락하나

결국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5일 금호산업 의사회를 열어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결정했다. 그룹의 가장 중요한 계열사였던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을 포기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박삼구(가운데)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지난해 7월 '기내식 대란'과 관련한 긴급 기자회견에서 사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렇게 될 경우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사실상 그룹사로 불리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덩치를 자랑하는 아시아나항공이 빠질 경우 그룹사로 불릴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말 기준 별도 자산규모는 6조920억원이다. 그룹 총자산이 11조4894억원이란 점을 감안하면 그룹자산의 60%를 넘어선다.

재계서열 50위권 밖의 그룹들과 비교해도 규모가 작아지게 된다. 아시아나항공을 제외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자산규모는 4조5000억원대에 불과한데, 지난해 재계서열 59위에 이름을 올린 유진(5조3000억원), 60위 한솔(5조1000억원)그룹보다 더 작아지기 때문이다. 매출액을 기준으로 잡아도 금호산업과 금호고속의 총액 매출액은 2조원이 되지 않는다.

재계 한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의 '감사보고서' 한정의견이 항공사 매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면서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할 경우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과거처럼 금호그룹으로 불려야 할 지 모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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