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맞닿은 참상 제발 알아달라”

▲ 지난 4월 25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가운데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촉구를 위한 증언대회’에서 김태진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대표의 모습.

북한에서는 범죄를 저지르면 범죄자를 비롯해 그의 가족까지 모두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된다. 정치범수용소에서는 지금도 고된 노동뿐만 아니라 폭행, 고문이 행해지고 있다. 이것은 아무것도 모른 채 가족에 의해 끌려온 어린 아이들에게도 해당된다. 북한에서 아동들의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사이에도 남한은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북한의 실상을 남한에 알리기 위해 김태진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대표는 오늘도 묵묵히 달리고 있다.

가족 따라 중노동 하는 아동, 병원서 쉬기 위해 ‘못’ 삼키기도 ‘충격’
수감생활 인원 최대 ‘20만명’-한국인 북한 인권 실태 인지 조차 못해


Q. 대표님과 사단법인 북한민주화운동본부에 대해 소개해달라.

A. 탈북 전 합성 가죽을 만드는 회사에서 근무를 하다 우연히 노동신문에 실린 남한 학생들의 데모 사진을 보고 북한에서 존재하고 있지 않은 자유가 남한에는 있다고 깨달았다. 그래서 탈북을 결심, 1985년 탈북해 1986년 3월부터 중국에 정착, 16개월 동안 살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강제 북송 뒤에는 1988년 3월 여독 수용소에서 수감 생활을 시작했으며 1992년 수용소 생활을 마감 후 1994년 김일성 죽음 후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1997년 다시 탈북을 시도했다. 그 뒤 중국에서 머물다 2001년에 남한에 입국했다.

2003년 출범 당시 정치범수용소 생존자들이 수용소 상황을 알리기 위해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운동본부’로 시작, 현재는 사단법인 북한민주화운동본부가 됐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외에도 북한 주민의 참상을 남한에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수용소 생활을 한 새터민으로 이뤄진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본부 또한 운영하고 있다. 두 본부는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매번 새로운 문제를 제기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증인의 입장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정치범수용소에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일을 하고 있다.

Q. 특별히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본부에서 아동인권에 주목하는 이유와 수용소의 모습에 대해 설명해달라.

A. 일반적인 국가에서는 아이는 감옥생활에서 배제되고 범죄자가 아이를 데리고 감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으며 수감생활 중 출산을 하더라도 아이를 감옥에서 내보낸다. 하지만 북한은 3대까지 모두 수감생활을 한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가 잡혀갔다고 치자. 그렇다면 할머니는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 등 아버지 형제와 며느리, 아이들까지 잡아간다. 그렇게 수감생활을 하는 인원이 어림잡아 15~20만 명이나 된다. 수용소 안에서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도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주고 일을 제대로 못하면 때린다. 수용소에서 아이들과 분리돼 생활해서 잘 모르겠지만 목격 당시 몸보다 큰 나무나 돌을 지고 옮기는 등 어른들도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하며,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때리기도 한다.

남한에서 수용소 안에서의 인권 문제가 폭행과 고문이 부각돼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노동과 감시 속에서 그 곳에 평생 갇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수용소에서는 “너는 처단되어야 할 사람인데 살고 있으니 감사하게 생각하고 일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수용소에서 사람이 갇혀 지내다 보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고단하고 심지어 병원에 가서 쉬기 위해 못을 삼키기도 한다. 그렇게 힘든 생활을 아이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 이에 대해 본부는 수용소 안 아동들의 참상과 관련해 단계적으로 설명하려고 하고 있다.

Q. 북한 내의 인권 실태와 민주화 운동의 움직임이 있었다면.

A. 일정한 휴일이 있는 남한과 달리 북한은 3일을 일을 쉬게 되면 경찰이 들이닥쳐 강제노동을 시킨다. 또한 북한은 다른 ‘도’(지역)로 이동할 때 통행증이 발급되는데 경조사와 7일간의 휴가 때만 발급된다. 하지만 휴가를 위한 통행증 발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가정하면 아버지의 부음을 증명할 수 있는 ‘사망 확인증’이 필요하다. 여러 단계를 거치다 보니 통행증을 발급 받아 이동했을 때 이미 장례는 끝난 상황이다. 결론적으로 통행증은 북한 내에서는 거의 사용 할 수 없다.
북한은 사유재산이 없는 등 ‘국민을 위한 정책을 하는 나라’로 국민들에게 인식돼 있다. 1997년 탈북 하기 전까지만 해도 데모를 일으킨다면 국민의 행복을 빼앗아가려는 미국이나 남한 등 자본주의 국가들의 행동으로 인식돼 있기 때문에 데모를 일으키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 이유는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승인한 단체외에 다른 단체는 만들 수 없다 북한에서는 10~11살 되면 소년단이라는 조직에 강제로 들면서 계속해서 조직생활을 하게 된다. 북한 전체가 노예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Q. 북한 민주화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와 당국·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남쪽도 민주화가 제대로 되지 않는데 북한은 민주화까지 한창 멀었다. 북한 주민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으며 끝까지 농민이어야 한다. 우선 그것에 대해 사실인지 알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만이라도 가져주는 것이 첫 시작이 아닐까 싶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데 민주화에 관심을 갖자고 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때 가서 단계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단은 인권 문제에 대한 인식이 시작이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GDP(국내총생산)에 비해 생활 만족도가 낮고 미래에 대해 암울하게 생각한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도 통일이 되면 살기 힘들어진다고 말하는 등 전반적으로 남한에서 통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가에서는 ‘일자리 창출’과 같은 통일이 되면 좋은 점 등을 담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배포하고 국민들에게 인식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국민이 그런 점에 대해 알고 싶다고 말을 잘 하지 않으니 전혀 모른다. 또 현재 북한의 모습을 말하는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탈북자와 이들 중 성공한 사례 등을 새로운 내용을 담은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장민서 기자 kireida8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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