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일대 불법영업 양은이파 잔당 일제검거


 

▲     © 민주신문

조양은 후계자 김모씨 풀싸롱 운영 331억 벌어
대형 유흥업소 운영하며 폭행·금품갈취 일삼아
양은이파 전 보스 조양은 재조명되며 관심끌어

 70~80년대 서방파, OB파와 함께 전국3대 폭력조직 중 하나로 악명 높았던 양은이파 일당이 일제히 검거됐다. 검찰에 따르면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이 직접 후계자로 지목한 김모씨가 이끌어 온 양은이파 잔당은, 최근 서울 강남에서 불법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며 벌어들인 수익으로 불법사채까지 손을 대며 연간 33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는등 기승을 부린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이들에 대한 일망타진과 함께 전 두목이었던 조양은과 수사과정에서 가수 출신 박모씨가 온라인상에 화제가 되며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양은이파 강남일대 성매매?폭행등으로 331억 벌어

 지난 2일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최희종)는 조양은(61)의 후계자 김모씨(50) 등 양은이파 조직원 4명을 불법 유흥주점과 모텔을 소유·운영하면서 폭행·금품갈취와 함께 성매매 알선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80년대 유명 그룹 맴버로 활동한 가수 박모씨(51) 등 2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종적을 감춘 조직원 2명에 대해 지명수배했다. 교도소 경비교도대에서 군복무 중이었던 김씨는 수감생활을 하고 있던 조씨에 눈에 띄여 양은이파에 가입했으며 그 뒤 2009년 조씨로부터 공식 후계자로 지목됐었다.
 김씨는 ‘양은이파 재건’을 위해 부두목 정모씨(46)와 함께 서울의 폭력배 40여명을 집결시켜 지난 2010년부터 강남 역삼동 소재 룸살롱 4곳과 성매매 숙박업소 한데 모아 영업하는 ‘풀싸롱’을 운영했다.
 김씨가 운영한 풀싸롱은 지하 2층, 지상 6층짜리 건물에 지하 2층에서 지상 2층은 룸싸롱, 지상 3층부터 6층까지는 모텔을 차려 건물 전체를 돈을 벌어들이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또한 여종업원을 비롯해 영업사장, 실장 등을 고용하는 등 기업형으로 치밀하게 운영했다. 특히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풀싸롱 영업으로 벌어들인 매출이 총 331억원으로, 이 중 순수익은 78억원이었다. 수익이 엄청난데도 불구하고 김씨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김씨는 건물의 창고 등지에서 영업 부진과 위생상태, 관리 불량 등을 이유로 들어 4곳의 영업 사장을 불러 폭행을 가하고 영업사장으로부터 5000만원을 호가하는 BMW 645Ci 차량을 탈취했다. 또 영업 손실금 8억원을 메우라며 각서를 쓰도록 이들에게 강요를 하기도 했다. 김씨의 악행은 직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김씨는 자신으로부터 2억4000만원을 빌린 채무자가 돈을 갚지 못하고 있자 조직원을 시켜 둔기로 폭행하고 약 보름동안 감금해 8억원 상당의 양식장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받아내 빼앗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풀싸롱 실내장식 업자들이 공사비를 부풀려 받아냈다고 트집을 잡아 미지급 공사금 1억4500만원을 포기하게 하고 이미 지급한 공사금 2억4000만원 또한 강제로 되돌려 받는 등 그 수법 또한 악랄했다. 

▲김씨 자서전 통해 숨겨진 조양은 과거 범죄행위 드러나

 검찰은 김씨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김씨가 직접 쓴 100여장 분량의 자서전을 입수, 새로운 정황을 포착했다. ‘순천 교도소로 이송된 조양은은 1989년 3월쯤 나와 심씨에게 면회를 오라고 지시했다. 교도소 보안과 앞뜰에서 조양은은 심씨와 나에게 “서울에서 박씨를 손 좀 봐주라”고 전했다. 이는 김씨가 지난 2004년 수감시절에 쓴 내용으로, 여기서 조씨가 김씨에게 부두목인 박모씨를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린 정황을 알 수 있다.
 김씨는 조직원인 심씨와 함께 서울 독산동 소재 한 유흥주점에서 부두목이자 조직의 배신자인 박씨를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전치 11주의 중상을 입혔으며, 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15년을 구형받고 수감생활을 한 뒤 2005년 출소했다.
 범행이 발생한 지 7년 후 폭력 및 밀수 등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상태였던 조씨 또한 검찰에서는 이 사건의 배후에 대해 조씨가 있었다고 판단, 1996년 9월쯤 조씨에 대해 살인미수를 추가했다.
 하지만 재판에서 조씨의 증인으로 참석한 김씨는 “개인적으로 앙심을 품고 저지른 범행이며, 조씨와는 무관한 일”이라며 일축했다. 이에 재판부는 김씨의 위증에 따라 조씨와 관련없는 범행이라고 결론 내리고 다른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이에대해 조씨나 김씨에 대한 처벌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의 자서전을 통해 조양은의 살해지시 여부가 확인됐으나 조씨의 살인미수 사건은 공소시효가 끝났으며 현행법상 무죄 판결은 재심사유가 되지 않기 때문에 처벌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김씨의 자서전의 제목은 ‘보스의 전설은 없다’, 부제는 ‘조양은의 허상’으로, 제목과 부제로 하여금 김씨가 수감시절 조씨에 대한 불만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검찰 조사에서 김씨는 자신의 자서전에 대해 “조양은과의 사이가 삐끗거릴 때 끄적인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의 말처럼 자서전의 주된 내용은 복종하고 충신처럼 따랐던 자신에 대해 별다른 보답이 없었던 조양은에 대한 불평이다. 이와 함께 모 언론사에서 보도했던 과거 조씨의 부하 증언에 따르면 조씨 대신 감방에 들어간 부하 조직원의 형기를 합치면 200년이 넘는다고 말했다. 이를 유추해보면 조씨는 자신을 믿고 따랐던 부하들을 잘 챙기지 않은 이기적인 ‘보스’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 조양은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보스"에서의 한 장면.     © 민주신문


▲전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 다시 관심모아

 이번 김씨의 검거에 따라 발생함에 따라 대중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조양은 또한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조씨는 1970~80년대 김태촌의 서방파, 이동재의 OB파와 함께 국내 ‘어둠의 세계’를 주름잡던 양은이파의 보스이다.
 전남 담양 출신인 그는 1975년 1월2일 서울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신상사파를 공격한 이른바 ‘명동 사보이호텔 기습 사건’에 성공, 서울 주먹계의 새로운 별로 떠올랐다. 이후 지방의 세력들을 합쳐 양은이파를 창설, 주먹계의 최강자로 군림하게 됐다.
 1980년 신군부가 범죄 조직과의 전쟁을 선언함에 따라 조양은은 범죄단체조직 등의 혐의로 구속돼 15년형을 선고를 받고 1995년 만기 출소 후 17살의 연하로 동시통역을 하고 있던 미모의 재원 김소영씨와 식을 올려 세간의 화제를 낳기도 했다.
 아울러 자신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보스’ 의 제작, 출연을 했고 영화에는 자신의 부인인 김씨와 조용기 목사, 연예인 독고영재, 김수미 씨 등 쟁쟁한 스타들이 대거 참여했다. 또 교회를 다니면서 간증 행사에 참여하고, TV에도 자주 얼굴을 보이며 과거를 깨끗이 씻은 듯 보여졌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도 오래가지 못했다. 조씨는 1996년 8월 필로폰 밀반입 시도와 조직원 살해 지시 등 10개의 혐의로 다시 구속됐고, 이후 관세법 등 비교적 가벼운 혐의 5개만 인정돼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출소했다.
 출소한 조씨는 “신앙생활에 전념하겠다”며 신학교에 입학하고 노숙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을 벌이는 한편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으나 필리핀 등지에서 상습 도박을 한 것으로 밝혀져 다시 교도소에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조양은은 그 후에도 교도소를 들락날락 거렸다. 2005년 10월 초 서울 역삼동의 한 유흥주점에서 후배 황모씨가 말대꾸를 했다는 이유로 격분해 황씨에게 재떨이를 던져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힌 혐의로 2년 후인 2007년 4월 중순 구속 기소됐다. 또 지난해 5월31일에는 자신의 지인으로부터 17억을 빌려간 트로트 가수에게 돈을 갚으라며 협박한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기도 했다. 

▲김씨가 제2의 조양은이 되고자 한 이유
 그렇다면 왜 김씨는 자기 자신이 제2의 조양은이 돼 세력이 많이 약해진 양은이파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한 것일까? 현재 전국에는 이름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무수한 조직폭력단이 존재하고 있다. 양은이파, 서방파, OB파 등 3강 구도를 형성한 대형 조직이 한 시대를 움켜줬던 과거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이는 ‘시대적’인 이유가 크게 작용한다. 한때 통치자였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군사정권이다. 독재군사정권이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다 보니 국내의 조폭들은 힘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 초부터 조폭들을 잡아들였으며 유신정권 이후 조폭단체의 목을 조였으니 어찌보면 조폭탄압정책(?)을 썼던 박정희 집권 속에서 살아남았던 양은이파나 서방파는 어찌보면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박정희의 바통을 받아 전두환 정권은 더욱 더 무자비했다.
 전두환은 1980년 집권하자마자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어 자신이 갖고 있는 막강한 군부 통수권으로 동네에서 놀던 건달 또한 모조리 잡아들여 삼청교육대로 집어넣고 한국 군대의 뜨거운 맛을 보여줬다. 굳건했던 양은이파도 전두환의 절대적인 힘에 의해 ‘바람앞의 등불’인 처지가 됐다. 이때 조양은은 범죄단체 조직 등에 대한 혐의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징역형을 모두 채우고 나온 조양은 자신의 업무에 바로 복귀하지 않고 외도를 여러 차례 시도했다. 영화 제작자 및 연기자의 모습을 보여줬으며 TV 토크쇼에 출연하기도 했다. 또 불량 청소년을 선도하고 신학교에 입학해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되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조직은 자연스럽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조양은 스스로도 여러 차례 수감 생활을 했다. 조씨가 혐의를 보면 필로폰 밀반입 시도, 상습 도박, 상해죄 등 비교적 가벼운 죄에 해당된다. 거대 조직의 수장인 조씨와는 뭔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이는 국내 공권력이 조씨에게 보내는 ‘경고’로 풀이된다. 조씨가 무슨 일을 하든 언제든지 다시 구속 할 수 있다는 메시지이다. 보스의 부재로 양은이파의 부하들도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떤 이는 양은이파에 존속돼 있고 어떤 이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사회로 나와 일반 직장인처럼 일을 하기 시작했다.
 양은이파의 소속돼 있으며 조씨의 충실한 부하였던 김씨는 이미 조씨로부터 ‘후계자’로 지목됐었다. 게다가 조씨는 사실상 은퇴함으로써 크게 멀게만 느껴졌던 ‘보스’의 자리가 자신이 손을 내밀면 닿을 수 있을 만큼의 자리로 보였던 것이다.
 조양은 밑에서 보고 그대로 습득했던 김씨는 조직의 재건을 위한 경제력을 충당하기 위해 조씨와 같은 행동을 했다. 특히 조폭이 눈에 띄게 활동하지 않는 불경기인 요즘 조씨의 범행은 더 악랄하게 보여졌다. 

▲네티즌 “가수 박모씨? 박상철? 도대체 누구?”

 김씨와 함께 네티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양은이파 재건에 가담한 가수 박모씨의 정체였다. 검찰의 발표에 따르면 박씨는 1980년대 인기그룹 ‘강병철과 삼태기’의 맴버인 박기상씨로 드러났다. 강병철을 주축으로 구성된 남성 4인조 그룹인 ‘강병철과 삼태기’는 가요와 농악을 접목시킨 곡을 내세워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었다가 1988년 강병철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서서히 대중들의 기억속에 잊혀져 갔다.
 세월이 흘러 1997년 6월 박기상의 이름이 다시 한번 대중들에게 나타난다. 박기상이 사기혐의로 구속된 것. 당시 사건을 보도한 모 언론사에 따르면 박기상은 거울 청담동 소재 무허가 단란주점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양모씨에게 점근해 허가를 받은 단란주점의 평균 수입이 7000만원이라고 속이고 양씨로부터 동업자금으로 3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았다.
 한편 박모씨가 박기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웃지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초 언론에서 ‘유명 트로트 가수 박모씨’라고 보도되자 많은 네티즌들은 박모씨가 가수 박상철이라고 지목했다. 그러나 박상철은 2000년에 데뷔,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가수로 ‘80년대 그룹으로 활동한 가수’의 범주에서 많이 벗어난다.
 이에 대해 한 방송사의 인터뷰에서 박상철은 “인터넷이 무섭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게재함으로 인해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고통과 큰 충격을 받을지 생각해줬으면 한다”고 억울함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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