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바다에서의 도전과 성공(25)

<‘황금가스전’을 시작하며>

황금의 나라 미얀마에서 미얀마어로 ‘황금’이라는 뜻을 가진 ‘쉐(Shwe)’가스전은 국내 석유개발업계가 지난 수십 년간 해외에서 발견한 유전·가스전 중 최대 규모다. 또한 쉐 가스전은 프로젝트 선정에서부터 개발·생산까지의 모든 과정을 한국 자체의 기술력과 인력으로 주도해 온 프로젝트다.

미얀마 전역의 자료를 검토하여 광구를 선정하는 작업에서부터 탐사작업과 시추작업은 물론이고 파트너 영입, 가스전 발견 후의 평가작업, 그 이후에 진행된 가스판매를 위한 협상과 계약, 가스전 개발계획과 시공사 선정, 개발작업 감독, 생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외국 회사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실시하였다는 점에서 국내 석유개발업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이 가스를 발견한 미얀마 서부 해상 지역은 1970년대 미국과 프랑스, 일본 회사들이 탐사를 하여 유전이나 가스전 발견에 실패하고 철수한 후 20년 이상 어느 외국 회사도 관심을 두지 않던 버려진 지역이었다. 외국의 유수한 회사들이 탐사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지역의 자료를 분석한 끝에 가스 발견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탐사개념을 도입하고 이를 근거로 인공지진파 탐사와 시추를 실시하여 세계적 규모의 대규모 가스전을 발견하게 되었다.

탐사작업을 하는 동안 여러 가지 난관에도 부닥쳤다. 사업에 공동으로 참여하던 인도 파트너들이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철수한 상황에서도 단독위험부담으로 측면시추를 강행하여 가스전 발견에 성공하였던 일도 그 중의 하나다. 탐사가 진행되는 동안의 일련의 긴장된 순간들 뿐만아니라, 그 이후 진행된 가스판매를 둘러싼 치열한 협상과정, 막대한 투자비가 들어간 가스전 개발을 위한 준비작업과 개발공사 중 일어난 여러 가지 어려움 등 실로 긴박한 과정을 거쳐 왔다.

이러한 소중한 경험들을 독자들과 나누어, 석유자원에 대한 중요성과 개발의 필요성에 공감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미얀마 가스전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 석유개발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석유개발에 관한 지식도 간간히 소개하였다. 그 동안 미얀마 가스전 사업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온 모든 동료들과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여러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한 자료와 사진을 제공하고 원고를 검토해 주고 그래픽을 도와주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원고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특별하고 마움을 주신 분들은 실명과 당시의 직급을 언급하였는데, 사전에 양해를 구하지 않았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미얀마 쉐 가스전은 원유 약 7억6000만 배럴, LNG 약 8200만 톤 규모다. 사진=포스코대우

컨소시엄 또는 합작회사를 위한 계약

둘째, 석유탐사는 리스크가 높은 사업이니만큼 한 회사가 단독으로 추진하는 경우보다 몇 개의 회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하거나 합작 회사의 형태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산유국으로부터 광권을 취득할 때부터 광권 지분을 나누어 취득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회사가 100% 광권을 취득한 후 나중에 공동투자자를 영입한 경우 광권의 권리를 나누는 지분 양도계약을 체결한다.

공동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합작회사가 아닌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사업을 할 경우 실질적인 작업은 운영권자에게 위임하며, 각 참여사는 투자자로서 지분 비율만큼 권리를 행사한다. 사전에 운영권자와 각 참여사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공동운영계약(JOA, Joint Operating Agreement)을 체결하는 것은 당연하다.

합작회사를 설립할 경우 공동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각 회사에서 파견된 인원으로 회사의 조직을 구성하여 업무를 수행한다. 참여사들은 합작회사의 주주가 되며, 주주계약(SHA, Shareholders Agreement)을 통해 주주들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회사 경영에 대한 제반사항을 규정한다.

대우인터내셔널은 미얀마 프로젝트 컨소시엄의 운영권자로 사업을 주관해왔다. 인도의 두 국영기업인 ONGC와 GAIL, 우리나라의 한국가스공사를 공동투자자 파트너로 영입하여 참여시켰지만 영입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으며,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파트너들과의 합의 실패로 사업이 무산될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대우는 이 모든 위기를 극복하고 운영권자로서의 기술력과 운영 능력을 과시하며 사업의 성공을 이끌어냈다.

수익성과 직결되는 판매계약

셋째, 생산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가스의 판매계약 역시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석유개발사업 전체의 수익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원유의 경우는 비교적 운송이 간편하기 때문에 일부 장기 계약에 따라 팔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현물 또는 선물시장에서 판매하게 된다.

하지만 가스의 경우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장거리 가스관을 통하거나 LNG의 형태로 운송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장기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다. 가스관을 이용한 판매의 경우 가스판매계약서(GSA, Gas Sales Agreement)라고 불리며, LNG의 경우에는 주로 판매구매계약서(SPA, Sales and Purchase Agreement)로 불린다.

황금가스전의 가스를 어디에 어떻게 판매할 것인가?

여기서는 가스판매를 위해 우리가 겪어야 했던 치열한 협상 과정을 얘기하고자 한다. 천연가스는 기체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가스관을 통해야만 수송이 가능하며, 선박을 이용해 수송하고자 하면 액화 상태, 즉 LNG(Liquefied Natural Gas)로 전환해야 한다.

따라서 인근에 수요처가 없을 경우 수요처까지 장거리 가스관을 건설하거나 LNG를 만들기 위한 액화시설을 건설해야 하기 때문에 상품으로 판매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투자비도 많이 든다.

미얀마 해상 플랫폼. 사진=뉴시스

가스판매를 위한 계획과 준비

A-1광구의 참여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타당성 조사를 시작할 때, 우리는 원유보다 가스를 발견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봤기 때문에 가스 수요처에 대한 검토도 진행했다.

당초에 검토했던 계획은 두 가지였다. 방글라데시를 경유하는 장거리 가스관을 건설해 인도 동부 캘커타 지역으로 가스를 판매하는 방안과 가스전 인근 지역에 액화 플랜트를 건설해 LNG로 만들어서 한국에 판매하는 방안이었다. 수요처를 발굴해 가스를 안정적으로 그리고 적정한 가격에 판매하는 것은 가스를 발견한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가스 판매를 위한 협상과 계약을 전담하기 위한 전문가가 필요한 상황이어서, 우리 회사 싱가포르법인에서 석유제품 무역을 담당하고 있던 최종빈 부장을 미얀마 E&P 사무소에 합류시켜 가스 판매 업무를 전담하게 했다. 최 부장이 주축이 돼 외부의 E&P 전문 로펌의 변호사와 회사 내에서 선발된 법률, 회계, 경제성 분석 전문 직원들로 구성된 전담팀을 조직했다.

우리가 개발한 가스를 한국에 팔 수 있을까?

한국은 LNG 수입량으로 볼 때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2위의 수입국이다. 미얀마에서 가스를 발견한 이후 우리의 최대 관심은 한국으로 LNG를 판매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정부가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국내 석유개발회사에게 여러 가지 정책적인 배려를 해주는 등 에너지 자원 개발에 관심이 높았던 시기다. 우리는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직접 발견한 천연가스를 한국으로 도입하는 데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에 가스를 판매하기 위해 우리는 LNG 방식 개발에 대한 타당성 조사에 착수했다. 미얀마 가스전에서 나오는 천연가스를 인근 육지의 LNG 플랜트에서 액화한 뒤, LNG 선박을 이용해 장거리 수요자에게 수송하는 것에 대한 검토였다. 조사 결과 우리가 발견한 가스의 부존량으로는 350만톤 규모의 LNG 설비 건설이 가능하며 사업적 타당성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미국의 경제재제로 인해 미국 기업이 특허 기술을 가지고 있는 LNG 방식 개발이 어려울 경우, 대안으로 독일 기술을 사용한 LNG 플랜트 건설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 다음 우리는 LNG를 한국에 판매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봤다.

한국 정부와 한국가스공사에 판매 가능성을 타진했더니 문제가 있었다. 당시의 LNG 시장 상황이 구매자 우선시장(buyer’s market)이라는 점이었다. LNG를 구매하려는 수요자보다 LNG를 공급하려는 판매자가 더 많아, 수요자가 우위의 지위에 있었던 것이다.

한국 기업에 의해 미얀마에서 발견된 가스전으로부터 LNG가 공급되는, 국내 자원개발사에서 의미가 있는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시장 상황에서 한국 정부나 한국가스공사는 적극적인 도입 의지를 보이기 힘들었던 것 같다. 더구나 미얀마 정부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경제제재를 받는 상황이어서 한국 정부나 한국가스공사의 어떠한 지원이나 약속도 받을 수 없었다.

대규모 가스전을 개발하는 경우 대개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인 협의가 이뤄진다. 인도와 중국, 태국 등 장거리 가스관을 통해 가스를 구매할 수 있는 국가들이 미얀마 정부에 매우 적극적인 구매 의사를 표명하는 데 반해, 한국 정부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LNG 개발 방식을 보류할 수 밖에 없었다.

쉐 가스전의 평가정 시추에서 가스층 확인에 성공한 후 산출시험을 실시하는 장면. 사진=저자 제공

방글라데시 경유 가스관 통해 인도에 가스판매 추진

인도는 10억 이상의 인구를 가진 거대한 가스 소비시장으로, 자국 내에서 가스를 생산하고 있지만 공급이 수요에 크게 못 미쳐 외국으로부터의 가스 수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국가다. 이란에서 파키스탄을 경유하는 가스관으로 가스를 수입하려는 계획이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성사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LNG 도입도 진행되고 있었지만 인근 국가인 미얀마로부터 방글라데시를 경유해 가스를 도입할 수 있다면, 인도 입장에서는 비교적 저렴한 운송비를 부담하고 가스를 구입할 수 있었다.

방글라데시의 입장에서도 미얀마로부터 자국을 경유해 인도로 가는 가스관이 건설되면 투자비를 전혀 부담하지 않고도 가스관 통과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국가 재정에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우리가 쉐 가스전을 발견하자 방글라데시를 경유해 인도에 천연가스를 판매하는 계획에 대해 구체적인 협의가 시작됐다. 2004년 가스를 발견한 이후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미얀마, 인도, 방글라데시 3국간의 협상이 양곤에서 개최됐다. 삼각형 형태로 테이블을 배치해 3개 국가 대표단이 배석한 협상 장소에 대우인터내셔널은 미얀마 정부 쪽 테이블 뒤의 좌석에 옵저버로 참석했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가스를 발견한 우리 회사는 배제된 상태로 미얀마 정부는 물론이고 구매 예정자인 인도 정부와 가스관이 경유하게 될 방글라데시 정부의 대표단들이 가스전 개발 일정이나 가스 가격 등에 대해 목청을 높이며 서로의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참다못해 미얀마 정부 대표를 통해 발언권을 얻은 후 필자는 “3개국이 정부 차원에서 가스판매에 대해 협의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가스전 개발 일정과 가스 가격에 대해서는 3개국 정부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고 가스전을 개발할 회사와 협의해야 할 사항입니다”라고 가스전 운영권자로서 대우의 입장을 분명히 표명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대표단이 “여기는 3개국 정부의 협상 테이블이기 때문에 일개 민간 회사가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닙니다”라며 면박을 줬다. 하지만 필자는 물러서지 않고 “가스전 개발을 2010년까지 해야 한다는데 이것은 3개국 정부가 정할 사항이 아닙니다. 운영권자가 평가와 개발에 얼마나 소요될지 종합적으로 판단한 다음에 결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적정한 가스 가격이 보장되지 않으면 우리는 가스전을 개발할 수 없습니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필자는 미얀마 가스전 개발 프로젝트가 정부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상업적 프로젝트임을 분명히 밝혔다. 가스를 판매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필자의 발언에 인도 대표단과 방글라데시 대표단이 발끈해 미얀마 대표단에게 항의를 하기도 했다.

미얀마 대표단은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 회의 장소에서 나가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하는 해프닝까지 발생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미얀마-인도간의 가스관이 방글라데시를 경유하게 되는 것에 대해 대단한 특권을 행사할 기회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가스관 경유대가로 적절한 통과료를 받게 되면 투자비를 전혀 들이지 않고도 25년 이상 상당한 수입을 올릴 수 있음에도, 방글라데시 정부는 지나치게 과도한 통과료를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가스관이 자국을 지나가는 조건으로 인도 정부에 대해, 네팔과 부탄 등 인근 국가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정치적인 요구까지 했다.

1년 이상 협상이 이어졌으나 방글라데시 정부의 무리한 요구로 인해 미얀마 정부와 인도 정부는 결국 방글라데시를 경유하는 가스관 건설 계획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다음호에 계속>

양수영 한국석유공사 사장

부산중·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구과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이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Texas A&M 대학교에서 지구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선임연구원과 한국석유공사 기술실 지구물리팀장을 거쳐 1996년 대우인터내셔널로 옮겼고, 에너지개발팀장, 미얀마E&P사무소장, 에너지자원실장, 자원개발본부장(부사장)으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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