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의 안일한 행정처리 문제만 키워…작곡가들 자존심 사안에 항변

[민주신문=이승규 기자] “왜 내 눈 앞에 나타나 (박 용 택) 왜 네가 자꾸 나타나~(박 용 택) 두 눈을 감고 누우면 왜 네 얼굴이 떠올라(엘~지~ 박 용 택)"

프로야구 LG 트윈스 팬이라면 매우 귀에 익은 노랫가사다. 김범수의 노래 ‘나타나’는 LG 트윈스 팬이라면 모를 수가 없다. 후렴구에 박용택 선수의 이름을 넣어 응원가로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이렇듯 30여 년간 프로야구 팬들은 선수별 응원가가 울려 퍼지면 치어리더들과 함께 해당 선수의 응원가를 떼창하는 것이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팬 문화로 인식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러한 독특한 팬문화에 참여하고자 야구장을 찾는다는 팬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지난 1일부터 야구장에서는 더 이상 관중들의 ‘떼창’과 함께 울려 퍼지던 응원가를 들을 수 없다. 이유는 바로 저작인격권 때문이다.

지난달 작사·작곡가 20여명이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저작인격권 관련 공동소송 소장을 접수한 데 따른 조치로 한국야구위원회(KBO)와 10개 구단이 합의해 선수 등장곡 사용을 중단했다. 

저작권은 크게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 두 가지로 나뉜다. 저작재산권은 저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 갖는 재산적인 권리다. 이미 KBO와 구단들은 이에 대한 사용료를 내왔다. 응원가 원곡, 선수 등장곡, 치어리더 음악 등의 저작권료를 2003년부터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게 지불해 왔다.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와 한국음반산업협회에게는 2011년부터 지급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저작인격권이다. 원곡을 그대로 쓸 경우 저작권료만 내면 되지만 편집이나 개사를 하면 저작인격권 사용료를 내야 한다. 저작물의 내용이나 형식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다. 이번에 소송을 낸 작사·작곡가들은 바로 이 동일성유지권을 문제로 삼았다. 

저작물의 내용, 형식 등을 개사하거나 편집하는 변경 행위는 반드시 원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구단들이 멋대로 바꿨다는 것이 소송을 낸 작사·작곡가들의 주장이다. 

사실 이 문제는 2016년 처음 문제가 됐다. 당시 KBO는 저작인격권 규정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고 문제는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결국 현재는 KBO가 행정처리에 얼마나 안일했는지 비판의 근거가 되고 있다.

KBO 관계자는 “소장을 법적으로 검토하면서 답변서를 제출하기 위해 만들고 있다. 이미 2016년부터 저작인격권에 대한 인식을 갖기 시작했고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 왔는데 법적 분쟁으로 이어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한 KBO는 이번 소송과 별개로 또 다른 저작권자들과 저작인격권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KBO 측은 “소송이 이미 시작됐기 때문에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합의점을 찾으면 소송을 취하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법원의 판결에 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더불어 “현재로서는 어떻게 상황이 정리될지 알 수 없지만 원만한 해결을 위해 계속적으로 노력 중”이라며 “다만 소송이 진행될 때까지는 소송 당사자와 관련된 선수 등장송을 경기장에서 틀지 않는다는 방침”이라고 확인했다.

물론 야구팬을 비롯한 야구에 관심이 없는 시민들도 이번 소송을 주도하는 작사·작곡가를 두둔하지 않는다. 특히 이번 소송에 합류한 윤일상(44), 김도훈(44)씨 등 인기작곡가들을 대하는 팬들의 시선은 차갑기 그지 없다. 

이유는 이들 인기 작곡가의 저작권료가 최고 상위권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에 소송을 건 창작자들은 저작인격권 침해 대가로 수백만~수천만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비판의 소리가 높다. 

가요계 관계자는 “일부 비율이 정해져 있는 저작재산권과 달리 저작인격권은 부르는 게 값”이라면서 “야구단을 운영하는 모기업이 자금력이 풍부하고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대기업인 것을 악용하는 셈”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더욱이 자작곡에 대한 노래 홍보 등을 노리고 구단 측에 곡 사용을 먼저 부탁해 놓은 케이스들도 있어 이번 소송을 계기로 가요계 전체를 비하하는 야구인들도 있다.

어느 야구팬은 “개사해서 사용하면 오히려 원곡을 찾아보게 된다”며 “완전한 영리 목적도 아니고 팬들은 즐기고 자신들의 곡은 저절로 홍보가 되는데 왜 소송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나 작곡가들은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 창작자의 자존심이 걸린 사안이라는 것이을 항변하고 있다.  음반사 한 관계자는 “자존심이 강한 창작자는 한곡을 완전한 작품으로 보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번 소송은 일종의 명예훼손에 대한 경고”라고 짚어주었다. 

“또한 KBO와 구단들이 멋대로 개사를 한 뒤 이어지는 협의에서도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선수들 연봉으로는 쉽게 수십억원을 챙겨주는 구단들이 그에 비하면 얼마되지 않지만 중요한 인격저작권료를 너무 아까워한다는 것은 올바른 인식 부재”라고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이번 야구장 응원가 논란이 사회적 관심을 모은 이유중에 하나는 과거 정치권의 선거송과도 무관하지 않다. 몇 년 전 선거 때면 정당들은 선거 유세를 하면서 잡음을 일으켰다. 바로 이번에 문제가 된 저작인격권을 무시하고 가사를 멋대로 고친 탓이다. 

하지만 이후 정치권은 저작인격권까지 완전히 해결한 뒤 선거곡을 정하고 있다. 이번 6·13 지방선거도 마찬가지다. 

이번 야구장 응원가 저작인격권 시비가 뒤늦게 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높아지는 프로야구의 인기와 성숙해지는 저작권 문화가 맞물리는 과정에서 빚어진 충돌이라는 것이 야구계와 가요계의 공통의견이다. 

가요계 관계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등 관련 단체들이 공연권에 대한 저작권료(공연료)를 징수할 수 있도록 승인한 것도 가요계가 저작권 관련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일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구단 관계자들은 팬들의 권익을 위해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면서도 원곡을 훼손한 상업적 이용이 아니라는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양측이 한동안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사정을 제대로 모르는 야구팬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유명 선수의 응원곡은 10년 이상을 사용해서 그 선수를 상징하다시피 하는데 갑자기 응원곡이 바뀌거나 영문도 모른 채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걸 팬들은 지켜볼 수밖에 없다. 

또한 가요계 일부에서는 이번 소송이 ‘너무 나아갔다’고 보는 면도 있다. “작곡가 입장이 이해는 가지만 노래라는 것은 대중의 인기로 먹고 사는 것 아니냐. 특히 대중음악은 많은 이들이 듣고 불러야 빛이 난다”는 원칙을 상기시킨 것이다.

일부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 한 음원유통 관계자는 “구단별로 선수 등장곡 또는 응원가를 공모해서 사용하면 좋을 듯하다. 선정된 곡에는 상금을 주고 권한은 구단이 가지면 양측이 윈윈하지 않겠냐”는 판단이다.

각 구단들은 KBO와의 협의를 통해 사용료에 대한 전체적인 틀을 마련한 뒤 저작권자들과의 개별 협의를 이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원작자들의 저작 인격권을 어떤 범위까지 인정해야하는지부터 풀어나가야 해 앞으로 응원가가 야구장으로 돌아오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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