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까지 가나아트 포럼스페이스에서 대작 묵매도 등 50여점 전시

황창규 KT 회장이 4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 포럼스페이스에서 조부 매산 황영두 전을 열었다. 두 줄기가 한가운데서 V자형으로 벌어진 고목 매화나무는 조부가 1956년 제작한 '묵매도'다.  그는 이 작품을 그동안 병풍으로 보관해왔는데, 이번 전시에서 강직한 조부의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민주신문=양희중 기자] “3살때 뵜던 할아버지 모습이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저를 따뜻한 아랫목에 앉히시고 손바닥을 양손으로 두드리며 장구 장단을 가르쳐 주신 기억…초등학교 학예회서 할아버지께 배운 장구실력으로 칭찬을 받았지요. 5살 때 돌아가셨는데 장손인 저를 정말 예뻐하셨어요.”

지난 4일 서울 평창동에 자리한 가나아트 포럼스페이스 전시장에서 만난 황창규 KT회장(65)은 “공학도가 되었지만 남보다 예술적 감수성을 가졌고 음악과 미술에 관심쏟는 CEO로 평가받는 과분함도 곰곰이 따져보면 할아버지의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라며 소풍을 앞둔 어린아이의 설렌 모습으로 이번 전시를 맞았다.

황 회장은 조부 매산 황영두(1881~1957)화백을 추억하며 조부가 평생을 같이 하며 화폭에 담았던 매화도와 항일지사들과 교류하며 남긴 서화 등 50여점을 한데 모아 전시를 열었다.

매산 황영두는 조선말기 어린 나이에 궁궐을 드나들며 고종을 알현하고 매화그림을 그렸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유명한 서화가다. 주로 경상남도 사천과 진주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근대 지방 화가로서 알려진 그의 작품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매화도 전문 미술사학자 이태호 명지대 초빙교수는 “이제야 매산 같은 작가를 발굴하며 한국근대미술사의 지평을 넓힐 수 있게 되었다. 매산의 매화도를 비롯한 서화작품은 20세기 전반의 문예현상 곧 전통형식으로 민족의식을 드려낸 경향성을 적절히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 근대사를 되찾고 재평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전시는 서울옥션 이옥경 부회장과 함께 지난 2년간 추진한 전시로 매산의 장손인 황 회장이 집안에 간직한 50여점과 매산과 교류했던 30여명의 인사들이 남긴 서화작품들도 소중히 소장한 덕분이다. 

특히 기미독립선언 33인중 한 분이셨던 위창 오세창, 호남지역의 벽소 이영민 등 항일지사들과 교류하며 남긴 서화들도 함께 전시돼 매산의 폭넓은 교류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황 회장은 매일 아침의 시작을 자택 거실에 있는 매화나무 한 그루가 화면 전체에 가득 채워진 조부의 병풍 작품 ‘일지매(一枝梅)’를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20여년의 시간을 기업의 경영자로 살아온 그는 위기와 도전속에서도 조부의 매화가 전하는 기백을 상기하며 새로운 용기를 얻곤 했다고 말했다.

‘묵매도’, 1956년, 종이에 수묵, 131x312cm

1956년 매산이 그린 ‘일지매’는 ‘V’ 자형으로 벌어진 고목 매화나무 한 그루를 3m가 넘는 병풍에 장쾌하게 담았는데 양쪽으로 벌어진 왼편 고목 밑둥에 햇살이 든 입체감 표현이 이채롭다. 마치 음양도로 표현한 듯하고 진한 농묵의 나무가 음수(陰樹)로 보인다. 

이태호 미술사학자는 “붓을 눕힌 측필(側筆)을 이용해 쓱쓱 문질러 입체감을 살린 고목에 비해 새순 돋은 가지에 달린 매화송이들은 작아 보이게 대조시킨 점도 눈에 띈다. 매화나무 고목을 보고 실견한 듯한 강렬한 인상의 이런 방식은 매산 묵매도를 새롭게 재평가할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매화와 소나무 그림을 한 폭에 한 소재씩 담은 ‘송매 10폭 병풍’도 시선을 모으는데 분홍색 꽃의 홍매화와 담청과 갈색의 소나무 그림이 대담한 수묵 필법과 어울린 매산의 노년작이다. 병풍의 맨 오른편 ‘매화괴석도’의 도서 낙관에 의하면 매산이 75세인 1955년에 제작되었다. 

‘송매10폭병풍’, 1955년, 종이에 수묵담채, 123.5x31.5cm

이번 전시를 통해 조부를 추억하는 황 회장은 “할아버지는 40세에 고향 진주로 돌아가 결혼도 하고 도청 공무원으로 새 인생을 시작하셨지만 77세로 돌아가시기전까지 그림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일본과 중국에도 할아버지의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 수 십차례 전시회를 열었고 당대의 예술가들과 함께 나누셨던 그림과 글씨를 모아 만든 ‘매산소장’ 화집은 우리 가문의 가보”라고 밝혔다.

더불어 황 회장은 “할아버지가 그토록 사랑했던 매화를 닮은 고고한 삶과 아름다운 예술작품은 할아버지 자신에게도 남겨진 자손들에게도 자랑스러운 것”이라는 자부심을 전했다.

‘묵매도’ 앞에서 조부의 매화 그림을 예찬한 황 회장은 “매화를 잘 그리셨기에 매선(梅仙)이라고도 불리셨다는 할아버지 매화 그림은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단번에 알아볼수 있을 정도로 특징이 있어요. 일필휘지로 그리는 힘과 역동성이 느껴지면서도 꽃안의 수술과 고목의 뿌리에 돋아난 새순에 특유의 정교함이 살아있지 않나요?” 라며 조부의 매화도에 대한 의의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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