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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까지 올라온 간호사 '태움' 실태...육두문자 기본, 구타-인격모독은 예사업무 과중 신입 간호사 실수 용납 안 돼…상향식 평가 도입으로 체질 개선 필요
  • 이승규 기자
  • 승인 2018.02.2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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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인 지난 15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선임이라는 이유로 행하는 인격모독과 언어 폭력 등 일명 ‘태움’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민주신문=이승규 기자] 설 연휴인 지난 15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선임이라는 이유로 후배에게 행해지는 인격모독과 언어 폭력 등 일명 ‘태움’이 이 간호사의 목숨을 빼앗은 게 아니냐는 지적과 비난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5일 오전 10시40분경 송파구 한 아파트에서 간호사 박모씨가 투신해 숨졌다. 경찰은 박씨가 사용하던 컴퓨터 등을 조사해 정확한 사망 동기 등을 밝힐 계획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간호사 세계에서 만연하고 있는 군기잡기 문화인 ‘태움’이 사망원인으로 부각되고 있어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올 전망이다. 

“간호학과 입학 때부터 ‘군기’는 잡혀 있었어요. 어느 날은 얼굴도 모르는 선배들이 불러 2시간 동안 쪼그려 앉아 뛰기에 엎드려뻗쳐를 시키는가 하면 하루는 반나절 동안 90도로 인사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죠. 병원에 들어와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수도권 한 대학병원에서 첫 간호사 생활을 시작한 A(33·여)씨는 신입 시절을 회상하며 “온몸을 태웠다(태움)”는 말로 고통스런 시절을 정리했다. 대형 병원의 간호사가 됐다는 기쁨은 잠시 기존 선배들의 혹독한 군기잡기는 매일 매일을 “오늘 하루만 무사히 넘기자”는 마음으로 출근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A씨는 신입 때 무엇이 제일 참기 힘들었느냐는 질문에 “선배들로부터 프리셉터(preceptor)를 통해 일을 배우는데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참기 힘든 인격모독 발언들을 들어야 했다. 나는 완전히 욕받이 였다. 특히 나는 괜찮지만 ‘부모님이 그렇게 가르쳤냐’라는 부모를 언급하는 심한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견디기가 힘들었었다”고 당시 고통을 토로했다.

이어 “같은 학교에서 다른 병원으로 간 친구들은 선배 간호사들에게 종종 맞기도 했다고 들었다. 주로 차트로 머리를 ‘톡톡’ 내려찍거나 손가락으로 이마를 밀며 ‘이따위로 일 할 거면 그만둬’ 등의 말을 육두문자와 함께 퍼부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간호사 B(27·여)씨는 “볼펜 끝으로 머리를 툭툭 치거나 팔뚝과 등을 손바닥으로 때리는 선배 간호사들도 종종 있었다”며 “선임 간호사 중 한 명은 수시로 불러 ‘머리에 똥 찼냐’, ‘개념이라는 게 있기는 하냐’ 등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서울 내 대학병원에 근무 중인 C(30·여)씨는 “동료들하고 수간호사들 보면서 ‘쟤네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수간호사가 될 수 없다’는 말을 종종 한다”며 “동기들을 봐도 정상적으로 살겠다는 사람들은 다 나갔고 악으로 버티는 애들만 남았다”고 토로했다.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으로 주로 병원에서 선배 간호사들이 신입 간호사를 가르치거나 길들이는 방식을 지칭하는 간호사들만의 은어다. 

생명을 다루는 간호사들의 특수성으로 인해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한 혹독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대부분의 병원에서 유지되고 있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직장 내 괴롭힘과 다를 바 없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현재 간호사들이 중심이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태움의 경험 사례가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울었다는 이유로 6시간 동안 가만히 벽 보고 서 있었다”, “신발 소리가 크다고 혼났다”, “수간호사 퇴근할 때면 가방 들고 배웅해야 한다”, “뛰지 않고 걷는다고 욕을 먹어야만 했다” 등이다.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와 처우 개선을 대한 성토는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도 올라왔다. 주로 인력 보충으로 간호사들의 업무 과중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 게시글은 하루 만에 약 1000명의 지지를 얻었다.

전문가들은 인력난을 해결해야 태움 문화를 해결할 수 있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북미와 유럽등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1인 간호사가 맡은 환자 수가 너무 많고 과다한 업무에 신규 간호사들의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 형성이 지금의 악의적인 ‘태움 문화’로 발전한 것으로 지적했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간호사 조직이 폐쇄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다 보니 태움 문화가 이어지는 것 같다. 인력 문제는 태움 문화의 주요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선진국의 경우 간호사 한 명당 4~7명의 환자를 보는 반면 우리나라는 1등급 병원도 12~13명의 환자를 본다. 선진국보다 노동강도가 2~3배나 된다. 신입 간호사들이 실수하는 걸 용납하지 못해 태움으로 엄격하게 가르친다. 그러다 보니 다시 신규 간호사들이 그만두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업무량이 과다하고 제반 여건들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상명하복식 집단문화가 짓누르는 상황”이라며 “상향식 평가시스템 도입 등을 통해 아랫사람들도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조직 내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승규 기자  press33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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