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조선왕조실록에 관련 기록 상세히 전해져 역사적 가치 커”

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민주신문=양희중 기자] 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명종대왕의 태실과 비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돼 학계의 주목을 받고있다.

명종(1545~1567년)은 조선 제13대 왕으로 이름은 이환, 자는 대양(對陽)이며, 비는 인순왕후(仁順王后)로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 심강(沈鋼)의 딸이다. 중종(中宗)의 둘째 적자(嫡子)이며 인종(仁宗)의 아우이다. 이복 형제인 형 인종이 승하하자 어머니 문정왕후에 의해 임금으로 옹립됐고 나이가 어린 탓에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았다. 재위기간은 순탄치 않았는데 외척인 외숙 윤원형의 발호가 심각했고 어머니 문정왕후의 국정폐단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31일 “‘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를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 예고하고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수렴된 의견을 검토한 후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조선왕조 태실 중에는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이 사적 제444호로 등록돼 있지만 보물로 지정된 태실은 아직 없었다.

‘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는 명종이 태어나던 1538년(중종 33년)에 의례에 따라 건립됐다. 조선 왕실은 왕손 태어나면 그 태(胎)를 태항아리에 봉안하고 태실을 조성했다. 특히 왕실은 태가 국운과 직접 관련이 있다 여기고 매우 소중하게 다뤘다.

먼저 태를 봉안한 태실(石室)과 ‘대군춘령아기씨태실비’ 1기가 먼저 건립되고, 명종이 즉위한 후 1546년 ‘주상전하태실비’ 1기, 1711년 ‘주상전하태실비’를 재건하면서 비석 1기를 추가로 건립해 현재 태실 1기와 비 3기가 전한다.

태실은 8각형의 난간석을 두르고, 중앙에 태실을 배치했는데 태실의 머릿돌은 8각의 개첨석, 받침돌은 사방석(四方石)이고 몸돌은 중동석으로 구분된다. 

일제강점기인 1928년경 일제는 태실에 봉안되었던 태항아리(태호)와 지석을 경기도 고양 서삼릉(西三陵)으로 옮겼으나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후 수습해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전·보관하고 있다.

태실과 함께 만든 ‘대군춘령아기씨태실비’는 비석 받침구멍인 비좌와 비문을 새긴 비신, 비신 위에 올리는 옥개석인 이수로 구성됐다. 조선 전기에 건립된 태실 표석의 전형적인 양식을 갖췄다.

1546년 명종이 왕위를 이어받은 이후 태실을 가봉하면서 건립된 ‘주상전하태실비’는 비좌와 비신·이수를 갖췄는데, 비신이 대리석, 비좌는 귀롱대석(거북과 용 모습의 돌)으로 만들었다.

1711년 추가로 지은 ‘주상전하태실비’는 1546년 조성됐던 본래의 귀롱대석 위에 비신과 이수를 새로 조각해 건립하고 이전에 설치했던 비는 개수된 비의 오른쪽으로 옮겨서 설치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조선 왕실의 많은 태실이 본래의 자리에서 옮겨졌거나 변형됐다. ‘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는 ‘조선왕조실록’ 등에 관련 기록이 상세히 남아 있고 원래의 자리에 온전하게 남아 있으면서 주변 지형 등 환경까지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더욱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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