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개인이 소장하던 조선후기 고승 묵암 초상화 협의 끝 환수

100여년만에 전남 송광사로 돌아온 '묵암당 진영'

[민주신문=양희중 기자] 1910년대 일본으로 유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묵암당 진영’이 100여년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송광사 성보박물관측은 “동국대박물관 특별전에 전시된 ‘묵암당 진영’을 일본의 개인 소장자와 협의해 환수하기로 했다”며 “전시가 끝나는 8일 이후 송광사의 다른 유물과 함께 가져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환수된 ‘묵암당 진영’은 18세기 조선시대 후기 승려인 묵암 최눌(默菴 最訥, 1717∼1790)의 초상을 그린 것으로 묵암은 한국의 삼보(三寶) 사찰인 송광사에서도 손꼽히는 학승으로 화엄학의 대가로 이름을 떨쳤다. 

임진왜란 때 서산 대사(1520∼1604)와 함께 송광사를 지켰던 부휴 대사(1543∼1615)의 적통으로 불교 해설서 ‘제경회요(諸經會要·동국대도서관 소장)’, 시문집 ‘묵암집(默庵集·규장각 소장)’ 등 다수의 문헌을 남겼다. 

묵암을 기리는 비와 부도는 현재도 송광사에 남아 있다. 묵암은 주로 전라남도지역에서 활동했고 송광사 보조암에서 입적했다.

송광사 측은 ‘묵암당 진영’이 일본으로 유출된 시기를 1910년대로 추정한다. 송광사는 일제강점기 직전에 조국을 되찾으려는 의병 활동을 지원하는 근거지로 유명했다. 일본 헌병의 습격으로 사찰 건물이 파손되면서 많은 문화재가 약탈당하고 유출됐는데 이때 함께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묵암당 진영’은 1920년대 일본 교토박물관의 한 전시회에서 ‘조선 승려의 초상화’로 세간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다. 전문가들은 1910년대에 일본으로 유출된 것으로 보고있다.

학계에 따르면 묵암당 진영은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데다 불교 회화적 측면에서도 값어치를 따질 수 없는 문화재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조선 시대 승려 초상화는 대부분 19세기 것으로, 18세기에 그려진 작품 자체가 희귀하다. 

게다가 이 그림은 묵암 대사를 눈앞에서 마주한 듯 정밀하고 섬세하다. 정우택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표정은 물론이고 신체 비례가 자연스럽고 배경 곳곳에 금니(金泥·금가루 채색)를 적절히 사용했다”며 “실재감이 뚜렷하고 그림 테두리마저 세련되게 묘사한 보기 드문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신체 비례가 과장되지 않고 화면을 구성하는 요소의 묘사가 정확하다”며 “초상화 위쪽에 표현된 장식 요소인 풍대(風帶)가 있는 드문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화풍이 매우 사실적이어서 생전의 스님 모습을 그대로 옮긴 것 같다”고 덧붙였다.

송광사는 조만간 100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묵암당 진영을 모시는 대규모 봉헌법회를 열 계획이다. 송광사 성보박물관 고경 스님은 “어렵사리 스님을 다시 모시게 된 만큼 정성을 다해 다양한 행사로 뜻을 기리겠다”고 말했다. 한편 묵암당 진영은 8일까지 열리는 동국대박물관 특별전 ‘나한’에서 일반 관객도 직접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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