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20세기파 두목의 '카지노 입성기'

 
-외국인전용 카지노 출입 위해 필리핀 정부서 여권 위조 발행

-1년간 30억 판돈 주물럭, 검찰 “조직 운영비 사용여부 주목”
 
 

 


 
외국인 카지노에 출입하기 위해 필리핀 사람이 된 한 조직폭력배 두목이 화제다. ‘신20세기파’ 두목 A씨는 영화 ‘친구’에서 등장하는 폭력조직의 실제 우두머리다. 그가 속한 신20세기파는 부산의 유명 폭력조직 ‘칠성파’와 맞먹는 조직이다. 이들은 부산 남포동 일대에서 주로 불법오락실을 운영해 얻는 수익금을 조직의 운영자금으로 사용해왔다.
최근 두목 A씨가 국내에 위치한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 필리핀 사람으로 위장, 진출해 카지노에서 이례적으로 약 16억원의 불법자금을 마련한 사건의 전모를 파악해봤다.

 
 
지난 17일, 부산의 유명 폭력조직 ‘신20세기파’ 두목 등 2명이 불구속기소됐다. 이들은 필리핀 현지인의 인적사항을 수집한 뒤, 자신의 사진을 부착해 필리핀 정부로부터 여권을 발급받아 서울, 부산 등 국내에 있는 외국인 전용카지노에 출입하여 상습도박을 한 혐의다. 

특히 신20세기파는 2001년 개봉한 영화 ‘친구’에서 장동건이 행동대장급으로 소속되어 있던 조직으로 알려져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신 수법으로 카지노 입성
 
사건의 발단은 신20세기파 두목 A씨의 ‘지나친 도박사랑(?)’에서 비롯됐다. 평소 도박에 남다른 집착을 보였던 A씨가 외국인전용 카지노에 출입하기 위해 여권 위조를 시도하면서 불법 행각이 시작된 것이다.

A씨는 국내에 있는 외국인 전용카지노에 출입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내국인전용 카지노와 달리 럭셔리한 시설을 즐기고 타인의 이목을 피해 도박에 몰입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외국인전용 카지노에 출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국가의 여권을 위조하면 됐기 때문이다. 여권 위조는 브로커에게 맡기면 가능했다. 사진과 일반여권 등을 맡기고 다른 국가의 영주권카드를 위조한 뒤, 이를 근거로 외교통상부로부터 해당 국가의 거주여권을 발급받은 위조여권을 손에 쥐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을 쓰기엔 위험했다. 지난해 11월 이 같은 방법으로 발급한 여권을 가지고 외국인전용 카지노를 출입한 21명을 비롯해 여권브로커와 이에 가담한 카지노 관계자까지 무더기로 적발된 적이 있어서다.

결국 두목 A씨는 좀 더 진화(?)된 다른 수법을 원했다.  

A씨는 수소문 끝에 솜씨 좋은 여권 위조 브로커 K씨를 찾았다. K씨는 기존처럼 여권을 위조하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가 제시한 방법은 이랬다. 실제 존재하는 외국인의 신상 정보를 산 뒤 사진만 슬쩍 바꿔치기 해 아예 해당 국가의 외교부에서 여권을 발급받는 것. A씨는 솔깃했다. 여권 발급 초기부터 위조를 하는 것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A씨는 2009년 3월초 부산 중구 남포동에 있는 한 커피전문점에서 K씨를 만났다. 그는 K씨에게 필리핀 여권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과 함께 1,500만원을 지불하기로 약속했다. A씨는 그 자리에서 약속한 돈 중 800만원을 전했고, 여권용 사진을 건넸다.

K씨는 필리핀 현지인의 신상 정보를 산 뒤 실질적으로 업무를 진행해 줄 누군가를 물색했다. K씨는 그에게 2009년 4월에 필리핀 외교부 여권담당부서에서 A씨에 대한 필리핀 여권을 신청하도록 했다.

신청인 이름란에 ‘RAMOS JAMES TAN’, 생일란에 ‘1951. 2. 10.’, 아버지 국적 및 이름란에 ‘FIL(필리핀), MACARIO’, 어머니 국적 및 이름란에 ‘FIL(필리핀), JUANA’ 등으로 기재, 사진란에 A씨의 사진을 붙여 여권발급담당자에게 제출했다. K씨는 같은 달 16일에 필리핀 외교부 장관 발행 여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두목 A씨는 ‘라모스 제임스 탄’이라는 이름의 필리핀 시민권자가 되었다. 그리고 2009년 5월, 부산에 위치한 외국인전용 카지노에 허위로 만든 필리핀 여권을 제시, 세븐럭 카지노 출입증을 받은 후 본격적인 도박에 들어갔다. 
 
 
1년이나 지속된 상습도박  
 
부산 영업장에서 A씨는 2010년 2월까지 41번의 도박을 했다. 그동안 그가 건 돈은 총 31억9,900만원이었다. 그는 16억4,409만원을 땄다.

A씨는 부산 뿐 아니라 서울에 있는 외국인전용 카지노도 찾았다. 그는 2010년 6월에 카지노 영업장에 들어가 1억2,000만원의 돈을 칩으로 환전하여 ‘바카라’라는 도박을 계속 즐겼다. 그곳에서 두목 A씨는 2010년 7월까지 7회에 걸쳐 11억4만원의 돈을 걸었고 1억 1,499만원을 잃었다. 

A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도박에 몰두하던 중 수상한 사람을 발견했다. 자신의 얼굴을 누군가가 훔쳐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판돈이 한참 크게 오가는 상황이었다. 그날 오후 두목 A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그를 알아본 지인이 자신이 아는 조폭 두목 A씨와 똑같다는 사실을 경찰에 제보했던 것이다. 이로써 신20세기파 두목 A씨의 거침없던 도박행렬은 멈췄다.

A씨가 두목으로 있는 신20세기파는 부산지역 최대 폭력조직 중 하나다. 이 조직은 그간 부산 남포동 일대에서 주로 불법오락실을 운영하며 조직 운영 자금을 조달해왔다. 현재 부산 폭력조직은 ‘칠성파’ 대 ‘반칠성파’의 대립구도로, 칠성파는 여전히 건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의 여권 위조 수법이 최초로 적발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해외 여권을 위조하여 카지노에 출입한 사례는 종종 있었다. 그러나 실제 존재하는 필리핀인 ‘라모스 제임스 탄’이라는 사람의 인적사항과 국내인의 사진을 이용해 필리핀 당국으로부터 정식 여권을 발급받은 경우는 처음이다.

또한 경찰은 상습도박으로 벌어들인 돈이 폭력 조직을 위해 쓰일 것이라 보고 벌어들인 돈을 ‘범죄수익은닉의규제및처벌등에관한 법률’에 따라 추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권을 위조해 상습도박을 펼친 신20세기파 두목 A씨와 브로커 K씨 외 1명은 업무 방해, 사문서부정행사, 상습도박 등의 혐의로 17일 현재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김희준)에 불구속기소 된 상태다. 

                                                                   최설주 기자 aucs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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