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기자 카이스트에 가다

- 영어로 강의·차등 등록금제, 정책적  문제 공감하지만 심각성 ‘글쎄…’

- 일각선 ‘총장사퇴’ 일각선 ‘소통부재  해소가 급선무’ 학내서도 ‘온도차’
 
 
학생에 이어 교수까지, 잇단 자살로 불거진 ‘카이스트(KAIST) 사태’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징벌적 등록금 제도, 영어수업 등이 사태의 원인으로 꼽히면서 이를 시행한 서남표 총장의 사퇴 여부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국회, 교수협회, 언론 등은 서 총장의 사퇴를 비롯해 기업화된 대학, 감당하기 어려운 등록금 등 최근 제기되고 있는 대학의 고질적인 문제를 들춰 카이스트의 문제를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사태를 바라보는 외부’와는 달리 ‘사태를 겪고 있는 내부’에선 조금 다른 온도차가 느껴진다. 온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카이스트 사태. 충남 대전에 위치한 카이스트를 찾아 학생들의 실제 목소리를 들어봤다.
 

 

▲   진통을 겪고 있는 카이스트.


 
지난 12일, 기자가 학교를 찾았을 때는 이미 모든 강의가 파하고 난 뒤였다. 저녁을 먹는 이들로 학생 식당은 붐볐고 식당 앞을 비롯한 몇 군데에서는 총학생회 관계자들이 서 총장 사퇴 서명 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그렇게 곳곳은 뜨거웠지만 교내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했다. 학생들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외면하듯 기자를 지나쳤다. 해가 졌다. 한 학생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     © 민주신문


 
‘차등 등록금제’ 가장 큰 논란
 
학보사 출신의 K씨(07학번·생명과학)는 최근 논란이 된 ‘등록금 문제’를 거론했다.

현재 카이스트는 ‘차등 등록금제’를 실시하고 있다. 성적이 나쁜 학생들에게 일부 등록금을 내게 하는 제도다. 학점 4.3점 만점에 3.0 미만인 학생에 대해 최저 6만원에서 600만원에 이르는 수업료를 내도록 한다. 카이스트가 지난 4일 한나라당 권영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학생 7,805명 중 이 제도의 적용을 받은 1,006명(12.9%)이 1인당 평균 254만여원씩을 수업료를 냈다.

이같은 제도는 ‘징벌적 차등 등록금제’로 표현되며, 최근 카이스트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K씨는 “바뀐 등록금 제도에 불만이 있었고 늘 문제가 제기되었다”며 “총장과의 대화를 시도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그곳에 대화는 없었다. 자기 개혁에 대한 일방적 강요만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2008년 학보사 활동을 할 당시를 떠올렸다. 등록금 제도 문제를 다룬 기사는 신문에 실리기 직전 트집이 잡혔다. 학보사를 폐지하겠다는 은근한 압박까지 있어 결국 기사를 내보내지 못했다.

등록금 제도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은 지난해 실시한 투표결과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난해 카이스트 학생들은 등록금 제도 철폐 찬반 투표를 벌였다. 그 결과 약 96%의 학생들은 ‘철폐 찬성’을 택했다. 전체 재학생의 절반 이상이 참여한 투표였다.

K씨는 “‘3.0(학점)’이라는 숫자가 참 의미 심장하다”면서 “과거에는 그게 대학원을 갈 수 있는 기준 정도였는데, 지금은 학점이 3.0이 안 되는 학생은 수준이 떨어진다는 소리까지 한다. 그 숫자의 기준이 달라져버렸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어 “학교 측에서 ‘정상적으로 공부를 안 한 학생’이라는 표현도 쓰고, 학내 커뮤니티에서도 ‘그 점수 안 되면 자퇴하라’는 식의 과격한 발언도 올라온다”면서 “성적이 안 나온 것도 속상한데 등록금 물고, 패배자처럼 몰아가는 분위기까지 존재해 상처가 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   서남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 업무보고를 하는 동안 카이스트 간부들이 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


 
문화적 방화벽에 갇힌 그들
 
외부에선 이번 카이스트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를 꼽고 있다. 카이스트에서는 2007년부터 한국사·국어·일본어 등 일부 과목을 제외한 학부 강의의 90% 정도를 영어로 진행하고 있다. 국내 대학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강의하는 교수와 수강하는 학생 모두 영어에 익숙하지 않아 수업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고 학생들 입장에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원인이라는 지적이 있어왔다.

이에 대해 외고 출신인 N씨(11학번·무학과-전공학과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는 “영어 수업이 과학고 출신이 아닌 사람에게는 좀 불리하게 작용했다”면서 “학생들 스스로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에 대한 노력을 당연히 해야겠지만 과학고 출신이 아닌 이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은 아쉽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은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은 국제화시대에 발맞출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면서도 “다만 일정 수준이 안 되는 학생들에게는 이같은 영어 강의가 의미가 없다. 이것은 결국 교수와 학생 간 인간적 접촉을 단절해 버리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일부 학생들은 학내 ‘소통부재’를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카이스트는 타학교, 타학생과의 교류가 거의 없다. 심지어 대전 시내에서 비교적 가까운 충남대와의 교류도 활발하지 않다.

내년에 휴학을 계획한 J씨(10학번·무학과)는 “카이스트 재학생들 사이에서는 휴학을 고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면서 “여느 대학생들처럼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든지,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른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다수의 카이스트 학생들이 문화적 교류에 목말라 있다”면서 “한마디로 ‘딴 일’, ‘딴 생각’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안 되어 있다. 지리적 요건이나 공부에만 의존하는 폐쇄성이 교류의 부재를 만든 것 같다. 카이스트 학생 중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면 다양한 문화 체험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유로 입학 초기나 일 년 후에 서울 소재 대학을 택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하는 일에 비해 대접이 소홀한 공대생의 경우, 미래가 밝지 않아 치대나 의대로의 전환을 꿈꾸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J씨는 “카이스트 내에서 이와 같은 이유로 휴학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면서 “오래된 문제라 해결이 빨리 되는 것은 힘들 것 같다. 그나마 카이스트는 ‘카이스트’라는 이유로 대접이 있긴 한데, 문제는 좋은 인재들이 의대나 로스쿨로 빠져버린다는 점에서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교육계 전문가들은 카이스트가 100% 기숙사 학교라는 점에서 ‘소통부재’ 문제는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기숙사’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함께 공부를 하는 만큼 학교가 가족과 같은 환경을 제공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카이스트는 학생들을 무한경쟁으로만 내몰아 패배감이나 상실감을 더 크게 만들고 있고, 이런 것들이 지금 상당한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N씨(11학번·무학과)는 “카이스트 뿐 아니라 어느 대학을 가더라도 문제는 있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카이스트는 ‘기숙사 학교’라는 특수성을 지녔음에도 커뮤니케이션이 이상하게 안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폐쇄적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 기숙사 학교였는데 그때와는 다른 분위기”라며 “어떤 문제든 혼자 감당하기엔 벅찰 것이다. 상담소 이용도 해봤지만 너무 빤한 얘기만 한다. ‘공부가 잘 안 된다’이러면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한다”고 전했다.
 

 

▲     © 민주신문


 
“내부문제는 자체 해결해야”
 
취재 과정 중에 만난 상당수 학생들은 외부에서 지적한 문제들에 대해 일정 부분 공감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알려진 것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데 입을 모았다.

Y씨(08학번·산업디자인·여)는 “언론에선 우리를 심각한 경쟁구도에 몰린 불쌍한 학생으로 취급하고 있던데 그것은 좀 오버인 듯 싶다”면서 “학생들 사이에서 언론에 대한 반감이 생기고 있다. 서 총장에 대해 지나치게 몰아가기식 기사를 쓰고 추측성 기사를 내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내부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하도록 내버려둬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들이 학내에 많다”고 했다.

옆에 있던 M씨(10학번·화학과)도 한마디 거들었다. M씨는 “언론 개입이 너무 지나치다. 정책적인 문제점만을 지적해 몰아간다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며 일침을 가했다.

또 다른 학생 역시 비슷한 의견을 냈다. 이 학생은 “언론이 자살의 원인을 알아냈다는 식으로 선정적인 기사를 쓰고, 추측성 기사가 난무하는 상황이 불편하다”면서 “죽은 이를 자신의 할 말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같아 거북하다. 언론 말고도 윗분들이 정치적으로 더 써먹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 서 총장의 사퇴론이 불거지고 있는 점에 대해서 O씨(10학번·무학과)도 “총장 사퇴가 답이 될 수는 없다”고 답했다. O씨는 “외부에서 하나의 문제를 크게 부각시켜 몰아가고 있는데, 그것만 해결하고 끝이 날까 두렵다”며 “자살한 학우나 교수의 문제는 복잡한 것인데 단순화시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P씨(10학번·물리학과 예정) 역시 “등록금 제도를 문제 삼는 총학생회가 이해는 되지만 지나치게 과격한 면이 있다”며 “현재 총장 사퇴에 대한 의견은 반반인 것 같다. 학내 포털 사이트에서도 의견이 나뉜다”고 총장 사퇴에 신중할 것을 당부했다.

P씨는 특히 서 총장 사퇴에 대한 “리더십의 부재가 염려된다”며 “총장이 사퇴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퇴 후, 이보다 더 많은 게 나이질 것이라 기대되는 상황도 아니다”라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문제 해결 방식을 꼬집었다.

그들은 최근 부모님과의 통화가 부쩍 늘었다고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한 학생은 괜찮다고 하다 보니 정말 괜찮아졌다고 했다. 그녀는 이제 언론이 좀 차분해져야 할 필요가 있지 않겠냐며 끝으로 한마디를 보탰다.

“이미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었고 우리끼리의 문제의식 공유도 충분하다. 이제 더 이상 우리가 불행하다고 단정 짓지 말아 달라. 때로는 상처를 덮어두는 게 더 좋을 때도 있는데, 그게 바로 지금이다.”

                                                                      최설주 기자 aucs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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