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득 의원과 이재오 특임장관의 불편한 관계는 정권 초부터 공공연히 알려져 왔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합심했으나 다음해 치러진 18대 총선을 시작으로 오랜 경쟁관계를 형성했다. 이 장관이 미국 유배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7ㆍ28 재보궐선거에서 당선한데 이어 특임장관으로 임명되자 당 안팎에선 또다시 친이 내 권력다툼이 일 것으로 전망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물론 이 의원과 이 장관은 자신들의 갈등설에 부인했다. 최근에 불거진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사퇴 논란 배후로 지목됐을 땐 두 사람 모두 버럭 화를 냈다. 이 의원은 일흔을 넘긴 자신의 나이를 거론하며 구설에 오른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고, 이 장관은 “소설 같은 얘기”를 기사화한 언론사에 법적대응까지 고려했다. 하지만 뒷말은 끊이질 않고 있다. 오히려 두 사람의 껄끄러운 관계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후문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소문의 진실을 쫓았다.


‘정동기 사퇴 후폭풍’ 인사파동 배경 둘러싸고 여권 핵심 4인방 대충돌

이상득 “섭섭, 오해는 없다”- 이재오 “여론 걱정했지만 안상수 만류했다”


여권 내 잡음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 10일, 안상수 대표가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 판정을 내리면서부터다. 이날 안 대표 등 최고위원 전원은 정 후보자의 자진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피력했고, 이를 청와대와 사전 조율 없이 청와대에 통첩했다. 이어 “30분만 기다려 달라”는 청와대 측의 요청을 무시한 채 이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면서 올 초 “(청와대에) 더는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안 대표의 의지를 재확인하게 했다.

이로써 사건은 당초 청와대와 당의 힘겨루기로 보여 졌으나 실제 정 후보자가 이틀 뒤인 12일 자진사퇴하자 논란은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청와대를 향한 안 대표의 정면도전 내막에 당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 오랜 친구로 알려진 이재오 장관과의 교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정치권의 설명이다. 이른바 ‘이재오 배후설’이다. 결단의 칼을 빼든 사건 당일 새벽, 안 대표는 이 장관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정 후보자의 사퇴를 협의한 직후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를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친이계 분열 노린 ‘음모론’


나아가 ‘이재오 배후설’은 정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면서 이상득계로 분류되는 임태희 대통령실장을 겨냥했다는 ‘권력암투설’로 재생산됐다. 임 실장이 현 정권에서 노동부 장관을 거쳐 지난해 7월 대통령실장에 부임하는 등 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부상하자 안 대표와 이 장관이 견제에 나선 것이라는 주장이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이 장관과 가까운 수도권 친이계 의원들이 ‘임태희 책임론’을 펴기 시작했다. 임 실장이 경동고 선배인 정 후보자를 적극 추천, 관철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선 이번 인사파동에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인물로 임 실장을 꼽고 있다. 3선 의원 출신인 임 실장은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크게 척을 진 사람이 없기로 유명했을 만큼 친화력을 자랑했지만 이번 파문으로 상당한 이미지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임 실장이 매를 대신 맞고 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임 실장의 후견인격인 이상득 의원을 빚댄 말이다. 임 실장과 김명식 인사비서관으로 이어지는 청와대 인사라인이 정권 출범 시 실질적인 인사를 총괄하던 ‘박영준 라인’을 연상시킨다는 것. 김 비서관은 반이상득계가 ‘영포라인’이라고 지적해온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임 실장에 대한 견제는 곧 이 의원에 대한 견제가 되는 셈이다. 권력암투설의 갈등구조가 이재오-안상수 대 이상득-임태희로 나눠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당사자들은 강력하게 부인했다. 이 장관은 정 후보자의 자진사퇴 발표 직전인 12일 오전 한나라당 중앙위 신년하례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기자들이 묻기도 전에 “이명박 정부에는 파워게임도, 2인자도 없다. 대통령 임기가 2년이나 남았는데 어설프게 그런 짓 하는 것은 정신이 없는 짓”이라면서 “소설도 그럴 듯해야 얘기가 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 지도부가 정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압박한 10일 새벽에 이뤄진 안 대표와의 통화에 대해서도 “아침에 늘 하는 전화”라고 해명했다. 특임장관으로서 정당 간부와 수시로 통화할 임무가 있다는 것. 이를 근거로 권력암투설이 제기된 것은 친이계의 분열을 노린 ‘음모론’이라고 주장했다. 이 장관은 이날 “왕의 남자라고 할 때는 언제고 파워게임이라고 하나”면서 “문제가 있으면 내가 대통령에게 ‘국민 여론이 안 좋은 것 같다’고 직접 얘기하지 당을 시켜서 반란을 일으키겠느냐”고 항변했다.

실제 이 장관의 측근 인사는 이 장관 또한 정 후보자에 대한 언론의 문제 제기에 불안해하고 걱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안 대표를 통해 정 후보자를 내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이 장관이 안 대표에게 ‘좀 더 시간을 갖고 두고 보자’고 만류까지 했다는 것. 이를 증명하듯 한 최고위원은 10일 진행된 최고위원회의 당시를 떠올리며 “안 대표도 이 장관을 거론한 적이 없고, 참석한 최고위원들이 모두 부적격 의견을 내자 우발적으로 상황에 밀려간 느낌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원희룡 사무총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사전에 이렇게까지 결론을 낼 줄은 몰랐고, 청와대도 당혹스럽게 생각할 것으로 본다”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장관이 안 대표와 자신의 ‘교감설’을 기사화한 언론사에 법적대응을 고려할 만큼 화가 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 의원 역시 권력암투설에 대한 보도 소식을 전해 듣고 격노했다는 후문이다. 당초 당 지도부에 서운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핵심 당직을 맡고 있는 의원들로부터 상황 설명을 듣고 오해를 풀었다는 게 측근 인사들의 설명이다.

지난 1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 등원하는 과정에서 “(기자들) 들으라고 하는 소리”라고 목청을 높인 이 의원은 “청와대 인사와 나는 관계없다. (이 대통령과) 형제라고 다 책임지느냐, 쓸데없는 소리”라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어 “숨도 안 쉬고 납작 엎드려 사는 사람에게 이럴 수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 의원과 이 장관의 반박은 다음날에도 이뤄졌다. 14일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한나라당 대변인 배은희 의원의 부친상 빈소에서 조우하며 항간의 소문에 대해 농담으로 무마시켰다. 이 장관은 옆자리에 앉은 이 장관을 향해 “(언론에서) 이 장관은 나와 적이라고 하던데, 정말인가”라고 물었고, 이에 이 장관은 특유의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자양강장제를 내밀었다. 이 의원은 “역시 실세 장관은 좋은 걸 마시네”라고 말해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뿐만 아니다. “원래 특임장관은 대통령 보고 자리에 모두 배석하게 돼있다”고 말하는 이 장관에게 이 의원은 “그렇게 실세였느냐”고 응수해 또 한 번 웃음을 유발시켰다. 이날 이 의원은 “내가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내 나이 70이 넘었는데 그것 하나 지키지 못하겠나. 지금 이 나이에 뭘 하겠나. 목숨이 붙어 있는 것만도 다행이지”라면서 권력암투설과 무관함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3일 뒤인 17일, 이 의원과 이 장관은 또다시 배석했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1년 재경 대구ㆍ경북 시ㆍ도민회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같은 테이블에서 마주보고 앉았다. 이 장관은 이날 정 후보자 사퇴 이후 임 실장과 연락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매일 만난다. 관계가 안 좋으면 정상이 아니다”면서 “기자들은 관계가 안 좋기를 바라지만 그럴 일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재오-안상수 ‘윈윈전략’


당사자들의 이 같은 부인에도 불구하고 뒷말은 여전하다. 안 대표와 이 장관 간의 정치적 파트너십 때문이다. 이 장관으로선 차기 대권구도 문제와 개헌 추진을 위해 안 대표의 협력이 필요하고, 안 대표도 오는 4ㆍ27 재보선과 2012년 총선 및 대선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면서 안정적인 당 운영을 위해 여권 주류 내 지분을 가진 이 장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계산에서다. 안 대표가 개헌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이 장관의 개헌론에 보조를 맞추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편, 이번 파문으로 안 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 간 미묘한 신경전도 감지되고 있다. 김 원내대표가 당의 ‘정동기 부적격’ 결정에 대해 절차상 문제를 제기한 것. 인사청문회는 원내 사안인 만큼 원내대표가 결정해야 하는데 당 대표가 앞장 서 결정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김 원내대표가 안 대표의 월권 행위를 비판한 셈이다.

안 대표도 김 원내대표가 곱지만은 않다. 오는 5월4일이면 임기가 끝나는 김 원내대표가 당권 도전을 노리고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김 원내대표가 조기 전대 불씨를 키우는 잠재적 적이 될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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