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윤리 평가선 ‘부정적’

지난해만 M&A 9건, 대한통운까지 인수 욕심 일각선 ‘과욕, 무리수’ 우려
‘돈벌이에만 혈안 돼 사회적 책임에는 무관심’ 부정여론 풀어야 할 숙제

 
<롯데의 광폭행보가 눈부시다. 그동안 ‘보수적인 성향’으로 평가받던 롯데가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고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거듭하고 있다. 외형적 성장은 물론이거니와, 공격적 마케팅으로 소비자들에게까지 ‘롯데’라는 브랜드 심기에 적극적이다. 재계 인사들은 그 중심에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있다고 말한다. ‘글로벌 롯데’를 향한 신 부회장의 야심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롯데의 이같은 공격경영을 외부에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롯데의 후계자’ 신동빈 부회장의 경영능력을 점검했다.>
 
 
롯데는 그동안 ‘보수적 성향’의 기업으로 평가를 받아왔다. 과거 껌·과자 등 소비재 중심의 품목에서 출발해 기업 인수합병과는 거리가 먼,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경영을 해오기로 유명하다.
롯데가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데는 오너들의 성향도 영향을 끼쳤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도 그렇거니와, 아들이자 롯데그룹 후계자인 신동빈 부회장 역시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리고 있는 탓에 그동안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롯데 변화의 중심, 신동빈
 
그런 롯데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6년부터다. 2006년 우리홈쇼핑 인수를 시작으로 지난해에만 타이탄, GS마트·스퀘어, AK글로벌, 바이더웨이 등 총 9건의 굵직한 인수 거래를 마무리했다. 거래금액만 4조1,000억원을 넘는다. 이외에도 베트남 대우호텔 등 인수 마무리 절차 중에 있거나 협상이 아직 진행 중인 딜들까지 합치면 무려 16건(계열사 거래 1건 포함)에 달한다. 롯데가 지난 5년간 성사시킨 M&A만도 약 7조원 규모다.

국내외 사업확장도 쉴새 없이 추진하고 있다. 부산롯데타운(2조원)과 잠실 ‘제2롯데월드(3조)’, 중국 선양 롯데타운(약 2조) 등 진행중인 사업 규모만 10조원에 달한다.
재계 인사들은 이같은 롯데의 변화 중심에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있다고 말한다. 신 부회장은 그룹 경영 전반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한 이후 줄곧 스피디하고 공격적인 경영을 지향해 왔다. 신 부회장이 지난해 선언한 그룹 비전(‘2018 아시아 TOP 10 글로벌 그룹’)에서도 이같은 성향을 잘 드러나 있다. 그룹 비전 ‘2018 아시아 TOP 10 글로벌 그룹’은 2018년까지 매출 200조원을 올려 아시아 10대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다. 최근 롯데가 M&A 시장의 큰손으로 나선 것도 신 부회장의 적극적인 글로벌 야망이 그대로 투영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롯데의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재계 인사는 “신 부회장의 행보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 강조하는 ‘거화취실(去華就實 드러나는 화려함을 배제하고 내실을 지향한다)’과는 분명 다르다”면서 “몇년간 이어지던 경영능력에 대한 세간의 의구심도 최근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진행한 M&A로 상쇄해나가는 모습이다. 특히 유럽 증시의 롯데쇼핑 동시상장을 위해 직접 IR을 할 만큼 적극적인 모습에서부터 과감한 국내와 해외를 넘나드는 M&A를 통한 몸집 불리기는 신격호 회장 시절에는 보지 못할 정도의 대담한 행보”라고 말했다. 아버지인 신 회장이 여전히 경영 일선에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은연중 신 부회장 체제를 인정한 발언인 셈이다.

실제 재계에서 롯데그룹의 실질적인 경영자로 신 부회장을 꼽는 데에 이견은 없다. 신격호 회장은 일찌감치 장남 신동주 부회장에게 일본롯데를, 차남 신동빈 부회장은 한국롯데를 경영하는 후계구도를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신 부회장 입장에선 아직까지 안심할 수 없는 상태다. 롯데그룹의 지분구조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인 것.
롯데그룹은 수많은 계열사만큼이나 지분구조 역시 복잡하다. 그러나 가만히 뜯어보면 호텔롯데가 그룹 정점에서 실질적인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고, 그 아래로 계열사와 신격호 회장 일가가 일정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형태로 짜여져 있다.

예를 들면 그룹 대표격인 롯데쇼핑의 경우 동주·동빈 형제가 각각 14.58%, 14.59%씩 사이좋게 나눠 갖고 있고, 호텔롯데가 9.58%를 보유하는 형태다. 호텔롯데는 이외에도 롯데제과(3.2%), 롯데물산(31.1%), 롯데건설(36.3%) 등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당연히 호텔롯데의 지분을 더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롯데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차지할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다. 문제는 호텔롯데의 최대주주가 일본롯데홀딩스라는 점이다. 전체 지분의 19.2%를 갖고 있는 일본롯데홀딩스는 신동주 부회장이 최대주주다.

롯데그룹이 신동빈 부회장 체제로 굳어졌다는 데에 의심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바로 이러한 지배구조로 인해 두 형제간의 후계자 경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2% 부족한 경영능력
 
재계에서는 한국롯데의 실질적인 경영권을 갖고 있는 신동빈 부회장의 경영성과가 부진할 경우 언제든지 롯데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형제가 한판 격돌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일본 롯데보다 10배 정도 덩치가 큰 한국롯데의 경영성과에 따라 후계 싸움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여기에 신격호 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의 역할에 따라 후계구도에 새로운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신 부회장 입장에선 롯데가 추진하는 사업 하나하나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롯데가 최근 욕심을 부리고 있는 ‘대한통운 인수’ 문제는 관심거리다. 외부의 시각이 그리 좋지 못하다. 국내는 이미 경쟁 격화로 대행기업을 쓰는 3자 물류 가격이 상당히 저렴해 롯데의 대한통운 인수는 실익이 크게 없어 보인다는 것이 업계의 전반적인 평가다. 부채비율 100% 이하의 우량 기업이라 하더라도 계속된 대형 프로젝트를 동시에 추진한다는 것은 조직 피로도를 누적시키고, 프로젝트의 실패 가능성을 한층 높인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롯데는 중국 사업에서 간신히 적자만 면하고 있는 형국이다. 80개가 넘는 할인점 점포를 마련했지만, 아직도 현지 업계 10위권에도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관심을 보이고 있는 동남아 시장이나 인도네시아 시장도 사정은 그리 녹록치 못하다. 이 와중에 대형매물인 대한통운 인수전에 뛰어든다고 하니, 업계에서 의아하다는 반응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롯데가 해외사업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는 건, 신 부회장의 고집스런 의지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일단 먹고 보자’는 식의 신 부회장의 투자 방식에 대해 업계 한쪽에서는 우려의 시선도 보내고 있다.
재계에선 그러나 신 부회장이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롯데를 향한 ‘부정적 여론’이라는데 입을 모은다. 그동안 롯데는 한국 경제발전과 사회적 책임에는 관심없는 ‘짠돌이 기업’으로 낙인찍혀 왔던 게 사실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통큰’ 시리즈 논란은 대표적 예다. 롯데는 지난해 연말, 5,000원짜리 초저가 치킨(이하 ‘통큰치킨’)을 내놓으며 소비자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끄는데 성공했지만, 영세 소상공인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대기업의 횡포라는 비난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더구나 기업형 슈퍼(SSM)를 규제하기 위한 유통법·상생법이 시행된 지 불과 2주일 만에 영세상인들의 업종을 취하면서 롯데의 ‘기업윤리’ 문제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돈벌이만을 위해 기업윤리 따위는 버린 회사’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통큰치킨 후속타로 등장한 ‘통큰갈비(LA갈비)’ 역시 조기 매진 행진을 기록했지만, 온 나라가 구제역 파동으로 충격에 휩싸인 상황에서 이를 돈벌이에 이용했다는 여론의 매서운 질타를 받아야 했다.
롯데는 노동자들의 인권이나, 중소기업과의 상생에서도 ‘낙제점’을 받고 있다. 피자집이나 스시뷔페를 오픈하는 것처럼 가장한 뒤 SSM을 기습개점하는가 하면, 최근엔 잠실 롯데쇼핑몰 상인들 200여명에 대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해 논란이 되고 있기도 하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한 인사는 “롯데는 무엇보다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힘을 써야 할 것”이라면서 “신 부회장 체제 이후 롯데가 외형적으로 성장을 보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여전히 ‘외부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조직문화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업이라는 이미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외형 성장만큼이나, 신뢰 성장도 신경써야 할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 역시 “신 부회장의 ‘신뢰’ 경영철학이 그룹 홍보실 등 핵심부서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돈벌이에만 혈안이 돼 세상인심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할 정도”라면서 “최근 롯데가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외치며 협력업체를 방문하는 것에 대해 ‘쇼’라고 평가절하 받는 것도 그간 쌓아온 이미지의 결과물이다. 소비자들의 신뢰는 기업의 흥망성쇠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롯데 신동빈 부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가 사업을 하는 것은 소비자의 생활의 질을 높이고 그런 면에서 여러가지 사회에 공헌을 하는 것이다. 그런 일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는 경영자고 되고 싶다”고 말했다. ‘통큰 시리즈’ 파문과 그동안의 롯데의 비윤리적인 행태를 겪은 국민들은 신 부회장의 이같은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지는 가운데, 공격적이고 과감한 투자로 롯데의 DNA를 바꾸고 있는 신 부회장의 도전이 어떤 결실을 맺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소현 기자 coda0314@naver.com
 
본지 지면 기사게재 일자 201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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