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희생양 구제” vs “사상 최악의 인사”


한ㆍ미 간 쇠고기 협상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민동석 외교안보연구원 외교역량평가단 단장이 외교부 2차관으로 내정됐다. 청와대는 지난 10월26일 민 단장의 차관 내정 소식을 전하면서 “1998년 외무부에서 외교통상부로 개편된 이후 통상교섭분야 전문가 출신으로 차관에 임명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강조, “기관의 통합성을 추구하고 통상과 외교를 연결하는 역할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소식이 발표된 직후 야권은 한 목소리로 이명박 정부를 성토했다.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면서 대국민 사과까지 했던 촛불시위의 촉발 장본인을 중용한 것은 ‘오기 인사’이자 ‘보은 인사’이며 “회전문 인사로도 표현이 부족한 각설이 인사”라고 비난했다.

실제 민 단장은 농림수산식품부 통상정책관으로 재직하던 2008년 한·미쇠고기 협상 수석대표를 맡아 쇠고기 협상을 벌이면서 국민 먹거리에 대한 안이한 인식으로 구설에 올랐었다. “특정 위험물질만 제거하면 99.9% 안전하다. 마치 독을 제거하고 복을 아무런 걱정 없이 먹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주장한 데 이어 그해 8월 국회 쇠고기 국정조사 특위의 기관보고에서는 “한·미 쇠고기 협상은 미국이 우리나라에 준 선물”이라고 말해 국민들을 경악케 했다.

결국 민 단장은 당시 정운천 농수식품 장관과 함께 책임을 지고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미 쇠고기 협상에 대한 자신의 소신만은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퇴할 당시에도 “귀를 막은 사람들에게는 (설득이) 소용없었다”면서 근거 없는 괴담과 선전선동을 탓했다. 이후 민 단장은 쇠고기 협상과 촛불집회에 대한 비판 등을 묶어 <대한민국에서 공직가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을 내 “쇠고기 협상은 훌륭한 협상이었다”고 평가했다.

민 단장의 야인생활은 불과 4개월 만에 끝났다. 2008년 11월 외교부 간부로 특채돼 현재의 자리에 올랐고, 그로부터 2년여 만에 외교부 2차관으로 전격 발탁된 셈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쇠고기 협상 이후 온갖 어려움과 개인적 불이익 속에서도 소신을 지키는 공직자에게 기회를 주고자 배려한 것”이라면서 “자기 할 일을 다 했을 뿐인 공직자를 희생양으로 만들고 그대로 나둘 수 없다는 게 이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민 단장의 내정 소식이 전해진 같은 날, 경기도가 민 단장의 도서구입을 협조해달라는 공문을 내부통신망에 발송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또 다른 파문을 낳았다. 도 내 한 관계자는 민 단장의 도서구입 협조 공문을 발송한 배경에 대해 “최근에 개최된 북부기우회에서 동두천시가 섭외한 민 단장의 특강에 감동을 받은 ‘윗분’들이 도서를 구입해 자료실이나 도민안방 등에 비치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 공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민 단장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는 가운데 외교부 역시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당초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민 단장의 내정에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더욱이 경기고 동문 관계인만큼 구설에 오를 수 있다는 판단에 조심스러워했던 게 사실. 그러나 김 장관은 “외부 인사 영입이 여의치 않아 민 단장을 추천했다”며 항간에 떠도는 소문들을 일축시켰다. 물론 김 장관이 본인 스스로 추천했다고 밝혔으나 이번 인사가 청와대의 의중이라는 사실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인 만큼 외교부는 유명환 전 장관의 딸 특채파문으로 이어진 ‘개혁’과 ‘쇄신’이라는 과제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됐다.

한편, 정운천 전 농수식품 장관의 복귀도 점쳐지고 있다. 상반기엔 ‘총리 발탁설’이 끊이지 않더니 최근엔 장관급인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후임 위원장에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인사 철회를 촉구하는 야권의 반발 강도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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