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의 유언으로 유지되는 ‘시대착오적 범죄행위’

신문게재일자: 2005. 10. 3


재계 총수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꼽혀오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이미지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X파일 사태로 불거진 불법정치자금 제공 및 기아차 인수 로비 의혹과 함께 삼성의 편법 경영승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에버랜드 변칙증여 사건’ 등으로 이 회장의 이미지에 크게 흠집이 났기 때문이다. 최근 시민단체와 정계 일각에서는 이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와 사법처리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 X파일 사태 등 삼성의 불법 및 편법 행위가 이 회장 일가의 비윤리적인 경영과 소유지배구조에서 비롯됐다는 비난이 일면서, ‘반삼성’ 분위기가 ‘반이건희’ 기류로 옮겨가고 있다. 본지에서는 삼성 회장으로 등극한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이건희 회장’에 대해 4회에 걸친 기획시리즈를 통해 집중 해부한다.

(본문)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에도 어긋나는 불법행위이며, 죽은 자(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유지를 계승하고자 하는 ‘시대착오적인 범죄행위’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현재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등으로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이 했던 말이다.
김 위원장은 “반사회적이고 반역사적인 가치관으로 무장한 삼성족벌세습 경영자들이 무노조 경영을 유지하려는 것은 정신병자의 아집에 불과하다”며 “전염병처럼 친족회사 및 하청노동자와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까지 무노조 경영유지를 위한 악랄한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02년 7월 ‘삼성노동자 탄압백서’를 출간했고, 2003년에는 ‘삼성일반노조’를 설립해 수감되기 전까지 삼성의 무노조 경영과 노동자 탄압에 대한 비난을 주도해왔다.
김 위원장은 2002년 ‘삼성노동자 탄압백서’ 출간으로 인해 지난 2003년과 2004년 삼성의 두 차례에 걸친 고소로 1심에서 실형 10월이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고, 항소심에서는 실형 8월이 선고돼 현재 부산교도소로 이감돼 대법원 확정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옥중에서도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겨냥한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9월 20일 김 위원장은 서신을 통해 ‘삼성의 무노조 노동자 탄압과 뇌물수수 이건희 구속 처벌’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김 위원장은 서신에서 “이번에 이건희를 구속해 온갖 불법비리, 의혹사건을 파헤쳐야 한다”면서 “이건희 구속에 맞선 단호한 투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 해고 노동자과 노동계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에 대해 석방운동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최석철 전 삼성중공업 어용노조 위원장은 “삼성이 무노조 경영에 대한 비난여론이 확산되자 김성환 위원장을 고소함으로써 ‘반삼성’ 세력들에 대한 강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이라며 “삼성 해고 노동자들과 시민단체, 민주노총 등과 연계해 김 위원장의 석방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본격 공론화되기 시작한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최근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반삼성’ 기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X파일 사태나 편법 경영승계 등 삼성의 불법·편법 행위들은 서민들이 직접 피부로 느끼기 어렵지만 삼성의 무노조 경영과 노동자 탄압은 서민들의 생활과 직접 관련이 있어 삼성을 향한 비난의 중심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현재 삼성의 노동탄압을 비난하며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삼성의 노동탄압이 사실상 반삼성을 확산시키는 주요 원인”이라며 “삼성이 ‘반삼성’ 기류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불법·편법 행위에 대한 처벌과 함께 반드시 무노조 경영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컷) 삼성 무노조 경영의 실상
삼성과 싸우고 있는 대부분의 삼성 해고 노동자들은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감시’와 ‘협박’으로 압축한다.
삼성이 노조설립 주동자나 관련자들에 대한 상시감시 체제를 가동하고, 노조설립 직전과 직후에는 협박과 회유를 통해 노조설립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삼성은 복수노조가 인정되지 않는 현행법을 이용해 노동자들의 노조설립 움직임이 포착되면 이들보다 한발 앞서 인사팀 관계자들이 어용노조를 만들기도 한다.
삼성SDI 해고 노동자인 김모씨는 “노조설립에 가담하게 되면 우선 협박과 회유를 통해 노조포기각서를 쓰도록 강요하고, 가족과 친인척 등을 포섭해 노조 포기 설득작업에 투입시키기도 한다”며 “노조 설립이 무산되더라도 관련자들은 해고되는 경우가 많고, 그렇지 않을 경우 해외출장 등을 보내 격리시키거나 감시를 늦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씨는 노조포기각서를 쓰고도 지속적으로 감시를 받다 말레이시아와 브라질로 출장을 보내져 격리되기도 했다고 한다.
삼성은 또 노조설립을 사전에 막기 위해 ‘어용노조’를 설립하기도 한다.
최석철 전 삼성중공업 어용노조 위원장은 “삼성은 노동자들의 노조설립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직원들의 이름을 도용해 위조된 서류를 통해 어용노조를 만든다”며 “어용노조임이 드러나 노동부로부터 노조해산명령을 받기도 했으나 이를 무시하고 지속적으로 어용노조를 유지해가며 노동자들의 권리를 짓밟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계열사에서 그치지 않고 하청업체의 노조설립까지 막아내고 있다.
삼성전자 하청업체 애니스 노조 위원장이었던 오세현씨는 노조를 설립했다는 이유로 삼성전자와 하청업체 사장으로부터 노조 해체 압박과 함께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오씨에 따르면 노조를 설립하자 삼성전자 세탁기 사업장 지하실에 위치한 오씨의 작업장으로 삼성전자 인사팀 관계자들이 찾아와 노조 설립을 철회할 것으로 종용했으며, 애니스 대표인 주모씨도 이에 동참, 오씨를 강제로 차에 태워 3시간 정도 노조탈퇴 협박을 받았다.
또 삼성전자 인사팀 직원이 삼성측이 작성한 탈퇴서를 그대로 쓸 것으로 강요해 억지로 탈퇴서를 썼다고 한다.
오씨는 이후 스트레스로 심각한 긴장성 두통과 불면증으로 인해 신경외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컷) 무노조 경영과 이건희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기 위한 노조설립 방해와 노동탄압은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바통을 이어받으면서 조직화되고 구체화된다.
이 회장이 삼성의 총수가 된 지난 87년부터 당시 삼성그룹 비서실(현 구조본부)은 전 계열사들이 무노조를 유지할 수 있도록 ‘345수호전략’을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인사팀 산하에 ‘지역대책위원회’라는 비밀 조직을 두고 전국 삼성 사업장의 노무관리를 총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SDS 등 주요 계열사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수원사업장의 ‘지대위’가 대표적으로 별도의 사무실을 두고 운영되고 있다.
특히 지대위 직원들은 사업장 주변을 돌며 노조설립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주요 업무이며, 노조설립 관련자들을 찾아 그들을 감시하는 역할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석철 전 삼성중공업 어용노조 위원장은 “삼성이 지대위를 운영하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며 “이들의 핵심 업무 중에 하나는 구청, 경찰 등 유관기간의 공무원을 포섭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경기일반노조 한 관계자는 “삼성이 비밀조직 등을 운영하면서 노조설립을 막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건희 회장이 1인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노조가 설립되면 노동자들의 관리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회사의 경영 투명성 문제가 불거져 편법 경영승계나 비자금 조성 등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mosteven@naver.com





(박스) 인터뷰
최석철 전 삼성중공업 어용노조 위원장

제목: 무노조는 삼성공화국 만들기의 기초가 된 ‘삼성헌법’
부제: 이건희 일가의 지배구조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존재
명의도용을 통한 어용노조설립에서 감시·협박·회유까지


<일문일답>

▲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어떻게 보나
-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는 안된다”는 말이 빚어낸 총체적 노동탄압으로 삼성공화국 만들기의 기초가 된 삼성헌법이다.
창업주의 말대로 삼성은 무노조 경영을 위해 노동자 탄압의 길을 걸어오며 무수한 노조파괴의 업적을 이뤄낸 반면 노동자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노동탄압의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 것이다.

▲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유지하려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이익 고수의 경영방침이 낳은 결과다. 노조가 단결하면 경영권에 대한 도전은 불 보듯 뻔하다보니 전제경영을 하려면 이병철 창업주의 주장대로 무노조경영이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기업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노동자의 권리를 부정하고 국가의 법도 무시한 채 경영유지를 위해 불법을 자행한 무노조 이념은 지탄의 대상인 것도 사실이다.
삼성이 매월 공무원에게 조공을 바치며 공권력을 삼성의 시녀로 둔갑 시키면서까지 창업주의 시대를 역행하는 경영이념과 재벌 일가의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노조 경영이 존재하는 것이다.

▲ 삼성중공업의 무노조 경영에 따른 실상은?
- 현재 어용노조를 둔 삼성중공업은 대법원판결까지 행정관청의 비호로 유지되지 있다.
또한 삼성중공업의 특별감독 향응비리 및 산재 부정처리 등은 현재 대통령의 재조사 지시에도 불구하고 노동부에서 무마되고 있으며, 위증을 통해 검찰에서도 무혐의 처분되는 삼성의 노동탄압은 공권력의 비호로 무장된 상황이다.
최근 삼성중공업의 어용노조와 관련, 직접 노동부장관 면담을 직소했고, 이는 노동부 감사관 면담을 통해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동부는 문제의 핵심을 파헤치지 않고 오히려 당사자에게 “무엇을 요구하느냐”라는 반문으로 기업의 중재자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삼성중공업 어용노조 위원장으로서 경험한 삼성의 노동탄압과 노조탄압은?
- 삼성은 무노조경영을 고수하기 위해 88년 4월 노사위원이던 본인과 9명의 이름을 도용해 어용노조설립신고를 했다. 관련문건을 보면 서명 및 문건작성에 어용노조위원장이던 본인과 동료들의 필적은 찾아 볼 수 없다. 위조된 것이다.
이렇게 명의를 도용한 노조설립 선 신고를 내세워 행정관청과 결탁해 처리연기요청 등으로 시간을 끌며 뒤편에서는 대법원판결에 의해 노동부의 해산명령까지 받은 어용노조를 설립해 행정관서의 비호 하에 신고필증을 교부받는 등 노조설립을 방해했다.
특히 삼성은 어용노조에 등록된 본인과 동료들을 계열사 연수원에 감금하고 회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부서장을 고향 부모에게 보내 노조를 만들려는 몹쓸 사람으로 몰아세우고 금전으로 매수하려 했고, 이 사건으로 본인의 모친은 식음을 전폐하고 결국 병으로 58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또한 처가까지 동원하기 위해 천주교 신자이던 본인의 종교까지 이용해 처남댁까지 회유하기도 했다.
삼성은 현장 노동자였던 본인을 삼성전관 인사과장으로 전배를 종용하다 실패하자 자신들이 사후 관리할 이유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장명의로 전세계약한 곳에 이삿짐을 보내 그곳에서 살게 했다.
이에 본인은 자진사퇴했고, 이후 삼성측에서 제공한 집에서 감시에 고통을 당하다 도주했으나 결국 삼성 관계자들이 본인을 찾아내 감시를 계속해 지난 93, 94, 95년에 3차례나 가족을 태운 승용차를 몰고 가 삼성본관을 추돌했었다.
이에도 삼성측의 회유와 감시는 본인이 취직할 때 마다 해당 회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최석철은 악랄한 노조위원장 출신”이라며 입사를 방해하기도 했다.

▲ 삼성이 무노조 경영 등 노사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나.
당연히 노조 인정을 전제로 과거 저지른 노동자 탄압을 인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이 이건희 회장이 말하는 반 삼성 1% 수용론에 대해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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