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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식의 생활경제] ‘소박한 삶’ 속에 담긴 다운쉬프트 해법
  • 윤준식
  • 승인 2017.04.1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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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돌아다니다보니 대선을 앞두고 경기가 최악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오랫동안 장사해온 어르신들은 “보통 선거 전에는 돈이 풀리고 돌지 않느냐? 이젠 그런 것도 없나보다”라는 말씀도 하신다. 선거 전에는 정부와 여당이 예산지급을 서두르며 여기저기 공공부문에서 발주하는 사업들이 활성화되며 경기부양에 동인이 되어주곤 했다.
굳이 대통령 탄핵이 원인이라서가 아니라 한국경제의 규모가 과거보다 커져 정부지출이나 경기부양책이 끼치는 영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결국 동력은 민간부문에서 나와야 하고 민간부문 중에서도 중소기업의 비중이 커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 아닐까?
정부와 기업말고도 큰 경제주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가계(家計), 즉 나 자신이다. 그러나 수천만 명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다보니 스스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다운쉬프트, 현실에선 말처럼 쉽지 않다

앞선 연재에서 다양한 저작물들을 토대로 점점 다운쉬프트라는 주제에 포커스가 맞춰지고 있는데 다운쉬프트의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하노 요이의 <3040 로드맵>이란 책의 내용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곤란하다. 업무의 강도나 양을 줄이고 여유로운 삶을 살자는 게 골자인데, 이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가져온다.
대개 업무의 강도와 양을 줄인다는 것은 소득의 감소를 의미한다. 그런데 업무의 강도와 양을 줄이는 것과 예상소득감소는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선 야근과 휴일근무 없는 직장을 선택하고자 했을 때 오는 난감함의 첫 번째가 업계 관행이다. 동종 업종이 모두 야근과 휴일근무에 시달리고 있다면 같은 업종으로 이직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직업을 가져야한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경력이 전무한 업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숙련된 노동자로서의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결론이 나온다.
둘째로 같은 업계, 업종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더라도 업무의 강도와 양을 줄였을 때의 임금은 현저히 적다. 대개 임금협상이 정량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임금을 다소 상향조정하되 다른 부가업무를 언급하는데, 말처럼 단순하고 쉽지 않다. 어떤 면에선 월 몇십만 원에 주당 15시간 가량의 업무를 더하고 있는 셈인데, “저는 그 돈 안받고 일 덜하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고용자체가 되지 않는다. “아기 분유값 벌려면 어쩔 수 있나요?”하는 식으로 스스로 위안거리를 찾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따라서 취업공고 자체가 콤팩트하게 나오는 것을 쫓아갈 수밖에 없는데, 대개 급여조건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같은 수준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부업을 병행할 수밖에 없는데, 이 또한 ‘다운쉬프트’라는 새로운 삶의 기준을 무너뜨린다.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변화를 추구한 것인데 자신이 빠져나온 토굴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올 수 있을까?

삶을 소박하게 만들라

결국 소비수준을 낮추는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한 거부감은 만만치 않다. 중대형승용차를 타던 사람이 경제성을 생각해 소형승용차로 차를 바꿨다가 얼마 못가 차를 다시 중대형승용차로 바꿨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을 것이다. 그냥 웃고 넘어가기에는 심각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대부분 고교시절 국어시간에 ‘안빈낙도(安貧樂道)’의 미학을 배운 적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시와 서화를 남긴 선비들의 이상적인 삶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 정작 사전적 의미를 알고 보면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 생활이다. 사전은 이를 ‘구차(苟且)하고 궁색(窮塞)하면서도 그것에 구속(拘束)되지 않고 평안(平安)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살아감’, ‘가난에 구애(拘?)받지 않고 도(道)를 즐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누가 자처해서 구차하고 궁색하게 살고 싶은가? 도를 즐긴다고 하지만 가난하고 싶은가?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자답해보자. 가난한 삶이 좋은가? 그렇게 살고 싶은가? 필자도 가난은 싫다. 가난하기에 가난하게 사는 거지, 가난하지 않다면 가난하고 싶지 않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사대부, 선비들의 문화에 대한 친화력이 있기에 안빈낙도의 미학을 갖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귀영화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즉,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 한국인이 원하는 ‘다운쉬프트’가 아닐까 한다.

소로우식 ‘안빈낙도(安貧樂道)’

이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책이 <소박하게 사는 즐거움>이다. 이 책의 첫 장은 미국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를 인용하며 시작한다.
소로우는 “나에게는 일 년 내내 추수감사절이다”라는 표현에 이어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그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이토록 마음이 흡족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라는 감흥을 덧붙인다.
이 말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가진 것이 없어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도 도(道)를 논하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서다. 가진 것 없는 것은 동일하지만 ‘일 년 내내 추수감사절’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모두가 풍요롭고 모든 것이 풍요롭다면 미래를 위한 저축도 더 많은 이윤도 고민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즉 내 주변을 다운쉬프트가 가능한 인프라 구조로 만들면 된다는 이야기다.
<소박하게 사는 즐거움>은 이를 심플라이프(Simple Life), 심플리시티(Simplicity)로 표현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소박함이란 사랑하는 삶을 창조해내는 것”이라 정의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박함을 단지 검소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검소함이 비록 소박함으로 가는 열쇠이기는 하지만, 소박함은 그보다 훨씬 커다란 개념이다”라고 설명한다.

빈곤을 벗어나는 것도 소박함의 의미

이 책에서는 빈곤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빈곤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소박함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절약을 위한 조언이 아니라 새로운 정책”이라며 “최저임금을 올리고 양질의 직업과 적절한 주거, 의료보험 등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면에서는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중향평준화’와 비슷한 개념의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어떻게하면 개인과 공동체가 소박한 삶을 통해 다운쉬프트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이후 수 차례에 걸쳐 자세한 이야기를 전개해 보도록 하겠다.

윤준식  ventureman@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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