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인간 소모품

‘개란 과연 무엇일까? 외로운 인간의 벗일까, 애완용 물건일까? 혹은 가진 자들의 비열한 충복일까? 아무튼 시골에서는 대부분 잡아먹힌다는데, 도시에선 개가 사람을 비웃거나 잡아먹기도 하는 세상이야. 선감도…… 오래 전에 시건방진 개를 살짝 걷어찬 죄로 선감원에 끌려왔다가 행방불명돼 버린 그 노랑머리 형도 그렇게 당한 셈이었지.

<전편 이어서>

그곳에 여자가 산다는 건 알았지만 몇 달 동안 뒷모습을 겨우 한번 슬쩍 봤을 뿐이야. 그런데 문틈으로 반쯤만 보이는 얼굴은 그닥 착한 인상은 아니었으나 잠기 남은 게슴츠레한 눈이나 작은 입술이 제법 예쁜 편이었어. 용건을 밝히니까…… 대뜸 싫으면 나가라는 거야.

그 순간 머리가 빡 돌더군. 그리고 그동안 숱한 밤에 꾼 꿈이 소용돌이쳤어. 난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억지로 문을 밀고 들어갔지. 발악하는 하얀 스피츠의 주둥이를 걷어차니깐 켁 하곤 나뒹굴더군. 목을 꽉 밟자 조용해지는데 갑자기 여자가 마치 본인이 살해당하는 듯 새된 비명을 질러대더군. 잭나이프를 꺼내 개의 골통에 찔러 놓고 물었어. 이것처럼 시체가 될래요, 조용히 하고 내 말대로 할래요?

여자는 스피츠가 죽기 전처럼 떨며 고갤 끄덕이더군. 난 탁자 위에 놓인 담뱃갑에서 가느다란 개피를 하나 뽑아 불을 붙이곤 물었어. ‘애완견을 키우는 건 좋습니다만, 이웃에 피해를 주진 않아야죠. 그렇죠?’ ‘그러니까…… 싫으면 그냥 나가 달라고 부탁드렸잖아요.’ ‘방세를 냈으니 나도 여기 살 권리가 있어. 무엇보다 눈꼴사나운 건 개에게 나라는 한 인간의 꿈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개를 자식처럼 품에 안거나 등에 업거나 예쁘게 치장시켜 유모차에 싣고 다니는 걸 보곤 사람인 줄 알고 난 깜짝 놀랐어요. 그건 괴상스럽지만 뭐 개인의 취향이라고 쳐둡시다.

하지만 남의 취향도 존중해야죠. 조용히 짖도록 훈련을 제대로 시키거나 성대 수술을 하거나 알람 목걸이를 채우는 등 방법이 많은데도 왜 계속 개 멋대로 짖게 하나요?’ ‘나한텐 사람보다 더 소중해요.’ ‘왜, 왜!’ ‘당신한텐 한 마리 개로 보일지 모르지만 내겐 마음의 벗이에요. 사람이 채워 주지 못하는 정을 주니까요. 내가 사람들에게 당한 스트레스를 다 받아 줬어요.’ ‘그 개의 스트레스는 내가 다 받았는데도?’ ‘그건 내 알 바 아녜요. 정 고까우면 이런 행패를 부리기보단 경찰서에 신고하면 되잖아요.’ ‘나도 다 알아 봤어. 그런데 아직 처벌할 법이 없대. 국회의사당에 가서 청원이라도 해보라고 조언해 주더군.’

‘나라에서도 허락하는데 왜 당신이 나서서 지랄이에요? 살인마 같으니!’ ‘그럼 지금부터 진짜 개지랄을 해야겠군요.’ 난 여자의 발목을 줄로 묶어 둔 뒤 개의 목을 자르고 털가죽을 벗겨냈어. 여자는 손가락으로 눈을 가린 채 흐느끼더군. 배를 갈라 내장을 긁어내고 다리를 잘라 버렸어. 어찌 보면 나무토막 같기도 한 그 물체는 ‘컹컹, 나는 사람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설령 개 같은 나쁜 짓이었더라도……’ 라고 무언의 항변을 하는 듯하더군. 그것을 토막토막내 놓고 나는 간을 집어…… 전에 이를 갈며 상상했듯 질겅질겅 씹으면서 여자에게 말했어. ‘냄비에 넣어 푹 삶아. 내장도 깨끗이 씻어서 넣으면 맛이 날 거야.’ 난 바람 쐬러 가는 척 슬며시 나갔다가 급히 소주 한 박스를 사 와 마루에 던져 놓았어.

죄악

여자는 살기를 느꼈는지 의외로 고분고분 개장국을 끓여 내놓더군. 나는 소음의 고통 속에서 공상을 하며 작정했듯, 겉옷을 벗어 던지곤 팬티 한 장만 걸친 채 앉아 소줄 마시고 개고기를 쩝쩝 씹어 먹기 시작했어. 그렇게 짖어대던 놈은 삼키는 족족 소화돼 에너지를 솟게 하더군.

그녀는 책상 서랍에서 안경을 꺼내 쓴 눈으로 노려보다가 갑자기 외면하는 둥 발작 일보 직전이었어. ‘그러니 그 전에 이웃에 대한 생각을 조금쯤 해줬으면 얼마나 좋아. 너 좋은 대로 했으니 이제 내 마음대로 해보겠다!’ 나는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여자를 안아 들고 바로 옆의 아늑한 방으로 가서 침대에 던져 놓았어. 그리고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옷을 찢어 벗겨 알몸뚱이로 만들었지. 희고 보들보들한 그 몸을 덮치자 그녀는 한 순간 토끼처럼 흠칫 놀라더니 곧 가슴만 팔딱거리며 가만히 있었어.

개기름이 번질거리는 입으로 그녀의 도톰한 입술을 빨자 앙탈을 부리더니 콧구멍을 끈적끈적 핥으니까 숨이 가쁜지 엉겁결에 혀를 살짝 내밀더군. 그걸 붙들어 문 채 세차게 흡입하자 조금씩 빨려 들어오더군. 나는 증오심과 함께 변질된 모종의 애정을 섞어 그녀를 유린하기 시작했어. 입술이 서로 접촉한 뒤부터 여자의 앙탈은 한풀 꺾였지만 냉랭한 기색이 깃든 무표정한 얼굴로 변하더군. 몸도 차츰 차가워지는 느낌이었지. 만일 그녀가 눈물 흘리며 용서를 빌었다면 어쨌을지 모르지만……전혀 그러질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내 눈에 사람이 아니라 한 마리의 암캐로 보이더군.

이런 짓은 나쁘겠지만, 이러지 않으면 또 언제 개를 사서 도도하게 사람을 괴롭히겠지…… 난 차라리 죄악을 짓고 싶었어. 설빙 같은 그 살갗도 내 몸에 양기가 차올라 뜨거우니 오히려 삼삼허니 괜찮더라구. 그때부터 기나긴 섹스의 향연이, 만리장성의 대장정이 시작되었어. 복수를 하듯 강력하게 조졌지. 어랍쇼! 그런데 진짜 비명을 내지르는 거야. 여우같이 생긴 것과 달리 숫처녀였나봐. 난 더 강하게 밀어붙였지. 신음소리는 고통인지 쾌감인지 분간키 어려웠지. 난 일단 스톱하고 내려왔어. 슬쩍 보니 침대 시트에 피가 묻어나 있더군.”

“처녀혈이었나 보구나. 그것으로 복수극은 끝이 났겠지?” 누군가 은근히 말했다. “그럴 수야 있나. 얼마나 얄미웠는데. 난 성이 아직 다 풀리지 않았어. 큰 솥에 끓여 놓은 보신탕을 다시 한 그릇 듬뿍 떠서 투명한 소주와 함께 비우고는 또 여자의 몸 위로 올라가 광란적으로 욕망을 채웠지. 침대 위에 개처럼 엎드리라고 명령하곤 뒤에서 공격하기도 했어. 여자는 녹초가 된 채 할딱거리면서 예쁘고 귀여운 짐승마냥 애처로이 짖으며 신음하더군. 밤이 새도록 그 짓은 계속되었어. 한 고갤 넘고 쉴 때마다 개고기로 양기를 보충하긴 했지만, 혹시 그 여자가 괴로워하기만 했다면 나도 웬만큼 하다 질려 버렸을지 몰라. 그런데 상체는 나를 거부하면서도 하체는 말미잘처럼 자꾸 달라붙는 거야. 결국 새벽녘에야 끝이 났어. 개장국 솥은 비고 내 양기도 다 빠져 나갔는데……그 여자만 열락에 빠져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더군. 그곳에 더 머물러 있었으면 어찌 되었을까? 하지만 난 아침이 오기 전에 홀몸으로 도망치고 말았어.”

“어따, 잘났어. 개호주 같은 놈! 허지만 어딘가 삼류 동시상영 영화 같은 점이 없지도 않구먼.” 시간도 꽤 늦었는데다 더 이상 나서는 사람이 없어 파흥이 되었다. 반장의 지시로 주변을 정리 정돈한 후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문득 고요해졌다. 청운은 눈을 감은 채 길었던 하루를 회상해 보고 있었다. 어떤 날은 순식간에 지나가기도 했지만 이 날은 마치 열흘이나 된 듯 무겁게 느껴졌다.

‘개란 과연 무엇일까? 외로운 인간의 벗일까, 애완용 물건일까? 혹은 가진 자들의 비열한 충복일까? 아무튼 시골에서는 대부분 잡아먹힌다는데, 도시에선 개가 사람을 비웃거나 잡아먹기도 하는 세상이야. 선감도…… 오래 전에 시건방진 개를 살짝 걷어찬 죄로 선감원에 끌려왔다가 행방불명돼 버린 그 노랑머리 형도 그렇게 당한 셈이었지. 어쨌든 이제는 애완견 시대인 만큼 사람도 개한테 조심해야 해. 개를 자식새끼처럼 꾸며서 품에 안거나 등에 업은 걸 처음 보곤 깜짝 놀랐는데, 유모차에 앉힌 채 밀고 가는 귀부인을 보곤 놀람을 넘어 징그럽더군.

하지만 이젠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기 애완견을 인간보다 한 단계 높은 존재로 여기는 만큼 개가 큰소리로 뭐라고 짖으면 공손히 고갤 숙여야 해. 개가 이기적인 사랑을 무기로 삼아 자기 주인을 조종하는 건 아마 쉬울 거야. 혹시, 그래서 선진국엔 다 있다는 애완견 소음 방지법이 이 대한민국엔 없는지도 몰라…… 음, 얼마 전에 외딴 거제도에서는 수캐하고 상관을 한 어떤 과부가 이웃에 들키자 자살했다는데…… 참, 인간적으로 볼 땐…… 그 여자보다 오히려 개를 아낀답시곤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오만한 사람들이 더 나쁜 것만 같아. 휴, 인간이란 대체 뭔지…….’

“내게 나라란 과연 무엇일까? 조국, 국가…… 조상님들이 피땀 흘려 지켜 온 조국인가, 혹은 현재 정권을 잡은 지배자들이 자기네 뜻대로 독재하며 국민의 피땀을 빨아먹고 괴롭히는 국가인가?…… 아, 잘 모르겠어. 난 그저 굶어 죽지 않고 살기 위해 여기 들어온 것뿐이야. 아마 다른 애들도 거의 마찬가지일걸.”

두견새가 가슴속의 깊은 한을 목 속에서 피와 함께 토하는 듯 구슬피 울었다. 말만 들었지 보진 못한 새 같은데, 대체 새가 그 작은 몸으로 어찌 저렇게 큰 짐승처럼 울 수가 있을까? 그런 의문은 늘 마음 한 귀퉁이에 붙어 숨을 죽이고 있다가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따금 떠오르곤 했다.

“야, 짜식아, 한숨 좀 그만 쉬어라.” 옆자리에 누운 시라소니 눈이 조용히 말했다. “내가 언제?” “짜식아, 방금 그러고도 몰라? 하긴 니가 쉰 한숨을 니가 안다면 한숨도 아니것지. 임마, 걱정하지 말고 잠이나 푹 자 둬.”

“여긴 도대체 어딜까? 우린 앞으로 뭘 하는 거지, 응?” 청운은 소리를 죽여 물었다. “야, 너 겁먹었냐?” “그게 아니라…… 뭔지 알아야 도토리든 밤이든 구워 먹을 거 아냐.” “글쎄, 뭐 나도 잘 모르겠는데…… 선감학원의 어느 한 고참 형에게 들은 바로는…… 설악산에 북파 공작원 훈련소가 있다고 했거든. 우리가 바로 여기 들어온 것 같아. 선감도보다 더 무서운 지옥 훈련소…… 그런데 규모로 볼 땐 여긴 본대가 아니라 아마 지대인 것 같아. 설악산이 동서남북으로 워낙 넓고 높다더군. 바다에 가까운 외설악 쪽엔 여기완 달리 대규모의 스파이 양성장이 있대더라. 풋비린내 나는 애들이 아니고 스무 살 넘은 놈들만 뽑는데 해병대 갔다 온 사람에다 심지어 범죄자까지도 있다더라구.”

“그럼 우린 뭘 하는 걸까?” “나도 그게 제일 궁금해.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일이라니 그런 줄 아는 거지 뭐. 일단 좀 자라, 자. 골머리 아무리 굴려 봤자 우리가 뭘 알겠냐.”

“응, 잘 자.” “짜식아, 형이라고 한번 불러 봐라.” “나중에 보고 나서.” “짜식…… 그럼 좋은 꿈이나 꿔 둬.” “형도……” 청운은 스라소니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입속으로 독백했다.

청운은 어둠 속에 홀로 돼 심란스런 생각에 잠겼다. ‘내게 나라란 과연 무엇일까? 조국, 국가…… 조상님들이 피땀 흘려 지켜 온 조국인가, 혹은 현재 정권을 잡은 지배자들이 자기네 뜻대로 독재하며 국민의 피땀을 빨아먹고 괴롭히는 국가인가?…… 아, 잘 모르겠어. 난 그저 굶어 죽지 않고 살기 위해 여기 들어온 것뿐이야. 아마 다른 애들도 거의 마찬가지일걸.’

소쩍새 울음을 들으며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겨 있던 청운은 어느 결에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강둑에 앉은 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하늘만큼 푸른 강이었다. 하얀 구름이 강물 위에 뜨서 흘러갔다. 청운은 고기 잡을 생각도 없는 듯 하늘의 구름과 강 속의 구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 마치 잃어버린 고향의 강 같구나!’

청운이 감탄 대신 탄식을 뱉은 건…… 강은 옛 강 같았지만, 멀리 금왕산 자락엔 정겨운 농촌 풍경 대신 회색 시멘트로 지은 건물들이 잔뜩 늘어섰고 그 꼭대기에 솟은 거대한 굴뚝에서 검붉은 연기가 피어올라 푸르른 하늘을 점점 물들여 갔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맑은 강물도 검붉은 빛으로 점차 오염되고 있었다.

그 순간 낚싯대 끝이 파르르 떨었다. 청운은 엉겁결에 자동인형처럼 대를 들어올렸다. 그런데 의외로 큰 잉어 한 마리가 낚시에 걸려 파닥거리는 것이었다. 강둑의 풀밭 위에 놓으니 잉어는 무슨 말이라도 하듯 입을 뻐꿈거렸다.

‘걱정 마. 널 잡으려던 게 아냐. 곧 놓아줄게.’ 청운은 마음속으로 대꾸해 주었다. 그러고는 잉어가 죽을까 봐 급히 낚싯바늘을 입에서 빼냈다. 잉어가 올려다보았는데, 큰 두 눈알이 문득 하나는 붉게 한쪽은 짓푸르게 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옆구리 비늘 위에 묘한 글자가 나타났다. 한글도 아니고 한자도 아닌 야릇한 문자였다. 그걸 꼭 읽어야겠는데 도무지 해독할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불현듯 잉어는 몸을 홱 돌려 꼬리지느러미로 청운의 뺨을 철썩 갈기곤 검붉은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지옥훈련

청운은 놀랍고 아쉬운 마음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스라소니가 손등으로 볼을 두드리며 어서 일어나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호루라기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날카롭게 찢어발겼다. 문 바로 앞에 검은 모자들이 몽둥이를 들고 늘어선 채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후려갈길 기세였다.

청운은 다급히 줄의 꽁무니에 따라붙었다. 연병장엔 아직 어둠의 꺼풀이 남아 어둑스레했다.

대오가 갖춰지자 군용 점퍼 차림에 선글라스를 쓴 키가 좀 작은 교관이 앞으로 나섰다. 새벽 어스름에 저런 검은 안경을 끼면 과연 뭣이 제대로 보이기나 할까. 보인다면 또 어떻게 보일까?

그는 검은 안경으로 대열을 훑어보며 말했다. “여러분은 우리 민족과 국가를 위해 크나큰 임무를 수행하려는 충심으로 지금 이 훈련장에 서 있다. 이곳은 일명 악마의 산이다. 이곳을 악마의 산이라고 부르는 건 결코 여러분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형이 가파르고 암벽이 많기 때문에 까딱했다간 순식간에 깊은 골짝 속으로 떨어져 죽기 때문에 자연히 별명이 된 것뿐…… 그러니 각자가 힘과 기량을 재주껏 기르고 발휘해 살아남아야만 한다. 훈련중 흘리는 한 방울의 땀은 실제 전투에서는 피 한 방울과도 같다. 최선을 다해 극기한 자는 적진에서도 살아남을 것이며, 자기 자신을 극복하지 못한 자는 개죽음을 당할 뿐이다.”

교관은 어딘지 좀 오만해 뵈는 표정이었으나, 코울림이 살짝 섞인 목소리엔 나름의 진정성이 도드라지곤 했다. 그는 헛기침을 한번 뱉은 후 말을 이었다.

“에, 여러분은 정규군이 아닌 특수요원이기 때문에 제대 날짜가 따로 없다. 일반 사회로 치면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라 특별한 슈퍼맨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두가 자신의 한계를 한 단계 이기고 넘어가는 각고의 순간이 곧 비룡승천일이 된다. 그때가 오면 여러분은 지금 자신의 모습을 한갓 가여운 벌레로 추억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명심하라! 모든 배추벌레나 굼벵이가 나비나 매미로 환골탈태하진 못한다. 조금이라도 나태함에 끌려 진취적으로 성장 발전하지 못하는 자는 가차없이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건 곧 죽음이다. 알겠는가?”

“예!”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모여 메아리쳤다. “그럼 실시하라!” “예, 충성!” 명령과 동시에 검은 모자의 조교들이 구령한 후 훈련병들을 닦달해 험한 산길로 이끌어 갔다.

청운은 별 생각 없이 앞사람만 보며 뛰었다. 자기 뒤에 한 명도 없다는 것은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한 명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검은 모자의 조교는 같은 인간일 텐데도 동료 대원들과 달리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처럼 느껴졌다.

작가 김영권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2013년 『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데뷔했다. 다른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이 있으며, 책 출간 후 ‘선감학원’ 문제가 크게 이슈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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