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저녁 7시. 서울시청 앞과 광화문 광장은 ‘탄핵 인용’과 ‘탄핵 기각’을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경찰의 바리게이트가 분열된 민심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사진=허홍국 기자)

울림은 다르지만 대한민국 위기라는 공통의 목소리

탄핵 인용 목소리 다수…매출 감소‧교통 체증 ‘감수’

[민주신문=허홍국 기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농단 사태가 촉발한 탄핵 정국이 촛불과 태극기 두 개의 광장 민심으로 분출됐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불과 2주 남짓 남겨 놓은 가운데 분열된 민심은 더욱 격앙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 광화문과 시청 앞 광장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광장 사람들의 시선은 어떨까. 대한민국의 위기를 바라보는 그들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들어봤다. <편집자 주>

서울 광화문과 시청 앞 광장은 매주 토요일이면 촛불이 불타오르고 태극기가 거리를 뒤덮는다. ‘탄핵 인용’과 ‘탄핵 기각’을 외치는 그들의 울림은 시각은 다르지만 대한민국의 위기를 공통적으로 부르짖고 있다.

헌재 심판이 다가오면서 이들의 목소리가 더욱 격앙되고 있다. 재판관들을, 그리고 정치권을 압박하기 위해 거리로 나오는 인원도 다시 증가 추세다. 경찰은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서울시청앞과 광화문 광장에 바리게이트를 설치했다. 남과 북이 둘로 갈린 분단선과 같다는 자조 섞인 얘기도 나온다.

수십만명의 인파가 몰리는 토요일. 광장 일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투숙하는 주변 호텔은 촛불과 태극기 인파의 출입을 차단하기 위해 출입구를 봉쇄하고, 선별 출입을 허용한다.

음식점 등 상점 등은 임시휴업이라는 생각에서 매출을 포기한지 오래다. 광장 민심이 들끓으면서 일종의 특수를 노린 이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촛불과 태극기, 핫팩 등을 판매하는 노점이 펼쳐지고, 어묵과 떡볶이 등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포장마차가 손님 맞기에 여념이 없다.

광장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상인과 직장인들은 하루 빨리 탄핵 정국이 마무리돼 고요했던, 그리고 활기 찾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들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다. 탄핵 정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천차만별, 그들 역시 분열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시각

서울시청 인근 A호텔에서 근무하는 김모(27세/남)씨는 태극기 집회를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는 50~70대 어르신들이 최고 통수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못해 나라가 혼란에 빠졌는데도 탄핵 기각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터무니없다’는 생각이다.

그는 “어른들이 서울광장에서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에 나서는 것을 보면 왜 저러나 싶다. 대통령이 잘못을 한 게 분명한데, 잘못이 없다고 주장을 하니 이해 할 수 없다”고 전했다.

반면 태극기 집회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광장 사람도 있다. 시청 인근에서 가판대를 운영하는 최모(73세/남)씨는 “촛불의 주축인 20~40세대는 6.25전쟁과 4.19 등 사회적 혁명을 거치지 않았다”면서 “탄핵과 관련해 서로 다른 주장에 대해 누가 누구를 비난할 일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양보를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토박이로 시청 인근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선영(75/남)씨는 “국민이 탄핵을 두고 분열되는 것이 안타깝다”며 “서로 한 걸음씩 양보해 갈등이 봉합됐으면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정치인들을 향한 각성도 촉구했다. 김씨는 “양측 간 감정의 골이 깊어서 토요일만 되면 충돌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면서 “정치인들이 각성해야 한다. 문제의 발단은 그들의 이해관계 충돌 때문이다. 국민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광장의 또 다른 사람은 역사적 배경에서 문제를 찾았다. 덕수궁 돌담길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최모(54세/남)씨는 “고려 왕건 훈요십조와 이조 500년 간 계속된 영호남 차별 등 역사에 비롯된 지역감정을 정치인들이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뿌리 깊은 차별 문화가 해소돼야 만 이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인내 vs 불만

촛불과 태극기의 외침이 장기화되면서 광장 사람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인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20대/여)씨는 촛불집회로 피해를 봤다. 그나마 최근 매출이 회복된 것이 위안이다.

그는 “촛불집회 초기 당시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었지만 집회 참여 인원이 줄어들고 집회에 대한 시위 문화가 정돈되면서 매출이 어느 정도 회복됐다”고 전했다. 이어 “토요일만 되면 매출 피해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라를 바라 잡자고 하는 것인데, 장사 때문에 촛불을 들고 나갈 수 없지만 참아야 하는 일이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광화문과 시청 인근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불만이 높다. 교통 체증 등으로 인한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는 것.

광화문광장 인근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는 이모(36세/남)씨는 “장기간 지속되는 집회 때문에 퇴근길 교통 정체 등 간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며 “탄핵 정국이 하루빨리 정리돼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이모씨는 극심한 대립 양상이 오히려 잘됐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그는 “어차피 터질 세대 간 갈등 이었다”며 “어른들도 젊은 세대의 생각 차이를 알고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화문 인근 보험회사에 재직 중인 박모(36세/남)씨도 교통 체증으로 불편을 느끼기는 마찬가지. 내수 위축에 대한 불안감도 만만치 않다고. 그는 “수십만명이 광화문과 서울광장에서 시위를 하다 보니 소비가 되지 않는다”며 “경기 회복의 핵심인 내수가 탄핵으로 불씨마저 꺼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광화문 인근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고 있는 최모(29세/남)씨는 어른들을 향해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어른들의 기준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며 “헌재가 어떤 방향으로 탄핵 결정을 내린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특검이 주장하고 있는 법적인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화문(왼쪽)과 서울광장에는 각기 다른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의 임시 거주지인 텐트촌이 형성돼 있다.(사진=허홍국 기자)

광화문 VS 시청

광화문과 시청 앞 광장에서 성격이 다른 텐트촌이 형성돼 있다. 익명을 밝힌 광화문 텐트촌 거주자 김모(40대/남)씨는 “유사 이례로 국민 의견이 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평화적으로 촛불 민심으로 표출된 적은 없었다”면서 “분명한 것은 건전한 시위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탄핵과 관련된 각종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국민 대다수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인용에 찬성하고 있다”면서 “탄핵 기각 집회도 존중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위기로 몰아넣은 박 대통령의 실정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광화문 텐트촌에서 만난 이모(25세/남)씨 역시 탄핵 인용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또 정부가 문화계 인사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사실에 실망했다고. 그는 “국정 운영에 개입할 능력 조차 없는 최순실이 국가를 농단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어른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반면 서울광장 텐트촌 거주자는 탄핵 기각을 주장하고 있다. 광화문 텐트촌과는 달리 촛불에 대한 반감도 상당했다. 서울광장 텐트촌에 거주하고 있는 이모(74세/남)씨는 “탄핵 정국은 박 대통령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조작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세월호 사건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이 할 짓이 없어서 어린애들을 수장시켜 천도제를 지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대통령이 자기 욕먹을 짓을 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광장 텐트촌의 또 다른 거주자는 촛불 민심 배후설을 제기했다. 그는 “일개 아주머니를 통해 통치를 당한 국민들이 주권자로서 자존심이 상해 촛불 현장에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확대된 것은 정치적 패거리나 노조 세력에 의해 세뇌 당해 확대된 측면이 크다”고 주장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