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소리날 만 하네”


 

농협 명예퇴직금, 1인당 평균 1억3000여 만원
1억 이상 연봉자 277명, 자산수익률 최하위권

“농협은 자체가 파워다. 농협이 힘이 센지, 대통령인 내가 힘이 센지 아직 모르겠다.”
지난 2003년 2월 4일 대통령 당선 뒤 전국 순회 토론회를 가진 노무현 대통령은 강원지역 대토론회에서 “농협은 전국 각지에 조직을 두고 있어 그 자체가 파워”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표현대로 현재 농협중앙회는 설사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만큼 비대해졌다. 신용사업은 물론이고 경제사업까지 집어삼켜 비대해 질대로 비대해진 농협중앙회. 그 이면엔 농민의 ‘피눈물’과 온갖 비리가 난무했다. 이에 본지는 5차례에 걸친 기획시리즈를 통해 농협중앙회의 문제점을 집중 조명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농협중앙회의 ‘억’ 소리나는 연봉과 명예퇴직금이 국정감사의 주요이슈로 부각됐다.

지난 10월 5일 오전 10시께 농협중앙회 본관 2층에서 열린 농업협동조합중앙회(이하 농협중앙회) 국정감사에서 농림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림위) 소속 의원들은 “시중은행보다 자산수익률이 낮은 농협이 명예퇴직자들에게 위로금으로 1인당 1억 3000여만원씩 지급하는 등 억대 연봉자들도 수백 명에 이른다”며 “농협중앙회, 이대로는 절대 안 된다”고 통탄했다.

“그만해라, 많이 먹었다”

이 같은 사실은 열린우리당 김우남 의원이 농협중앙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농협중앙회로부터 취합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밝혀졌다. 김 의원이 농협으로부터 제출 받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03년 이후 농협중앙회가 명예퇴직자 372명에게 지급한 명예퇴직금은 총 474억 2400만원으로 1인당 무려 1억 2800여만원을 지급했다.

1급 명예퇴직 대상자가 1억 6375만원을 받은 것을 비롯해 4급 과장급 이상 퇴직자들이 모두 ‘억대’ 명예퇴직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으며, 이와 별도로 ▲1급 178명 ▲2급 96명 ▲3급 2명 등 억대 연봉을 받는 직원들도 277명(농협중앙회장 포함)에 달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김 의원은 “농협의 자료에 의하면 277명이지만 현재 31년 이상 장기근속하고 있는 1∼2급 직원이 616명인 것으로 미뤄 추정해 보건 데 억대 연봉자는 313명에서 493명 사이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농협은 지난 1997년 이후 다른 시중은행 및 국책은행·특수은행에서도 폐지된 사원복지연금제도를 시행하면서 직원 1인당 매달 5만 5000원에서 67만원까지 부당 지급해왔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 의원은 “정대근 현 농협회장은 올 7월 1일부로 비상임으로 전환됐는데, 오히려 상근 때 보다 급여가 증가했다”고 주장해 국정감사에 참석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 의원실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농협중앙회 정 회장의 급여는 ▲기본급 1억 9920만원 ▲경영수당 6840만원 ▲성과급 1억 1200만원(금년 초 지급) 등으로 총 3억 7960만원이다. 여기에 연간 연봉의 40%씩 적립되는 퇴직금 1억 704만원을 더하면, 정 농협 회장의 실질연봉은 4억 8664만원인 셈이다. 이는 지난해 정 회장이 받은 4억 4500만원보다 4164만원 증가한 액수다.

하지만 정계 일각에선 “농협중앙회 정 회장이 일년 간 사용하는 판공비와 업무추진비, 농정활동수당 등을 모두 합친다면 그 금액은 7억원 가까이 될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는 쌀 4300가마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농협중앙회 언론홍보팀 이중훈 팀장은 “정 회장님의 연봉이 7억원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얘기”라고 주장했다. 이 팀장은 이어 “기왕 지어낼 얘기라면 농협규모에 걸맞게 100억으로 해달라”며 특정인을 상대로 우스갯소리까지 건넸다.

김 의원은 농협중앙회의 억대 연봉과 관련 “지난해 농가당 소득은 2900여만원, 부채는 2689만원에 달했다”며 “농가는 어려운데 농협은 수백명에게 억대 연봉을 주고, 퇴직자들에게는 억대 명예퇴직금을 지급하는 등 돈 잔치를 벌이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열린우리당 조일현 의원 또한 “연봉을 깎는 척 생색을 내고, 성과급과 수당을 신설해 보수를 올린 것은 농협회장답지 못한 비겁한 행동”이라며 “농협이라는 이름만 빼고 모든 것을 다 바꾸겠다는 농협의 의지가 왜 보수 규정에는 적용되지 않았는지 이 자리에서 분명히 밝혀야한다”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이어 “지난해 국정감사자료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중앙회장의 퇴직금 관련 자료를 빼고 보고하고도 이번엔 퇴직금자료를 포함해 퇴직금만큼 보수가 깎였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라며 맹비난했다.

이에대해 농협중앙회 언론홍보 이 팀장은 “상임이든 비상임이든 상관없이 회장님은 160만 농민의 대표”라며 “활동의 범위가 굉장히 넓고 중요하다. 그분의 품위 유지에 들어가는 금액 중 최소한의 금액을 연봉으로 책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팀장은 이어 “한 기업의 CEO들은 적게는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까지 받는다”며 “회장님의 연봉이 많다고 얘기하는 사람들 인식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농협중앙회 정대근 회장은 “회장의 연봉이 높다고 하지만 시중은행장에 비하면 10%도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강변했다.

지역농협 소속 노동조합인 전국농협노동조합 선재식 위원장은 “농협 직원들이 스스로를 농민들과 함께 커나갈 협동조합의 직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농협 직원들이 스스로를 그냥 월급 많은 직장에서 일하는 은행원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상 문제는 풀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농협, 3년간 임직원
횡령액 300억대

농협중앙회 임직원의 연이은 횡령·유용 및 부실경영 등으로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열린우리당 조일현 의원은 조합장과 이사, 감사의 부실경영에 대해 “(올 7월 31일 기준으로) 현재 45개 조합의 조합장과 이사, 감사 등 110명에 대해 부실경영 혐의로 손해배상금 168억원을 청구한 상태”라며 “이외에도 지난 3년 간 농협중앙회 직원의 횡령유용 건수는 55건으로 피해액만 116억 7000만원이며, 회원조합은 130건으로 그 금액은 200억 4700만원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조 의원은 또 “농협중앙회는 국가가 연체이자와 연대보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농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긴급 조성한 농업경영개선자금 2조 5000억원을 농협 임직원이 불법 대출해 검찰조사에 의해 적발된 것만 11건으로 56억원이며, 농협자체조사에서 밝혀진 것은 243건으로 99억 8500만원에 이른다”고 꼬집었다.

조 의원실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농협회원조합직원의 횡령유용사건은 2003년 33건에서 지난해 72건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피해금액 또한 약 85억원에서 90억원으로 5억원 가량 증가했다. 이에 대해 조 의원은 “농업경영개선자금은 정말 어려운 농민들을 긴급 지원한 자금인데 이것을 불법 대출한 것은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통째로 맡긴 셈”이라고 한탄했다.

역대 농협회장, 줄줄이 영창

농협중앙회 현임 정대근 회장 직전까지 역대 농협중앙회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횡령과 공금유용 등의 혐의로 하나같이 줄줄이 구속됐다. 이런 탓에 지역농협 사이에서는 “다음은 누구냐”는 식의 말이 나돌 정도다.

지난 1993년 5월에는 명의식 전 축협회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9억 4000여 만원에 이르는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옥고를 치뤘다. 이보다 앞선 1990년 4월에는 홍종문 전 수협회장이 당선된 지 몇 달도 안 돼 선거과정에서 단위조합장들에게 금품을 뿌린 혐의가 포착, 선거비리로 쇠고랑을 찼다.

1994년 3월 19일에는 한호선 전 농협중앙회장이 구속 기소됐다. 한 전 회장은 농협 예산을 전용해 4억 80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 이 중 4억 1000만원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를 받았다. 같은 해 이방호 전 수협회장이 다시 외환금융사고 등의 책임을 지고 사표를 던져야 했다.

이후 3년 간 중앙회장 중도하차가 없다가 1998년 송찬원 전 축협중앙회장이 일신상의 이유로 자진 사임했다. 당시 검찰 수사단은 “농민을 위한 경제사업은 외면한 채 신용사업만 치중하고 있는 농협을 개혁해 농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대 회장이 줄줄이 구속된 것은 정권의 탓보다 농협의 탓이 더 크다”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pjy0925@naver.com


농협중앙회 국회감사 현장
말·말·말…

지난 5일 열린 농협 국정감사가 열린 농협 본관 앞은 농협관련 노동조합의 ‘국감반대’ 시위로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에 따라 국정감사를 위해 농협중앙회관에 모여든 의원들은 국정감사장에서 ‘국감거부’ 시위에 대한 불쾌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확성기까지 동원된 집회로 국감은 15분쯤 늦게 시작됐고, 이에 대해 국회의원들의 항의가 잇따랐다.

“국감 왜 받아야 하냐” vs “떳떳해봐라 국감하나”

지난 9월 28일 축협중앙회노동조합은 성명서를 통해 “우리가 정부기관이나 정부투자기관도 아닌데 국정감사를 왜 받아야 하느냐”며 “국정감사로 인해 해마다 발생하고 있는 인력, 시간적인 불필요한 낭비요소를 과감히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노동조합은 국정감사 거부투쟁을 강력하게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농협중앙회노동조합은 이와 관련 “농협중앙회는 정부 지원 없는 순수 민간단체임에도 불구하고 농림부, 감사원,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감사를 받고 있다”며 “3중, 4중의 중복감사를 받을 만큼 농협은 부도덕한 집단이 아니다”고 국정감사 거부 의사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농림해양수산위원회는 두 노조의 ‘국감 거부’ 입장에 대해 ‘얼토당토않은 말’이라며 불쾌해 했다.

열린우리당의 김우남 의원은 질의에 앞서 “들어올 때 ‘노동 3권 유린하는 김우남은 물러나라’라는 당치도 않는 구호를 들었다”며 “웬만하면 어디 가서 욕먹는 짓 안 하는데…, 내가 뭘 잘못했는지 꼭 집어 얘기해 보라”고 역정을 냈다. 김 의원은 또 “이사회 회장이 곧 중앙회회장인데 객관성이 따르겠냐”며 “제발 바라건 데 국감이 필요없는 농협이 되길 바란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나라당 이방호 의원은 “국감을 시작하기 전에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의 사과를 들어야겠다”며 “신성한 국정감사장 앞에서 데모를 한 것에 대해 책임자의 사과와 그대로 방치한 이유에 대해 집고 넘어 가야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한나라당 김재원 의원 또한 “국민의 대표가 헌법에 의해 국정 감사하는 것에 대해 난동을 부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상주참사’로 인해 국감에 참석치 못한 한나라당 이상배 의원(경상북도·상주시)측은 농협노조 ‘국감거부’ 소식을 접하고 “농협노조가 입구에서 보좌관을 막고 경호원을 붙이는 등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는데 ‘농협 간부가 몰랐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이번 사태는 농협노조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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