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에서 누구에게나 빠른 은퇴가 다가오고 있음을 이야기했는데, 그 후 이런 구체적인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기사가 나왔다. 1월 3일자 문화일보 “에코세대 ‘삶 포기자’ 10년새 5배로”라는 기사다.
에코세대란 1차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세대다. 55∼63년생인 베이붐 세대와는 25년 정도의 연령 차이로 79∼92년생의 요즘의 2030세대에 해당하는 세대다. 문화일보 기사는 청년세대의 자살률을 토대로 이들의 경제난을 지적하고 있다.

소외감 느끼는 에코세대

살 날이 구만리같은 2030세대가 왜 경제적인 문제로 삶을 포기하는 일이 생기는 것일까? 사실 목소리를 내고 있지 못하지만 2030들은 어떤 것이 원인인지 알고 있다. 이들은 고비용 고물가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겪으며 성장한 세대들이다. 장년, 노년세대들은 이들이 풍요로운 물질을 토대로 문화적 혜택을 받으며 생활한 행복한 세대라 보는 것과 다르다.

사교육을 받지 않고는 대입이라는 치열한 경쟁을 통과하지 할 수 없고, 비싼 등록금에 대출을 받지 않고는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 또한 심각한 취업난은 어학, 사회봉사, 해외연수 등에 시간과 재정을 투자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그러나 정작 자기자신에게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고도 갈 수 있는 직장은 저임금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그나마 채용인원이 많고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한 공무원 시험에 대거 뛰어들 수밖에 없다.

에코세대가 겪는 경제적 악순환

취업이 늦어지거나 불가능해지면 돈과 주택 등의 유형적 자산 형성이 불가능하고 경험이나 인맥과 같은 무형적 자산 형성도 힘들어진다. 어린 시절부터 학습을 통해 능해진 지식의 습득이나 정보활용능력 외에는 장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이들을 채용한 회사에서도 ‘쓸만한 인재가 없다’는 식의 말만 하며 신규채용과 교육훈련보다는 경력채용 쪽으로 눈을 돌린다. 따라서 구인의 악순환, 구직의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금수저 부모를 두지 못한 에코세대라면 희망찬 미래를 생각하기 어렵다. 좀 더 자기개발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좀 더 차분히 구직을 하면 좋을 텐데 그럴 여유는 없다. 이미 사회에 진출하는 순간부터 수년간 누적된 학자금 대출의 원금과 이자를 갚지 않으면 안 된다.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을 전전하게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사회 초년생인데 벌써부터 신용불량의 늪으로 떨어져 다른 불이익을 당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고비용구조를 겪는 에코세대의 애환

열악한 근무조건, 낮은 급여를 청년들이 기피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3D직종에 대한 반감은 장년세대보다 강하지만 사회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면 공사현장, 공장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식당하면 아줌마’를 연상할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청년층의 발걸음이 많은 중심가 음식점들에는 서빙, 주방보조에도 청년들이 일하는 모습을 간간이 볼 수 있다.

에코세대가 3D업종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더럽고(dirty) 어렵고(difficult) 위험해서(dangerous)가 아니다. 3D를 감수하는 만큼 사회적 인정,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는 대출을 포함해 자신들에게 투자된 생활비, 학자금, 주택비용을 상회할만한 것을 거기서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이랜드그룹의 알바임금 체불 문제가 불거졌는데, 그런 부당함을 참았던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래도 안정적인 대기업에 소속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아니었을까? ‘지금은 알바지만, 언젠가 직원이 될 수 있을거야’, ‘지금은 계약직이지만, 언젠가 정직원이 될 수 있을거야’, ‘대기업매장에서 경험을 쌓아 언젠가 나만의 가게를 오픈할거야’ 등의 희망에 걸어본 것은 아니었을까?

생애계획, 생애설계가 어려운 에코세대

한편, 에코세대에게는 ‘정년’이라는 개념이 없는데 이것이 이들로 하여금 이런 위기상황을 탈출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한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사회에 진출할때는 55~60세 정년을 염두하고 생애계획을 세웠다. 20~25세에 사회에 발을 내딛고 25~30세에 결혼과 출산을 계획한다. 30~40세에 내 집 장만, 50~55세에 첫 아이를 출가시키고 55~60세에 은퇴하여 10~20년 가량 노후를 즐기며 생을 마감한다는 대강의 시나리오다. 실제로 시니어 세대의 자서전들을 보면 이런 생애주기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2차 베이비붐 세대들부터 이런 생애주기, 생애계획은 붕괴하기 시작한다. 에코세대의 경우, 아예 이런 계획이 없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하려 한다. 왜냐면 이들에게는 정년의 개념이 없고 ‘구직’과 ‘실직’이 반복되는 2분법적인 사고밖에 없다. 이들에게 정년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영구실직’이랄까?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률도 감소한다. 앞으로의 인생을 계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누구를 책임지겠다는 것인가? 이런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들이 누적되며 인구절벽 현상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실 이 정도 수준이면 사회구조적 문제다. 개인의 의지나 일부 소그룹의 역량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다. 지금까지 정부가 해온 각종 대책들은 모두 미봉책에 지나지 않았다. 실질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더욱 대범하고 장기적인 정책을 펼치지 않고서는 안 된다. 마치 과거 수차례 진행해 온 ‘경제개발 5개년’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은 오늘을 살아내야 하고 내일을 살아가야 하지 않는가? 그래서 에코세대도 ‘쉬프트업’의 개념으로 인생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보험업을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다보면 요즘은 100세 시대를 염두하고 상품을 설계한다. UN에서도 이에 맞춰 청년의 기준을 노동이 가능한 65세까지로 변경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에코세대부터는 생애주기를 달리 봐야 하지 않을까?

중등교육을 마치고 고등교육으로 접어드는 20세까지와 고등교육을 비롯해 사회에서의 시행착오를 겪는 30세까지, 그리고 보다 자신의 비즈니스에 숙련되는 40세까지를 인생의 한 시기로 잡아보는 것은 어떨까? 이어 명퇴를 고민하는 40세부터 UN에서 청년으로 규정하고 있는 65세까지를 또 하나의 시기로 잡은 다음 65~100세까지를 또 하나의 시기로 바라보면 어떨까? 다음 기고부터는 40세를 기준으로 한 ‘쉬프트업’을 구제척으로 나누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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