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윗줄부터 시계방향으로 故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故김영삼 전 대통령, 한국비료 전경, 최태원 SK회장, 故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故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

[민주신문=신상언 기자] 경제비사 5탄은 한국경제성장사의 어두운 이면에 관한 이야기다. 외형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온 한국경제는 속으로는 부정부패·비리에 얼룩져 몸살을 앓기도 했다. 주로 정치 권력과 경제계의 유착 사건이 대부분이다. 초기 이승만 정권부터 시작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까지 정권별로 시대를 떠들썩하게 만든 정경유착 사건들이 있었다. 경제비사 5탄에서는 시대별 정경유착 사건들을 재정리해봤다.

정경유착형 비리는 대한민국 초기 정부부터 존재했다. 일명 중석불 사건이다. 중석불이란 당시 정부가 해외에 중석(텅스텐)을 수출하고 벌어들인 달러를 말한다. 이 돈으로는 양곡이나 비료를 수입하는 것이 금지돼 있었다.

이승만-중석불 사건

하지만 정부는 남선무역·대한중석·고려흥업 등 13~14개 상사에 중석불을 불하했다. 이를 불하받은 각 상사는 밀가루 9900여톤, 비료 1만1000여톤을 수입했고 이를 농민들에게 비싼 가격에 팔아 폭리를 취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판매가격과 판매처 지정에 개입해 폭리를 조장했고, 상사들은 최대 10배에 달하는 이윤을 남기면서 농민들에게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입혔다. 당시 상사들이 취득한 부당이득은 55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농민들로부터 부당하게 취득한 돈이었다. 정부와 상사가 결탁해 거둬들인 자금은 정치권으로 다시 흘러갔다. 또 그 중 상당액이 이승만 대통령의 대선 자금으로 쓰인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중석불 사건에 대한 의혹이 일자 당시 국회는 특별 조사단을 구성해 문제 제기에 나섰고 정부불심안까지 제출됐다. 하지만 폭리취득죄로 기소된 상인 전원은 무죄 판결을 받아 풀려났고 사건은 흐지부지됐다.

박정희-사카린 밀수

정경유착의 그늘은 정권이 바뀌어도 끊이지 않았다. 오히려 박정희 정부 들어 정경유착형 비리가 더 많이 발생하면서 대한민국을 멍들게 했다. 특히 재벌기업 탄생 등 기업의 힘이 세지면서 정경유착의 사슬은 더욱 공고해졌다.

박정희 정부 시절 대표적인 정경유착 중 하나가 바로 ‘사카린 밀수사건’이다. 1966년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가 정부 정치자금과 관련해 건설자재로 가장해 사카린을 대량 밀수입한 사건이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가 미쯔이물산에서 상업차관을 도입해 울산에 요소비료공장 건설을 계획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비료가 사카린의 원료인 OTSA를 밀수한 것이다. 또 당시 금수품이었던 양변기, 냉장고, 에어컨, 전화기 등을 건설자재로 속여 대량으로 밀수하고 이것을 암시장에 되팔아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

故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회고록에 따르면 사카린 밀수사건은 정부의 조력 덕분이었다. 삼성은 공장 건설용 장비를, 청와대는 정치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돈을 부풀리기 위해 밀수를 하자는 쪽으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1966년 9월22일 대정부 질의 도중 김두한 의원이 정부 각료들을 향해 인분을 투척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박정희 정부의 또 다른 정경유착은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이다. 현대건설은 1977년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의 1512가구 중 952가구를 무주택 사원에게 분양한다는 조건으로 당국으로부터 건설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952가구 중 661가구를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 언론인 등에게 분양했다.

당시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35평, 48평, 52평, 62평 등 초호화 아파트로 조성됐다. 또 투기광풍을 타고 시세가 분양가의 두 배 가까이 뛰어 특혜 분양 의혹이 일었다. 특혜의 대상이 정치권 인사, 언론인 등이었다는 점에서 정경유착을 너머선 정경언론유착으로도 불렸다.

이후 특혜분양과 관련, 당시 현대산업개발 사장이던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과 아버지 정주영 회장이 함께 조사를 받았다. 당시 정주영 회장은 묵비권을 행사해 처벌을 면했다. 하지만 정몽구 회장은 특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구속돼 법적 책임을 지고 75일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전두환-이철희·장영자

전두환 정권에서도 정경유착은 계속됐다.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은 정치권과 연루된 희대의 사기 사건이었다. 이철희·장영자 부부가 수천억대의 어음사기 행각을 벌였는데 그 배경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씨가 있었던 것이다.

이철희는 국회의원과 국가안전기획부 차장을 지냈으며 그의 부인인 장영자는 남편의 배경과 자신의 화려한 언변, 미모를 앞세워 고위층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철희·장영자 부부는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게 자금지원의 대가로 2~9배짜리 어음을 받아 사채시장에 유통시켰다. 어음과 담보조로 받은 견질어음을 몽땅 시중에서 할인한 후 다시 굴리는 수법으로 6400억원의 어음을 시중에 유통시켜 1400억원을 편취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정재계는 엄청난 후폭풍을 겪어야 했다. 장영자는 ‘경제는 유통이다’라는 유명한 말로 항변했지만 어음이 한 바퀴 돌았을 때 어음을 발행한 기업들은 부도와 함께 무너졌다. 이 사건으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금융실명제 논의가 본격화되기도 했다.

검찰 수사 결과 이들 부부 뒤에는 장영자의 형부이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씨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두 사람은 물론 은행장 2명과 공영토건, 일신제강 등 내로라하는 기업인 등 모두 32명이 구속됐다.

장영자·이철희 부부는 모두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이철희가 먼저 가석방됐고 장영자도 복역 10년 만에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일해재단‧국제그룹

신군부 시절 일해재단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K스포츠·미르재단과 같은 역할을 하던 재단이었다. 1983년 일해재단은 ‘순국사절 및 부상자와 국가유공자 자녀 교육을 위한 장학금 지원’과 ‘86·88 국제경기에 대비한 우수선수 및 체육지도자 육성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하지만 실상은 전두환 대통령의 비자금 관리를 위한 사조직과 다름없었다.

일해재단의 주요 발기인은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구자경 럭키금성그룹 회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등 당대 내로라하는 재벌 총수들이었다. K스포츠·미르재단에 삼성, 롯데 등 재벌 총수들이 기금을 출연한 것과 모양새가 비슷하다.

일해재단은 노태우 정권까지 이어지며 정경유착의 고리 역할을 했다. 5공비리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일해재단은 1984년부터 1987년까지 총 600억원에 육박하는 기금을 조성했다. 문제는 강제적으로 모금된 심증은 있지만 당사자들이 사실을 은폐하면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기금을 출연한 기업과 정부 관계자들은 재단에 대해 일제히 함구했다. 이대로 정경유착의 모든 사실이 은폐될 위기에 처했으나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만이 관련 사실을 부인하고 나섰다.

의아한 것은 이후 국제그룹이 전두환 정권에 의해 1주일 만에 해체수순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양정모 회장이 일해재단 출연금 기부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정부 행사에 늦는 등 눈 밖에 나면서 그룹이 해체됐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현재 그 내막을 상세히 밝힐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해 그룹이 해체된 것이라면 나머지 그룹들은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억지로 기금 모금에 참여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청문회에서 기업 총수들이 기금 모금에 대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지금의 상황과 너무도 닮아 있다.

2016년 국정농단 관련 청문회가 있기 전 1988년에도 대규모 청문회가 있었다. 정식명칭은 ‘제5공화국에 있어서의 정치권력형 비리조사 특별위원회’이다. 5공화국 정부에서의 각종 비리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마련된 청문회였다.

노태우-사돈유착

노태우 정부 들어 가장 수혜를 입은 기업은 SK다. 노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씨와 SK의 최태원 회장이 결혼하면서 정치계와 경제계 거물이 사돈을 맺게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SK는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되는 등 국내 5대 재벌로 등극했다.

SK가 사돈 특혜로 성장했다면 한보그룹은 로비로 성장했다. 한보그룹과 정치권이 유착한 결과 자행된 부작용이 바로 ‘수서비리’다. 한보그룹이 서울 강남의 노른자 땅 수서·대치지구에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관계 인사들에게 150억원을 로비한 사건이다.

한보그룹은 이를 대가로 수서택지개발지구 중 일부를 수의계약 형식으로 특별 분양 받을 수 있도록 정부에 청탁했다. 이후 1991년 언론의 보도로 수서비리가 세상에 드러났고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 구속됐으며 수많은 공직자들이 옷을 벗었다.

김영삼-한보비리

문민의정부 들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내려는 노력도 상당수 있었다. 故김영삼 전 대통령은 금융실명제, 출자총액제한제 등을 시행하며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이 정권도 정경유착의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가 일명 ‘김현철 게이트’라 불리는 사건에 연루됐기 때문이다.

한보사태는 건국 이래 최대의 금융부정 사건으로 꼽힌다. 한보그룹은 당진제철소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건설부지 매입 허가를 9개월 만에 받는 등 각종 특혜를 누렸다. 그 배경에는 정치권과 유착된 로비 등 각종 비리가 있었다. 한보그룹은 정부로부터의 어떠한 견제도 없이 승승장구했다.

이후 한보그룹이 부도가 난 후 1997년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 15년형을 선고받으면서 한보사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열리게 됐다. 일명 ‘정태수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 33명이 소환조사를 받았으며 청문회에는 58명의 증인과 4명의 참고인이 채택됐다. 정·재계 인사를 총망라한 정경유착 비리 사건의 중심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가 있었다.

현철씨는 ‘한보비리 몸통’이라는 의혹을 받았고 결국 기업인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66억여원을 받고 12억여원의 세금을 포탈한 별건의 비리혐의로 구속돼 2년간 실형을 살았다.

김대중부터 박근혜까지

김대중 정부 때는 ‘최규선 게이트’가 있었다. 자원개발업체 유아이에너지의 대표 최규선씨가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의 3남 홍걸씨를 등에 업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며 기업체 등으로부터 뒷돈을 받아 챙긴 사건이다. 최규선씨는 김홍걸씨에게 3억여원의 돈을 건네고 각종 이권에 연루된 혐의로 2003년 징역 2년형을 선고 받았다. 김대중 정권마저도 정경유착의 비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부인 권양숙 여사가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67억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또 이명박 정부 때도 제2롯데월드 인허가 과정에서 정경유착 의혹이 일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사라질 줄 모르는 정경유착의 망령은 오늘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이어지게 됐다. 다행히 국민들의 분노와 촛불로 사태를 수습해가는 과정에 있지만 앞으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근절할 수 있을지 사태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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