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신문=김병건 기자] 대통령의 탄핵 과정은 드라마틱했습니다. 그런데 탄핵 이후 낮선,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알만한 이름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코리아 내일로 가는 길” “시민 회의” “촛불 연대” “시국원탁회의” “한국 유권자 촛불 연대” 등등 너도나도 촛불집회의 과실을 자신의 것인 양 주장합니다.

지난 2달간 광화문은 뜨거웠습니다. 일부에서는 지금의 제1야당은 광화문 촛불이라고도 합니다. 그 정치적 힘은 야당은 물론이고 일부 여당 의원들까지 변화시켰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저런 단체들이 나타나 광화문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대표하는 기관인양 국회 정론관에서, 때론 백범 기념관에서, 어떤 단체는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합니다. 이런 단체들의 구성 인원들을 보면 낯익은 사람들의 이름들이 많습니다.

1957년 4월27일 중국 공산당은 마오쩌둥의 '정풍운동에 관한 지시'를 발표했습니다. 사람들 내부의 모순을 처리한다는 목적으로 관료주의, 종파주의를 해결하기 위한 정풍운동을 한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후에 이것을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백화제방 백가쟁명이란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고, 서로 다른 많은 학파가 논쟁을 벌인다' 뜻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토론과 논쟁을 허용하고 이로 인해서 사회의 잠재된 문제점을 찾아내 해결방안을 찾도록 토론과 공표 자유를 보장한 것입니다. 제자백가가 활약한 춘추전국시대처럼 문화의 황금시대를 구현하려는 공산당 내부의 정치적 목표도 있었지만 지식인들의 공산당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비판이 허용되었습니다.

오만에 대한 경고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정권교체)란 말도 자주 회자되고 있습니다. 야당의 모 의원은 사실상 집권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다닙니다. 그래서인지 일부에서는 오만하다고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지금 레짐 체인지가 궁극의 목적일까요? 식자층에서 흔히 말하는 대의제민주주의의 위기란 스스로 자초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재벌의 건강을 염려해서 청문회장에서 먼저 돌아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는 정치인들을 볼 때 많은 사람들은 대의제민주주의가 이미 그 한계에 온 것 아닌가하는 의심을 합니다. 한국 정치가 공익이 아니라 (부유층, 기득권층의) 이익에 충실해버린 현실에서 마치 레짐 체인지가 되어버린 것 같은 오만한 행동을 하고 마치 점령군 같은 행동을 보일 때 야당의 모습이나 집권여당의 모습에서 다른 점을 찾는 것은 어려운 수학문제와 같을 것입니다.

그럼 현 정치권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저는 바로 공화주의 정신의 완벽한 결여라고 생각합니다. 공화주의 정신이란 국가가 개인이나 특정집단의 사유물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공유물이라는 인식에 투철한 정신입니다. 비단 물질적인 재산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높고 낮음이 없이 모두 기본적으로 평등한 존재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옹호하는 정치체제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 한명 한명의 의견은 다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 주장이나 의견이 소위 종북(?)의 발언일수도 있고, 극우(?)적 논리일수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이나 의견이 다수의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고, 따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권자가 국민입니다. 당장 국민들이 사회주의를 채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싫어하든지 좋아하든지 상관은 없습니다. 주권자인 국민이 선택하면 그만입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국민주권의 염원

민주공화국이라면 중요한 사회적 의제나 국가 정책결정은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물어보았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기간 정부의 주요정책 결정과정은 대부분 비민주적이고 비합리적이었습니다.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과정에서 어디까지가 국익이고 어떤 점에서 불리한지, 지역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지역주민들의 의견은 어떤지 물어보거나 합의 하는 과정도 없었습니다.

개성공단 폐쇄는 더 심각하지요. 옛 어른들은 화가 난 상태에서는 무엇이든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개성공단은 숙련된 노동자 그것도 한국말로 지시하고 결정할 수 있으며, FTA 과정에서 국산품으로 인정받는 등 우리나라 경제에 도움을 많이 주었습니다. 또한 북한에 이익을 주었다는 일부의 주장도 있습니다. 자, 생각해봅시다. 한 달에 급여로 미화 150달러를 지급하고, 한국말로 업무지시를 할 수 있는 곳이 지구상에 존재하는지, 개성공단은 많은 기업들의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졌고 그 산업 기반까지 형성했습니다. 정부가 입주업체의 의견이나 관련 산업 관계자 나아가 대북정책에 관한 여러 의견을 구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한·일 위안부 졸속 합의는 더더욱 심했습니다. 애초부터 당사자들의 의견 따위는 듣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설득 하면 된다는 생각, 그리고 이번 합의로 모든 것을 끝내고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굴욕적 합의까지. 박근혜 정부는 집권 내내 주권자들의 의견이란 개‧돼지의 소리쯤으로 여긴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합니다.

필자는 이번 촛불집회를 ‘촛불혁명’이라고 부르기를 소망합니다. 이 혁명으로 인해서 우리는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수십년 동안 우리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사회적 적폐를 해소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기득권 세력이 어떻게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했는지 우리는 이번 청문회 과정에서 그 민낯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기득권 세력의 불법에 대해서 알았으니 주권자들의 의견을 모아서 우선 적폐를 먼저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개헌은 그 다음입니다. 개헌 또한 권력구조 개편보다는 드러난 적폐를 해결하고 앞으로는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형태의 국가권력이 형성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국민주권의 정신이 온전하게 반영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대통령제도가 비록 권위적이고 제왕적 대통령제 일지라도 대기업 총수의 건강을 염려 하는 국회의원이 존재하는 한 의원내각제보다는 나은 제도일 것입니다. 대기업 총수의 건강을 염려하는 국회의원이 내각의 장관으로 임명되는 끔찍한 상황을 목도하지 않기를 저는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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