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존치비대위 회원들이 9월30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사법시험 존치를 촉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민주신문=신상언 기자] 제58회 사법시험 최종합격자가 지난 11일 발표됐다. 이제 내년 예정된 2차 시험이 끝나면 사법시험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정부가 로스쿨 제도 도입 후 적용했던 8년간의 유예기간이 내년이면 종료된다.

사법시험 폐지가 1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사법시험 준비생들과 로스쿨측의 의견 대립은 여전하다. 오히려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사회적 문제로 비화됐다. 사시 준비생들은 사시존치를 외치며 전국 곳곳에서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고, 로스쿨측은 떼법이라며 응수하고 있다.

사범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대표 이종배, 고시생 모임) 소속 회원은 12일부터 故 노무현 대통령 묘역이 안치된 김해 봉하마을에서 단식에 들어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등을 설치해 국내 사법체제의 전반적 개혁을 목표로 로스쿨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앞서 고시생 모임 회원들은 지난달 27일에도 사법시험을 폐지하지 말라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남 양산 자택 앞에서 단식 농성을 벌였다. 문재인 전 대표가 더불어민주당의 유력한 대권주자인 만큼 당의 사시폐지 입장을 전환시켜 달라는 요구에서다.

이종배 고시생 모임 대표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구조가 유지돼야 한다는 게 국민적인 공감대 아니냐. 국회 보좌관들을 만나봤더니 유력한 대권주자의 생각이 결국 당의 생각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더라. 그래서 문재인 전 대표를 설득하기 위해 단식농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시가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의 입장도 단호하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15일 전국 25개 로스쿨 원장 일동 명의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협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국회가 떼법을 수용한다면 국가의 법조인 양성 시스템이 훼손된다”며 “이미 헌법재판소가 사시폐지를 합헌으로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사법부와 국회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도 갈등을 부추기는 한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참여정부는 2005년 당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등을 설치해 국내 사법체제의 전반적 개혁을 목표로 로스쿨을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법조인 양성제도인 사시는 2017년 자동 폐지되는 것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법무부가 사법시험 폐지 4년 유예안을 발표했다가 로스쿨 학생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최종입장이 아니다’라며 한발 물러선 바 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사법시험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변호사시험법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린 상태다. 하지만 향후 국회에서 사시존치 관련법이 통과되면 사법시험이 다시 부활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20대 국회에는 오신환 새누리당 의원(서울 관악구을)이 발의한 ‘사법고시 존치법안’이 계류중이다.

찬반양론

사법시험을 유지해야 한다는 측에서는 사시가 ‘성공의 사다리’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로스쿨 제도만 유지될 경우, 법조인이 되려면 연간 1500만원 이상의 등록금을 납부해야 한다. 일명 ‘현대판 음서제’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돈이 없어도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놔야 한다는 것이다.

고시생 모임은 5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여 분서갱유 퍼포먼스를 벌였다. 100여명의 고시생 모임 회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1년 평균 등록금 1500여만원이라는 벽 앞에 청년들은 공부의 의지, 꿈에 대한 희망도 전부 잃어버려 남은 것은 절망뿐”이라고 강조했다.

로스쿨 합격의 당락을 좌우하는 면접 전형이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돈이 있어도 부모의 능력이나 학벌 등 성적 이외의 요소에서 불공정한 경쟁이 자행될 우려가 있다. 고시생 모임측은 실제로 지난 3년간 로스쿨 입시전형에서 부모님의 직업을 기재하는 등 부정입학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24건 이상이었다고 주장했다.

사시를 폐지하자는 쪽은 로스쿨 제도의 우수성을 주장한다. 대학 때부터 사시공부에만 매달려 다양한 경험을 쌓지 못한 법조인보다는 대학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대학원에서 법 공부를 통해 자기의 전문 분야를 찾아갈 수 있는 법조인을 양성하자는 것이다.

또 고시낭인을 없애고 사법시험 제도로 발생하는 법조 카르텔, 권위주의를 타파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로스쿨도 학교에 따라 파벌이 나뉜다거나 사법시험 준비도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는 등 양측의 주장을 재반박하는 주장이 또다시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외국에서는?

미국과 일본은 로스쿨 제도와 ‘예비시험’이란 제도를 병행하고 있다. 일본은 2011년 로스쿨에 진학할 수 없는 경제적 취약자나 회사원, 가정주부 등을 위한 우회로를 마련했다.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아도 예비시험을 통과하면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기회를 주는 제도다. 일본의 예비시험은 도입 당시 지원자가 6477명에서 지난해 1만2000여명을 기록해 두 배 가까이 증가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올해 일본의 사법시험에서 1583명의 합격자가 배출됐고 합격률은 22.95%이다. 전체 합격자의 14.8%에 달하는 235명이 예비시험 출신이다. 이는 로스쿨 중 가장 많은 합격자를 낸 게이오기쥬쿠대의 155명을 크게 상회한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대안을 제시한 적이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사법시험 폐지 유예를 발표하면서 대안으로서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로스쿨 단일 체제로 간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라며 “예비시험제는 로스쿨제도 정착을 뒷받침하는 보조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추진되지는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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