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신문=신상언 기자]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때 이른 겨울 한파가 찾아왔다. 이에 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노숙인들은 미처 겨울을 대비할 겨를도 없이 매서운 추위에 떨고 있다. 안타까운 사망사고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2.7도를 기록하는 등 전국에 한파가 불어 닥쳤던 지난 2일 대전역에서 노숙하던 우모(57/남)씨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보건복지부가 추산(2014년 기준)한 전국의 노숙인 수는 1만2000여명에 달한다. 서울 지역만 해도 올 상반기까지 3400여명의 노숙인이 거리와 시설을 오가며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14일 서울역 광장에서 KTX역사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만난 한 노숙인은 힘든 것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힘든 것 없다. 우리 같은 사람 요새 누가 신경이나 쓰냐”며 싸늘히 자리를 떴다. 힘든 것이 없다고 하는 그 말 속에 오히려 희망의 부재와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소외감이 짙게 묻어난 것만 같았다.

경쟁

이날 역시 본격적인 겨울을 알리는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현재 시각 오후 2시. 서울역 광장 인근에는 어림잡아 100명 이상의 노숙인들이 추위에 떨며 또 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광장 한 편에는 수십명의 사람이 겨울바람을 피할 수 있는 대형 천막이 설치돼 있었다. 천막에 들어서자 ‘십자가 선교회’ 자원봉사자들이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1년째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임청명(61/남) 목사는 “전국의 교회에서 자발적으로 인원을 모아 매주 1회씩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겨울이 되면 노숙인들은 더 힘들 것”이라며 “예전에는 밥도 제공했지만 코레일 측에서 쓰레기가 많이 배출된다며 식사 제공을 금지시켰다”고 말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정된 배식 장소 이외의 곳에서 식사를 제공하게 되면 광장이 노숙인들로 혼잡해져 오히려 철도이용 승객들이 불편을 겪을 수 있기에 이에 대한 자제를 당부한 것으로 안다”며 “배식 자체를 금지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번에는 서울역 지하도로 내려갔다. 지하도 내에 서울시가 마련한 간이 쉼터(24시간 운영)가 있다. 규모가 꽤 커 보이지만 수용 인원에 한계가 있다고. 기자 옆을 지나던 한 노숙인은 “많이 들어가도 수십명 안팎”이라며 “서울역을 집 삼아 살아가는 노숙인들이 수백명이다. 수용에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서울역 인근에 비교적 시설이 잘 돼 있는 노숙인 쉼터가 있었다. 서울시가 교회에 위탁을 맡긴 시설이다. 100명 정도 취침이 가능하다고. 결국 이들이 겨울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수십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쉼터가 유일하다.

경쟁을 뚫지 못한 노숙인들은 지하도 등에서 신문지와 박스 등에 의지해 매서운 겨울 추위를 이겨내야 한다. 더욱이 새벽 5시 열차 운행시간이 되면 바깥으로 나가야 해 다른 노숙인들보다 더 빨리 겨울 아침을 맞는다.

이야기

가구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4년 전부터 서울역에서 노숙 생활을 하고 있다는 도광수(59/남)씨는 겨울을 어떻게 보낼지 걱정이라며 한탄했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으로 매달 40만원을 정부로부터 지급받고 있지만 딱히 집을 구할 여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한 상황이다. 도씨는 “벌써 다섯끼를 굶었다. 인근에 밥을 제공하는 곳도 사람이 많아 제대로 얻어먹기 힘든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 교회 등 도움 주는 사람들도 이젠 못 믿겠다”며 “그들도 우리에게 밥을 주거나 봉사활동을 한다고 하면 정부로부터 돈을 받지 않느냐. 그걸 노리고 형식상 다가오는 사람도 많다”고 불평했다.

추운 겨울엔 차라리 쉼터가 더 낫지 않느냐는 질문에 “거기 들어가려면 굉장히 까다롭다”며 “학교나 개인 신상 등을 까다롭게 물어보면서 입소를 거부한다”고 말했다. 차라리 밖에서 지내는 게 마음 편하다는 의외의 답변이었다.

40년 동안 목수 일을 하다 몸을 다쳐 노숙생활을 시작하게 됐다는 김기석(66/남)씨는 2014년부터 서울역에서 생활해 왔다. 슬하에 자식이 1명 있지만 연락이 끊긴 지 오래. 일자리까지 잃고 방황하다 서울역에 오게 됐다. 그에게 추위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겨울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추위는 문제가 아니다. 인근에 공짜로 밥을 주는 곳도 있고 시에서 운영하는 간이 숙소도 있어 그럭저럭 생활할 만하다”고 말했다.

쉼터 입주나 일자리 문제에 대해선 “사람마다 다 자기가 사는 습성이 있어서 굳이 추운 곳만 골라서 자는 사람도 있고 나는 이곳이 편하다”며 “몸이 아파서 일을 구할 생각은 해 본 적이 없고 누가 와서 일자리 구해준다고 하는 사람도 없다”고 답했다.

재활

일찍 찾아온 추위에 정부, 지자체, 민간단체 할 것 없이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늘어가는 노숙인들을 감당하긴 역부족이다.

서울시는 올해 노숙인 재활을 위한 일자리센터와 고용지원에 총 502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또 공공·민간일자리 2300여 곳에 노숙인들을 취업시켰다. 하지만 재활에 성공한 노숙인들이 있는 반면 새로 생겨나는 노숙인의 수가 매년 2000명~3000명이기 때문에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평생 일자리가 아니라 한시적이라는 점도 노숙인들의 불만 사항이다. 더구나 기자가 만나본 노숙인들은 일자리에 관심이 없거나 그런 제안조차 받아본 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 언급한 도씨는 “일자리 준다고 찾아온 사람 단 한 명도 없었다”며 “우리 같은 사람들 누가 받아주겠느냐”고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지금까지 일자리·재취업 관련한 많은 사업이 성과를 내왔고 앞으로 예산을 늘려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단체도 힘을 보태고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사회복지재단이 서울시로부터 수탁 받아 운영하는 ‘따스한 채움터’도 서울역 주변 노숙인들에게 무료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채움터 운영을 담당하는 강현 사회복지재단 팀장은 “하루 500명의 인원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노숙인분들의 자존감 확립을 위한 예술학교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며 “동절기(11~3월)에는 100명 정도 인원이 잠자고 쉴 수 있도록 응급구호방도 운영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자체로부터의 재정지원도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두 번째 문제다. 노숙인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 개선이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시작이 아닐까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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