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신문=신상언 기자] 서울 시내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라면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 풍경이 있다. 지하철역 인근에서 빨간 조끼를 입고 잡지 ‘빅이슈’를 판매하고 있는 일명 ‘빅판(빅이슈 판매원)’의 모습이다.

사회적 기업 ‘빅이슈코리아’가 잡지를 발행한 후 노숙인들을 판매원으로 고용해 그들의 재활을 돕고 있다. 지난 1일 오후 3시 혜화역 4번 출구 인근, 그날도 그곳엔 빅이슈를 판매하고 있는 문홍우(남/61)씨가 있었다.

“열심히 판매한 만큼 저축도 할 수 있어 즐겁다.” 지난해 12월부터 지금까지 약 9개월간 빅판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씨는 자신의 일을 자랑스러워했다. 20년 전 불혹의 나이에 서울로 상경했으나 IMF 여파로 일자리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이런 저런 노숙인 시설을 전전하다가 지난해 빅이슈를 만나게 됐다.

“오후 1시에 출근해 10시까지 25권 정도를 판매한다.” 문씨는 하루 약 5만원의 수입을 얻는다. 빅이슈 한 권에 5000원, 수익의 절반은 문씨의 몫이다. 그는 그렇게 9개월간 생활비를 제외하고 150만원을 저축해 임대주택 입주 자격을 얻었다.

문씨는 자리가 나면 바로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있다. 그는 재활에 성공한 노숙인다. 문씨는 “빅이슈가 생계의 수단을 제공해 줬다”며 “판매가 잘 되는 혜화역으로 장소를 바꿔준 빅이슈코리아에 고맙다”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빅이슈를 만드는 사람들

노숙인들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 ‘빅이슈’는 누가 만들고 있을까. 빅이슈는 지난 1991년 영국에서 창간한 대중문화 잡지다. 홈리스(Homeless, 노숙인 등의 주거취약계층)의 경제적·사회적 자립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는 2010년 7월 빅이슈코리아가 설립되며 빅이슈 한국판이 세상에 태어났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대만에 이어 세 번째다. 지난 6년 간 여러 기업의 후원과 사회 각계각층의 재능기부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발행을 이어가고 있다. 1일 현재 139호가 빅판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빅이슈 편집부는 현재 6명의 기자가 필력을 자랑하고 있다. 최근엔 카카오스토리 캐릭터를 활용해 표지를 꾸미는 등 창의적 발상으로 질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자뿐만 아니라 운영진도 현장을 누빈다.

매주 서울역 무료급식소 등을 방문해 노숙인들에게 빅이슈와 빅판을 홍보하고 있는 것. 관심을 보이는 노숙인들은 판매원으로서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동안 약 770명의 노숙인이 빅판으로 활동했지만 다 재활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김선우 빅이슈코리아 코디네이터는 “성공보다 실패사례가 더 많고, 실패했다가 다시 돌아와서 정식 판매원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단, 다시 돌아올 경우 3개월의 기간이 지나야 판매원 활동이 가능하다.

노숙인들의 재활을 돕는 사회적 기업이라고 해서 무작정 호의만을 베푸는 것은 아니다. 노숙인 재활 프로그램에는 엄격한 규칙이 있다. 판매시간을 지키지 않거나 판매장소를 이탈하는 행위, 음주 후 판매를 하면 경고 조치 후 빅판의 자격을 박탈한다.

빅이슈코리아 관계자는 “음주 후 판매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었다”며 “다행히 엄격한 내규 덕분에 좋은 취지가 무색해질 만큼 서로 얼굴 붉히거나 힘들었던 경우는 아직까진 없다”고 말했다.

운영상 어려운 점도 많다. 수익 전체를 잡지에 의존하다보니 판매 실적에 따라 회사 운영이 좌우되기도 한다. 가령 비가오거나 폭염일 경우 판매가 부진한 경우가 많다는 것. 그래도 빅이슈코리아의 포부는 커져만 간다.

김 코디네이터는 “노숙자 재활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인식개선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면서 “홈리스가 참가해 펼치는 3:3 축구 홈리스월드컵 등 국제대회에도 참가해 사회적 편견을 깨는데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지자체는?

빅이슈코리아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의미 있는 실적을 거두고 있다. 사업 시작 6년 동안 772명(2016.3월 기준)의 빅판이 활동했고, 그 중 66명(2016.8월 기준)이 꾸준한 성과를 내 임대주택에 입주했다. 일개 사회적 기업이 해낸 것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큰 성과다.

그러나 정작 노숙인 자활과 복지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주체는 정부와 지자체다. 보건복지부에서 지난 2014년 추산한 전국의 노숙인 수는 1만2000여명에 달했다. 서울 지역만 해도 올 상반기까지 3400여명의 노숙인이 거리와 시설을 오가며 고된 삶을 살고 있다.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의 문제인 것. 이에 정부와 지자체도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502억의 예산을 일자리센터와 고용지원에 투입했다. 민간·공공일자리를 포함해 총 2300여 곳에 노숙인을 취업시켰다고 한다. 몇 해 전에는 코레일과 함께 ‘희망의 친구들’이란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서울역 내 노숙인들에게 임시주거를 지원하고 청소노동자로 고용해 임금을 지급하는 자활 프로그램이다.

행정당국은 턱없이 부족한 예산과 행정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에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더욱 늘어가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경우만 해도 자활에 성공한 노숙인을 차치하더라도 이면에서 매년 2000~3000명의 노숙인이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금까지 많은 사업이 성과를 내왔고 앞으로 예산을 늘려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숙인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지도 의문이다. 혜화역 빅판 문씨는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일자리는 6개월 지나면 끝난다”며 “빅이슈가 좋은 건 평생 일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 줬다는 점”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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