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고발자들의 인권


 

▲ 부패방지위원회에서 이름을 바꾼 국가청렴위원회는 국회사무처의 "국회도서관 서고동 전기공사 관련 부당 예산집행"건의 고발자 신원을 유출시켜 곤혹을 치렀다. 사진은 지난 7월 25일 서울 계동 현대빌딩에서 가진 표지석 제막식

비리나 부조리 등을 고발하는 고발자의 신분이 철저히 보호돼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최근 국가청렴위원회의 실수로 한 신고자의 신원이 유출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고발, 신고자의 신분이 노출된 사례는 국가청렴위원회 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에서도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신원을 보호받지 못한 고발자는 결국 피해를 당하고 만다.
비리나 부조리를 고발했다가 신분이 노출된 경우와 그로 인해 고발자가 피해를 본 사례들을 짚어보았다.

지난 96년 11월 모전자에서 근무하던 정국정씨는 자재구매에 대한 비리를 회사 감사실에 신고한 후 신고자로서의 신분이 유출됐다.
결국 정씨는 직장내에서 ‘왕따’를 당하다 해고되고 말았다.

당시 모전자의 정씨가 근무하던 부서에서는 중고제품을 구입하면서 마치 새 제품을 구입한 것처럼 회사를 속였다고 한다.

즉 500만원짜리 중고제품을 구입하고 회사측에는 새 제품의 가격인 2,800만원을 청구, 나머지 차액을 챙기는 수법을 썼다는 것.

이런 방식으로 자재구매가 이루어짐을 알게 된 정씨는 이를 사내 감사실에 신고를 했다.
그는 자재구매 비리를 신고했을 때 감사실로부터 신원보호 약속은 물론 신원이 노출됐을 때 부서 이동의 약속도 받아냈다.

그러나 감사실의 신고자 보호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정씨의 신고사실이 사내에 알려지게 됐다.

이후 정씨는 윗 선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혀 승진에서 누락되고 메일수신에서 제외되는 등 ‘왕따’를 당했다. 부서내에서 계속적으로 불이익을 당한 그는 부서 이동을 요구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고 급기야는 해고되고 말았다.

정씨는 “감사실의 비리고발자 보호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사내의 비리를 고발해도 제대로 신원을 보호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지난 2000년 7월 법원으로부터 “직장 ‘왕따’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봤다”고 인정돼 산업재해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이 회사 감사실(불공정 신고센터)은 "비리, 부조리 등의 신고내용은 담당자만 볼 수 있게 하는 등 신고자의 신원보호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직원간의 불화 등으로 인해 서로 신고를 하게 되고 결국 이들은 눈치를 채고 신고자를 알게돼 100% 신원보호를 할 수 없는 실정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감사실은 “신고자의 신원이 노출됐을 경우에는 부서의 이동 등을 통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최대한 배려한다”고 덧붙였다.

사내 노동조합의 비리에 맞서 이를 고발한 사람이 오히려 법적 책임을 지게 된 경우도 있다.

이근택씨는 부산항운노동조합 간부 등의 승진, 채용과 관련된 상납비리를 폭로했다. 이씨와 노조원 5명은 지난 3월 9일 부산의 모처에서 ‘항운노조의 민주화와 개혁을 염원하는 양심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채용상납비리와 승진상납비리 등을 비롯 노조집행부의 비리를 폭로한 것.

이들은 “채용상납비리에 있어 돈이 없으면 채용과 승진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 항운노조다”며 “조합원 A씨의 경우 취업부탁을 받은 후 조합간부에게 계좌이체와 직접지급을 통해 모두 1억7백만원을 전달토록 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이 알고 있는 비리들을 낱낱이 밝혔다.

또 이씨는 “나도 돈을 주고 노조에 가입하고 간부가 된 후 검은 돈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고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했다. 이들의 양심선언 내용은 지난 2003년 부산지검 특수부에 고발된 사안이었다.

이에 대해 항운노조 측은 “이들이 주장하는 양심선언 내용은 지난 해 7월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이라며 “양심선언을 한 이씨는 공금횡령 등의 혐의로 지난 1월 조합에서 제외됐으며 나머지 사람들도 공문위조 혐의 등으로 해임된 사람들이다”고 반박했다. 이씨 등의 양심선언 이후 검찰은 전국의 모든 항운노조로 수사를 확대했다.
이씨 등은 누구도 말하지 못했던 비리를 폭로했지만 법원으로부터 비리 당사자 보다 더 무거운 형량을 선고받았다.

지난 9일 부산지법 형사 5부는 이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양심선언 자체는 인정하지만 형평성의 원칙에 따라 이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400만원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이씨가 이렇게 무거운 형량을 선고받게 되자 부산인권센터 등 시민단체들은 성명을 내고 “항운노조의 고질적인 부정부패를 폭로한 사람에게 수사결과로 구속된 사람보다 더 무거운 죄를 묻는다면 앞으로 이 나라에서 누가 조직의 내부비리를 폭로하겠냐”며 법원을 비난, 이씨에 대한 선고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이씨의 양심선언으로 구속기소된 노조간부는 29명이었다. 이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고 현재 수감 중인 사람은 5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이씨보다 적은 형량이나 추징금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국가청렴위원회(구 부패방지위원회)가 국회사무처의 ‘국회도서관 서고동 전기공사 관련 부당 예산집행’건을 신고한 국회사무처의 전 감리원 B씨의 신원을 유출시킨 일도 있었다. 이로 인해 B씨는 상당한 곤혹을 치러야 했다.

최근 김재경 한나라당 의원이 청렴위와 국회사무처를 통해 확인한 결과 청렴위가 신고자의 신분비공개 요청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신고자의 신원을 알 수 있는 관련서류를 그대로 국회사무처에 보냈다.

이로 인해 신고자 B씨의 신원이 유출됐고 이를 접수받은 국회사무처에서도 신고서류에 신고자 이름이 기재된 것을 모르고 이를 해당 부서에 통보했다.
이에 대해 청렴위는 “국회사무처 감사관실 직원의 실수로 신고자 신분이 유출된 것”이라고 해명해 과오를 덮기에 급급하다는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B씨가 신분비공개를 요청했던 것으로 밝혀져 청렴위는 신고자 신분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비리 고발은 철저한 신분보장과 사후 안전책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확산되기 어려울 것이다. 또 내부 비리 고발을 ‘용기있는 결단’으로 인정하는 풍토 조성도 중요하다.
최근 비리 고발자들의 신분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아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가 늘자 철저한 신분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정욱 기자 ottawa1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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