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기누설’ 위기에 대기업 회장 ‘벌벌’

유명역술가의 ‘예언서’가 시중에 나돌고 있어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책자는 ‘부산 박도사’로 불리는 고(故) 제산 박재현이 수십년 동안 운세를 봐줬던 사회고위층의 사주풀이가 담겨있다. 기본적인 신상정보는 물론,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국내 굴지의 그룹 회장들과 정치인들이 거론된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고 있다. 특히 개인의 가정사나 사생활 등 지극히 사적인 내용도 노골적으로 언급돼 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각계 고위층 인사들이 ‘좌불안석’인 상태다.

지난 9월 22일, 한 유력 일간지에서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사가 보도됐다. ‘역술가 X파일이 떠돈다’는 게 그것이다. 더욱 관심이 가는 대목은 예언서의 주인공이 역술계 전설로 불리는 고(故) ‘제산 박재현’이란 사실이다.

신비의 능력, 사회고위층 사로잡다

‘부산의 박도사’ 불리는 제산 박재현은 자강 이석영과 도계 박재완과 함께 역술계 거성의 ‘빅3’로 불렸다. 그는 사주풀이에서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과거 2건의 살인사건에서 범인을 예측하는 등의 신비한 예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밖에도 그는 놀라운 예언능력으로 2000년 타계하기 전까지 역술계에서의 입지가 굳건했다.

박 씨는 자신의 이런 신비한 능력 덕분에 사회고위층과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1990년대까지 정·재계 유력인사들의 신임을 얻어 기업 운영과 정책결정에서의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신입사원 면접 시험에 매년 참여해 관상을 보며 입사 당락에 큰 영향을 주던 일화는 유명하다. 국가 정책에 있어서 박재현이 풀이한 국운이 정책에 직접 반영되는 일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 씨는 30여년 간 고객들의 사주를 봐주고 운세를 풀이한 내용을 자필로 꼼꼼히 기록했다. 그 방대한 내용이 ‘명리연구’라는 제목으로 10∼30권의 책자로 제작됐다. 현재 이 책자는 제본돼 역술인들 사이에서 고가에 거래되고 있으며 일부는 인터넷으로도 나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선 ‘명리연구’가 확산되면 ‘연예인 X파일’을 능가하는 파문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분석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내용 자체가 사회고위층들의 ‘사주풀이’인데다, 박 씨의 예언이 ‘소름끼칠 만큼’ 적중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까지 ‘명리연구’ 내용에는 박 씨가 운세를 봐준 고위층들의 사주와 부부운, 자식운, 재물운 등이 상세히 적혀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사주풀이 외에도 그들의 신상 정보도 기록되어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취재한 바에 따르면 이 책자 내용 중에는 국내 그룹 회장들에 대한 얘기가 담겨있다.

박 씨는 책을 통해 모 회장을 거론하며 “어두운 세상을 밝혀주는 등불 역할을 할 것”이라며 “51∼55세까지는 ○○사업과 ○○사업 등으로 사업이 분망하고 60세부터는 30대 재벌 그룹에 등명이 된다”고 사주를 풀어놨다.

‘명리연구’ 안에는 사회고위층들의 ‘숨기고 싶은’ 치부가 다수 포함되어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모 회장의 어머니가 둘이다” “이복형제가 있다”라는 등, 밝혀지면 그룹이나 개인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내용이 적혀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모 그룹 총수 A씨에 대한 얘기가 눈길을 끄는데, 여자문제·혼외자식 등에 대한 내용이 거론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해당 내용은 당시 그룹의 총수였던 A씨의 아버지가 후계승계를 위해 아들(현 A씨)의 사주풀이를 하면서 기록이 남은 것이다. 실제 A씨는 책에서 예언한 내용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이 때문에 해당 기업에서는 문제의 책자를 구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팀과 비서팀을 극비리에 가동해 책자 입수와 유통경로 등을 확인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역술계에서는 박 씨의 역술을 연구하려는 제자들에 의해 거래가 이루어지다 시중에 유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이 책은 상업적인 거래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역술인 X파일’이 또 다른 용도로 이용되진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를 낳고 있다.

문수영 기자
trueyoung@ymail.com


<고(故) ‘제산 박재현’ 일화>
박정희 전 대통령과 호형호제

타계한지 10년도 넘은 고(故) 제산 박재현이 ‘역술인 X파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박재현은 다른 역술가는 3∼4일씩 걸리는 평생사주를 단번에 정확하게 풀어낼 정도로 신통력이 대단했다. ‘부산 박도사’로 불렸던 그는 생전에 숱한 일화를 남겼다.

그중 제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얽힌 이야기다. 조용헌의 ‘담화’에 따르면 박재현은 군 생활을 시작하면서 당시 군수기지사령관의 박정희 장군과 인연을 맺었다. 처음 이 둘은 사병과 장군이란 신분이었지만 박재현이 박 장군에게 “당신은 장군에서 끝나지 않고 앞으로 제왕이 될 수 있는 운명의 소유자”라고 예언을 한 후 카운슬러와 내담자의 관계로 전환됐다. 이 둘은 사석에서 만나면 형님, 동생으로 부르며 막역하게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후 둘은 소원한 사이가 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10월 유신(維新)을 계획하고 있을 당시, 박재현에게 사람을 보내 물어보니 담뱃갑에 유신(幽神), 즉 ‘저승귀신’이라고 적어준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박재현은 이 때문에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곤욕을 치러야 했지만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이밖에도 대구 검찰청의 권 모 검사장은 자신을 갈치장수라고 속였다가 금세 들통이 난 일화를 비롯해, 이 이야기를 들은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이 박재현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삼성의 각종 인사와 사업확장 때 자문을 구했던 것도 잘 알려져 있는 얘기다. 부산에서 ‘효주양 유괴사건’이 일어났을 때 부산경찰국장에게 유괴범의 단서를 제공하기도 했다.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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