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동지들’의 딜레마

# 통합파-사수파 사이에서 속내 안 보이는 이들 50명
# 예전 통추 멤버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정

열린우리당이 통합파와 사수파 양 진영으로 빠른 속도로 분열하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의 ‘옛 동지’들의 거취가 새삼 관심을 끈다. 국민통합추진회의 멤버, ‘386 동생들’ 등 노 대통령과 ‘한 인연 한다’는 이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민에 빠져 있다. 노 대통령과 함께 가자니 대세인 통합신당파에 몸을 실을 수가 없겠고, 신당파 진영에 가자니 노 대통령과의 ‘정치적 우정’을 저버려야 한다. 이 때문에 고민스럽다. 이미 마음의 결정을 했다 하더라도 외부로 확실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는 이들이 여전히 상당수다. 여권 관계자들과 소식통 등에 따르면, 대략 50명 선은 되는 것 같다. 이들의 처지에 대해 살펴봤다.

최근 정동영·김근태 전·현직 당의장이 함께 힘 모아서 신당 건설을 하자고 손을 맞잡은 후, 열린우리당의 신당 작업은 탄력을 받는 듯 하다. 청와대와 당 사수파가 가만히 앉아 당할 리 만무하겠지만, 일단 오는 2월 전당대회 때까지는 이 같은 기류가 지속될 것으로 정치권은 내다보고 있다.

# 문제는 지금부터

현재 신당파로 확실히 구분되는 이들은 김근태·민병두·우상호·염동연·임종석·천정배·최재천 의원 등 78명 정도 된다. 이에 당당히 맞서고 있는 당 사수파는 김형주·백원우·신기남·유시민·이광재·이광철·이화영 의원 등 14명으로 거론된다.

나머지 50명에 가까운 이들은 사태의 추이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지난 12월 당 차원에서 의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을 때도 이들은 설문을 거부했다. 입장 표명을 계속 유보하고 있는 중이다. 꽤 많은 숫자다. 정치인의 속성상 대세 쪽으로 몸을 맡겨 정치생명을 유지하려는 속내인 것 같기도 하지만, 실제로 아직 선택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상당수인 것으로 전해진다.

친노 계열로 분류되는 이유 때문에 사수파로 불림직 하지만, 당 사수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지 않는 이들도 10명 정도나 된다. 강기정·김혁규·배기선·서갑원·원혜영·윤원호·정세균·조경태·조성래·한명숙 의원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결코 노 대통령이나 청와대를 공격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당 사수파 핵심 인사들처럼 통합파 진영에게 각을 세우지도 않는다. 그저 중립지대에 있는 모양새다.

아직 유보 입장을 보이고 있는 이들 가운데는, 김원기·문희상·유인태·이해찬·김원웅·김희선·이미경·장향숙 의원 등 노 대통령과 절친한 이들이 많다. 이들 역시 정계개편에 대해서만큼은 뼈있는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이들 중 김원기·문희상 의원 등은 신당 건설에 마음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매사 조심스러운 발언만 하고 있다. 어지간 해서는 언론 인터뷰를 피하고 있고, 측근들에게도 ‘말조심’을 철저히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원기·문희상 의원을 비롯한 유인태·이해찬·김부겸·김원웅 의원 등 친노 중진들에게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고민의 계절’이다. 정치적 실익과 의리 사이에서 상당한 갈등을 거듭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의 한 중진 인사는 “친노계열 중 비호남 출신들의 경우가 참 애를 많이 먹고 있는 것 같다”면서 “신당 쪽에 몸을 실었다가 자칫 구태 정치세력으로 낙인찍힐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합파로 분류되는 여당의 한 초선 의원도 기자들과의 사석에서 “사실 앞장서서 총대를 메고 통합파니 신당이니 외치는 사람을 따지고 보면 몇 명 안 된다”면서 “대다수가 실제로는 조심스러워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 의원의 얘기처럼 호남지지를 등에 업어야만 향후 정치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는 호남지역 정치인들과 일부 수도권 의원들의 목소리가 가장 크긴 하다.

# 과거의 쓴맛

김원기·유인태·김부겸·김원웅 의원 등 과거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출신들은 지역 기반의 정치를 거부할 경우 돌아오는 것은 정치적 ‘찬밥신세’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때문에 고민이 더 깊다.

지난 95년 국민회의 분당 사태 당시 통합민주당 잔류파들은 소수로 전락했었다. 이들 소수 세력은 결국 이듬해인 96년 15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이후 이들은 통추를 구성해 영남 기반의 신한국당과 호남의 국민회의 사이에서 ‘지역주의 정치 타파’라는 명분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2000년 16대 총선이 있기 전, 자신의 취향 대로 한나라당과 국민회의로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는 제도권에 진입했다.
이들은 지금 95년 당시와 유사한 처지에 봉착했다. 또다시 과거와 같이 지역 기반 정치에 반대하면서 ‘소수’의 길을 선택할 경우 앞으로 ‘정치생명’을 보장받기가 막막하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동현 기자 pen1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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