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두 칼럼] 역시 4대그룹, 위기가 기회…'역대급 투자'

2025-11-18     이원두
이원두 언론인 

한미정상회담 합의 사항을 정리한 팩트 시트 발표는 한국경제의 기회이자 위기가 함께 담긴 '계산서'다. 따라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요 그룹 기업인들과 민관합동회의를 열어 '대책'을 협의한 것은 당연한 후속 조치다.
이 회의 직후에 삼성전자 향후 5년간 4백50조 원, 현대자동차의 1백 25조 원을 비롯하여 SK, LG 등이 총 8백억 원에 이르는 국내투자를 약속함으로써 3천 5백억 달러 대미투자로 인한 국내 제조업 공동현상에 방패 막을 마련했다. 민노총을 비롯한 강경 노동단체, 진보좌파 그룹으로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성토당하고 매도되기는 했으나 그래도 4대 그룹을 비롯한 실물경제 주체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내외에 보인 점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자동차 관세 15%와 반도체 최혜국 대우 확보를 위해 우리 정부가 미국에 제시한 카드는 3천 5백억 달러 투자와 마스가(MASGA : 미국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로 포장된 조선업 협력이다. 이 과정에서 국내경제는 심리적으로 상당한 내상을 입었다.
이미 구조 조정이 필요할 정도로 한계점을 맞은 국내경제는 당장 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1달러가 1천 4백 50원대를 오르내리는 최근 동향은 1990년대 초반 외환위기 때보다 더 나쁘다. 코스피가 사상 최초로 4천 선을 돌파한 것과는 사뭇 비교되는 장면이다. 환율 급등은 원화 가치의 하락이 그만큼 가파르다는 의미다. 한국경제 펀더멘털을 나타내는 주요 지표의 하나가 환율이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국민연금을 소방수로 동원하자는 의견까지 나왔을까?

이뿐 만이 아니다. 3분기 수출 1천 8백 50억 달러 가운데 10대 기업 몫이 40%나 된다. 중견 중소기업의 퇴조가 그만큼 두드러진다는 뜻이다. 반도체, 자동차 등 특정 산업에 집중된 것도 문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국내외 경제환경이 중견 중소기업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대기업이 아니면 대응하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따른 자유무역 기조의 쇠퇴가 자리 잡고 있다. 적어도 트럼프 임기 동안은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내적 요인은 더욱 심각하다. 앞으로 10년간, 2035년까지 온실가스 중립(감축) 목표 (NDC)를 53~61% '직선형 감축'으로 확정한 것은 물에 빠진 사람 발목에 무거운 돌을 매단 것과 다르지 않다.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초기비용 부담을 줄이고 기술 발달이 기대되는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감축하는 '완만한 곡선형'이 아니라 해마다 같은 수준으로 감축한다는 직선형을 채택한 것도 상당한 부담이다. 이미 미국은 탄소 감축을 외면, 국제기구에서 탈퇴했으며 유럽연합 (EU)도 아주 소극적이다. 그런데도 유독 한국만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득력 있는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에 따라 기업의 전기료 부담 역시 임계점에 이르게 되었다. 이미 산업용 전기료를 일곱 차례나 인상, 미국보다 50%나 비싸다. 경제개발 초기 단계이던 60~70년대엔 가정용보다 산업용 전기료가 쌌다. 그 덕분에 압축성장을 이룩했다. 따라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산업용 전기료를 더 올리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현 상황은 그렇지 못한 데 문제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삼성전자 등의 대형 투자계획을 접하면서 '비슷한 조건이면 되도록 국내투자에 힘써 달라'고 당부하면서 '규제를 지적해 주면 신속히 정리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기업을 옥죄는 각종 정책과 규제는 경제단체가 이미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최근에는 한국경제인협회가 국내 경제법 체계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경제형벌 8천여 개 가운데 34%가 중복처벌이나 제재라고 밝혔다. 경제법 체계를 비롯하여 각종 규제는 경제개발 초기 단계, 정부가 앞장서서 기업을 이끌던 때의 유산이다. 이미 선진국에 진입한 지금까지 그러한 규제가 숨을 쉬는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대통령이 신속 시정을 약속한 이상, 구시대 유물인 각종 규제는 원칙적으로 전면 철폐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대미투자 3천 5백억 달러는 한국이 지난 35년간 해외 순 투자를 합친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이를 조달하려면 돈을 그만큼 벌어야 순조롭게 충당할 수 있다. 그 주체는 기업일 수밖에 없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산화탄소감축 목표, 전기료 부담 가중, 각종 규제가 그대로 작동한다면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팩트시트가 가져온 벅찬 현실을 도약의 기회로 삼으려면 그에 합당한, 그리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며 그것은 오로지 정책당국이 책임지고 추진할 과제다.

<Who is>
이원두 칼럼니스트. 언론인. 번역가 한국일보 부장, 경향신문 문화부장 부국장 내외(현 헤랄드)경제 수석논설위원, 파이낸셜 뉴스 주필 한국추리작가협회 상임 부회장 등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