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 뉴스 논평] 공직사회를 뒤흔드는 속셈은
필자가 일간신문 기자 초년병이었던 이승만 정권 시절의 일이었다. 마감 시간에 쫓겨 급히 신문사로 들어가기 위해 뛰다시피 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네거리를 막 건너서자 교통순경이 호루라기를 빽 하고 불며 막아섰다.
"보행규칙 위반으로 벌 받아야합니다. 저 줄 안으로 들어가서 30분간 서 있어요!"
네거리에 신호등이 제대로 없던 시절, 교통순경의 수신호로 통행을 했다. 부주의로 보행 단속에 걸린 것이었다.
보행 위반자는 길모퉁이에 쳐놓은 줄 안에 들어가 30분 동안 벌을 서면서 반성하고 가야 했다.
창피하고 당황스러웠다. 기자에게 가장 무서운 호랑이는 '마감시간'이다. 시간을 놓치면 뉴스가 죽는다. 나는 5분 쯤 기다리다가 순경 옆으로 가서 사정을 했다.
"저... 제가 OO일보 기자인 데요 마감 시간이 급해서 실수했습니다. 한번 봐 주실 수 없겠습니까?"
순경은 내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신분증을 보자고 했다. 시뻘건 횡선 두 줄에 '보도'(報道)라고 쓰인 신분증을 보여 주었다. 순경은 갑자기 잡혀 있는 사람들을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기자님은 공무집행 중이니 빨리 가 보십시오."
나는 다시 뛰어가며 생각해 보았다. '내가 공무 집행중인가' 기자는 분명히 공무원이 아니니까 공무집행중은 아니다. 그런데 순경이 잡혀 있는 사람들을 향해 명분을 만들어 큰소리로 알리며 '공무집행'을 한 것이다. 당시는 언론의 힘을 권력도 두려워하던 시대였다.
공무원이 하는 일은 국민이 믿는다. 공정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무원이 신뢰를 잃으면 국가는 위태로워진다.
국무총리실이 갑자기 모든 공무원을 상대로 '내란'과의 내통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500명 규모의 어마어마한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총리실에서 총괄한다고 한다. 12·3 내란에 가담하거나 협조한 공직자를 가려내기 위해서 개인 핸드폰이나 PC도 제출하라고 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김민석 총리가 수시로 TF 진행 상황 보고를 받고 필요시에는 총리 주재로 회의도 할 예정"이라며 "이번 TF가 총리 제안으로 시작된 만큼 최종 결정과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민국 공무원은 49개 부처에 모두 1백70만 명이 넘는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등 3부에 근무하는 숫자를 모두 합친 것이다. 이중 대통령이 임명하는 숫자는 대략 6천~7천 명에 이른다.
정부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국영 기업체를 합치면 더 엄청난 숫자가 나온다. 국영기업체를 포함한 공공기관 전체의 공식적인 통계는 2025년 3분기 기준으로 3백 27개 기관에 40만 명이 넘는다.
정권이 바뀌면 2백만 명이 넘는 공직자와 국영 기업체의 종사자가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는다.
벌써부터 공직 사회에서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믿기 어려운 투서가 나돌기 시작했다고 한다. 공직 사회가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원내 수석대변인은 "공직자 개인 휴대전화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사실상 공산당식 공포 정치의 서막"이라고 비판했다
'공무'란 국민과 국가를 유지하는 중요한 업무이기 때문에 항상 공정해야 하고 부당한 권력이 억눌러서는 안 된다.
교통순경이 기자의 일을 공무로 본 것은 언론이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무'는 아무도 부당하게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내란 부역자 색출'은 공무원뿐 아니라 국민의 동의를 얻기 힘들 것이다. 비상계엄이 한밤중에 선포되고 2시간 만에 국회 결의로 끝났는데, 집에서 잠들어 있던 공무원들이 언제 부역하고 가담할 틈이 있었겠는가.
국회와 행정부를 차지한 민주당 정권은 사법부를 길들이기에 열을 올리다가 돌연 공직사회를 흔들기 시작했다. 공직자들의 '자리'까지 재편할 욕심을 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Who is>
이상우-언론인, 소설가, 한국디지털문인협회, 한국추리작가협회 이사장, 국민일보, 한국일보, 서울신문, 스포츠서울, 파이낸셜뉴스, 일간스포츠 goodday 등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회장 등 역임. <세종대왕 이도> <신의불꽃> 등 역사, 추리소설과 <긴생각 짧은글> <권력은 짧고 언론은 영원하다>등 저서 400여 편을 발표. 한글 발전공로로 문화포장 수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