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두 칼럼] AI고속도로 ⁃ 국가과학자, 디테일이 문제
지난 4일 새해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고속도로처럼 인공지능(AI)고속도로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사흘 뒤, 7일에는 대전서 열린 연구개발 생태계 혁신 국민보고대회서 국가과학자 제도를 부활하여 5년간 1백 명을 선발하여 '실패할 자유와 실패할 권리' 보장과 함께 연간 1억 원씩 지원, 기업-대학 겸직 등 처우개선을 포함한 예우 수준을 내년 상반기까지 정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석학 최고 예우인 '원사 제도'를 벤치마킹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해외 연구자 2천 명도 유치할 계획이다. 윤석열 정부가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과 비교되는 장면이다. 특히 인공지능 분야의 필수품인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거의 독점 생산하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가 한국을 찾아 GPU 26만 장 공급을 약속하면서 '한국이 인공지능 분야의 3강이 될 가능성과 자격을 모두 갖추었다'고 한점을 상기할 때 'AI 고속도로'와 국가과학자 1백 명 양성은 늦었으나 때맞춘 결단으로 읽힌다.
지금 세계는, 개도국 선진국 할 것 없이 모두 인공지능에 올인하는 형국이다. 제각각 실력에 맞는 분야를 선정, 경쟁력 확보에 여념이 없다. 트럼프가 엔비디아 GPU 칩의 중국 수출을 금지한 것이나 젠슨 황이 이에 반발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인공지능 경쟁력 확보 때문이다.
19세기 산업혁명으로 기계 기술 경쟁에 국력을 쏟은 것이나, 20세기 중후반부터 시작된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휴대전화 경쟁에 목숨을 건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인공지능에 올인하고 있다.
문제는 인공지능 경쟁은 산업 혁명기의 기계 기술이나 20세기 중반부터 일기 시작한 컴퓨터, 인터넷, 휴대전화 바람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이다. 문자 그대로 인공지능은 '인간이 인간의 지능을 대신할 메커니즘과 시스템을 창조'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누가 얼마만큼 가장 비슷하게 인간 두뇌 구조와 기능을 모방하느냐의 경쟁에 불이 붙은 것이다.
적어도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도 못 한 인공지능이 상품으로 등장하고 있는 겻이 현실이다. 모방하려는 상대방(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능력, 이를 바탕으로 상대방 행동을 분석하여 필요한 행동만 선택하는 능력을 상당한 수준으로 갖추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런 능력을 인지과학에서는 직관 심리학 또는 소박한 심리학으로 표현한다. 캐나다 출신으로 미국 MIT(뇌 인지과학). 하버드 (실험심리학) 교수인 스티븐 핑커가 2004년 퓰리처상을 받은 명저 '빈 서판'(Ths Blank Slate)에서 상대방 행동을 통해 그 목적까지 읽어내는 인공지능(로봇)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이 단언은 20년 만에 보기 좋게 빗나간 것으로 읽힌다.
실제로 인간의 뇌를 모방하거나 흉내 내는 것은 아득할 정도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다. 현재의 인간 뇌는 30억 개의 게놈 염기 조직이 몇억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한, 복잡하기가 상상을 초월한다. 여기에 1천 개에 이르는 뉴런(신경단위)의 결합부가 1백 조개에 이른다. 숫자만 보더라도 아득하기 짝이 없어 손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인간이 유아기를 거쳐 성인으로 홀로서기까지 20년간 학습할 분량을 인공지능은 단시간에 익혀 상품으로 인간세계 '침범'이 시작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깔겠고 다짐한 AI 고속도로가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짐작이 갈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부고속도로는 독일의 아우토반이 교과서다. 그러나 AI 고속도로는 교과서가 없다.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개척하고 창조해야 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기술만으로는 안된다. 인문학과 결합할 때 비로소 세상을 놀라게 하는 새로운 것을 개발할 수 있다'고 강조한 사실이다. 컴퓨터 개발에서 IBM에 뒤진 상황에서 애플이 아이팟을 개발, 음악 (음원) 시장에 대변혁을 일으킨 직후에 한 말이다. 음악 시장 접근과 마케팅은 인문학, 아이팟은 기술이다. 하드웨어(아이팟)는 소프트웨어(인문학)와 융합될 때 비로소 신천지가 열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기술과 과학에만 집중된 감이 없지 않다. 인문학의 뒷받침이 없는 기술, 철학이 없는 과학은 결국엔 반쪽으로 끝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배웠다. 다시 말하면 AI 고속도로나 국가과학자 양성과 지원도 인문학과 철학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디테일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Who is>
이원두 칼럼니스트. 언론인. 번역가 한국일보 부장, 경향신문 문화부장 부국장 내외(현 헤랄드)경제 수석논설위원, 파이낸셜 뉴스 주필 한국추리작가협회 상임 부회장 등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