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드의 기적' 증명한 T1…KT 꺾고 롤드컵 쓰리핏 쾌거
청두서 발발한 '통신사 대전'…LCK 4연속 제패 풀세트 접전 끝 T1 승리…V6·쓰리핏 동시 달성
민주신문=변현경 기자|자타공인 e스포츠 명문 구단 T1이 다시 한번 세계 최정상에 올랐다. 지난 2017년 좌절됐던 '리그 오브 레전드(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3연속 우승, 일명 '쓰리핏'(Three-peat)의 꿈을 8년 만에 이뤄내면서다.
T1은 지난 9일(현지 시각) 중국 청두 동안호 스포츠파크에서 열린 '2025 롤드컵' 결승전에서 KT 롤스터를 세트 스코어 3대 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결승은 SK텔레콤(SKT) 산하에서 출발해 인적 분할을 거친 T1과, KT스포츠가 운영 중인 KT 롤스터가 격돌한 '통신사 대전'으로 치러졌다. LCK(한국 리그) 소속 두 팀의 맞대결로 이미 한국의 4년 연속 롤드컵 제패가 확정되자 전 세계 팬들의 관심이 청두로 쏠렸다.
T1은 상대 전적에서 26승 6패로 크게 앞서 있었지만 이번 대회에서 KT 롤스터가 기록한 세트 승률(90.9%)은 승부의 향방을 쉽게 예측할 수 없게 했다.
앞서 KT 롤스터는 스위스 스테이지에서 3전 전승을 거둔 뒤 녹아웃 스테이지에 안착해 8강과 4강을 각각 3대 0, 3대 1로 통과하며 안정적으로 결승에 올랐다. 반면 T1은 가장 낮은 4시드로 진출했음에도 노련한 운영과 집중력으로 매 라운드를 돌파했다.
결국 승부는 풀세트 접전 끝에 갈렸다. T1은 '승·패·패·승·승'으로 세트 스코어 3대 2 역전승을 거뒀다. 지난해 롤드컵 결승에서 LPL(중국 프로 리그)의 BLG(Bilibili Gaming)를 상대로 '승·패·패·승·승' 승리를 거뒀던 T1은 올해 또다시 같은 시나리오로 정상에 섰다.
1세트에서 T1은 불리했던 초반 흐름을 뒤집었다. 페이커(이상혁)의 '탈리야'가 드래곤 지역 한타(대규모 교전)에서 스킬을 적중시킨 것이 주효했다. 이후 아타칸과 바론 등 주요 오브젝트(Object)를 차례로 확보하며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2·3세트에서는 KT 롤스터의 반격이 거셌다. 커즈(문우찬)과 비디디(곽보성)가 공격적인 주도권 플레이로 베테랑 선수다운 운영을 보여주며 두 세트를 연속으로 따냈다. 특히 3세트에서 커즈의 '문도 박사'는 탱킹과 딜링을 겸비한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경기의 흐름을 바꿔놨다.
그러나 4세트에서 T1이 다시 승기를 잡았다. 페이커의 '애니비아'와 오너(문현준)의 '녹턴'이 교전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고 케리아(류민석)의 '레나타'가 매끄러운 궁극기 연계를 보여줬다. '드래곤 영혼'까지 획득한 T1은 빠르게 넥서스를 파괴하며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마지막 5세트에는 도란(최현준)과 오너가 퍼펙트(이승민)를 상대로 킬을 따내며 기세를 올렸다. 중반부터는 구마유시(이민형)의 '미스 포춘'이 폭발적인 돌진력으로 전장을 장악했으며 이후 에이스(상대 전원 처치)를 띄운 T1은 끝내 KT 롤스터의 넥서스를 파괴했다.
결국 T1은 역전극으로 대기록을 완성했다. 불안한 흐름을 뒤집어내는 특유의 후반 집중력과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풍부한 국제전 경험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이로써 T1은 롤드컵 사상 첫 쓰리핏(2023~2025)과 통산 여섯 번째 우승이라는 두 개의 금자탑을 세웠다. 지난 2013년 첫 우승을 시작으로 2015~2016년 연속 우승을 포함해 여섯 번이나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오른 팀은 T1이 유일하다.
무엇보다 'T1 원팀'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온 페이커는 개인 통산 6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했다. 만 17세의 나이로 롤드컵 챔피언에 올랐던 그는 1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세계 최고 미드라이너로 군림하고 있다.
올해 새롭게 합류한 톱라이너 도란의 존재감도 돋보였다. 지난해 '제오페구케'(제우스·오너·페이커·구마유시·케리아) 로스터가 붕괴하며 제우스의 빈자리를 채운 그는 시즌 내내 팀원들의 실수를 만회하는 '히든 카드' 역할을 해내며 팀의 안정감을 높였다.
파이널 MVP는 구마유시에게 돌아갔다. 정규 리그 중 경기력 부진을 이유로 주전 경쟁을 벌여야 했던 선수가 같은 해 롤드컵 무대에서 본인을 둘러싼 의심을 잠재운 것. 그는 "올해는 저 자신에게 스스로를 증명하는 한 해였다"며 "팬분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준우승을 차지한 KT 롤스터에 대한 여론도 뜨겁다. 시즌 초반 하위권에 머물던 팀은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며 반등에 성공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젠지를 꺾는 대이변을 일으키기도 했다.
창단 이래 처음 오른 롤드컵 결승전 무대에서도 T1을 상대로 결코 쉽게 밀리지 않는 모습으로 전 세계 팬들과 전문가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특히 신인 선수인 퍼펙트와 피터(정윤수)의 기량이 성장곡선을 그리며 비디디의 '원맨 캐리' 부담감을 크게 덜었다는 평가다.
양 팀은 휴가 기간을 가진 뒤 다음 시즌을 향한 준비에 돌입한다. 오는 2026년 3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리는 '퍼스트 스탠드 토너먼트'(FST)가 첫 단추다. 내년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은 한국 대전에서, 롤드컵은 미국 텍사스와 뉴욕에서 치러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