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광장과 혐오, 이를 이용하는 정치인…타인은 지옥이다

2025-10-29     조규상 편집국장

민주신문=조규상 편집국장|광장은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다. 억눌려 있는 민의를 읽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4·19 혁명부터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광장은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는 공간이었다. 이 공간은 독재정권에 파열음을 냈고, 마침내 우리는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그리고 2016년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며 우리는 광장에 모였고,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지난해에도 광장에 모인 힘으로 우리는 계엄령을 조기 진압했다.

다만 광장은 양극화라는 새로운 숙제를 남겼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광장은 둘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조국 사태 혹은 조국 게이트라 불리는 사건이 계기가 됐다. 이는 2019년 8월 9일 조국(현 조국혁신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이후 여러 논란이 불거지며 발생한 것으로, 국론 분열이 대규모 집회로 이어지게 된 것.

당시 보수진영에선 이를 비판하기 위해 광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고, 원래 광장의 목소리를 주도했던 진보진영은 '조국 수호'에 나섰다.

이 같은 분열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을 계기로 더욱 심화됐고, 우리는 혐오의 시대에 접어들게 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과 윤 전 대통령의 계엄이 맞물리면서 상대진영을 범죄 집단화하는 상황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나아가 직장 동료 관계에서도, 심지어 가족 관계에서도 정치적 성향이 갈리면 상대방을 혐오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지금 이 중요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반으로 갈려 서로를 헐뜯고 있다. 전 세계의 시선이 모인 경주에서 진보진영은 반미를, 보수진영은 반중을 외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양극화로 인해 정치권에 대한 감시 기능이 떨어지게 됐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집단 이익을 위해 양극화된 상황을 이용하게 됐고, 사회가 병들어가는 것을 넋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정치 이야기는 끝이 없는 논쟁이다. 정답을 말하고자 하는데 다른 이념을 가진 이에게는 정답이 될 리 만무하다.

먹고 사는 문제가 직결돼 있으니 상대방의 잘못된 이념을 교화시키고자 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념 문제는 잘잘못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의 이념을 무너뜨린다면 이것은 독재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다.

프랑스 실존주의자 장 폴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했다. 단순히 "다른 사람이 싫다"라는 말이 아니다. 이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이 규정될 때 인간은 지옥 같은 상황에 놓인다'라고 해석된다. 즉, 자기 존재를 타인의 시선에 종속시키지 말라는 경고로 이해하면 된다.

광장도 바뀌어야 한다. 나의 이념과 다른 이의 이념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나 또한 누군가의 시선에 종속될 필요가 없다. 균형을 갖고 견제의 기능이 작동하는 광장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