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두 칼럼] '같은 듯 다른' 이재명 한국과 다카이치 일본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백 20여 일 만에 일본 총리가 바뀌었다. '여성 아베'라고 불리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취임에 따라 앞으로 한일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전개될지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아베 전 총리 때 서먹서먹했던 한일관계를 '셔틀 외교'복원이 상징하듯이 '친밀한 이웃'으로 되돌린 이시바 전 총리의 '친한 노선'은 일단 막을 내렸다고 봐야 한다. 이번 주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 회의에서 '상견례'를 갖는 이재명-다카이치, 두 사람은 '한일 우호는 필수적'이라는 데 목소리를 같이 한다. 따라서 양국이 아베 전 총리 때처럼 서먹서먹한 관계로 시종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의 전력을 볼 때, 반드시 돈독한 우호적 맹방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이 시점에서 주목할 점은 새로 취임한 양국 정상,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취임하기 전에는 반일 정치인, 반한-혐한 정치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기회 있을 때마다 일본을 성토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폐수를 방출하자 데모와 집회로 전국을 누비면서 한국 연근해 어업이 받을 '치명적 피해'를 성토했다.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 후쿠시마 현지를 찾아 '할 말을'하는 결기를 보였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폐수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며 일본산 해산물 수입을 금지했단 중국조차 이를 풀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아직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전임 아베 총리를 숭배한다고 공언할 정도의 우파, 그것도 극우파에 가깝다. '그러니까 저들(한국)이 기어오르는 것 아닌가'라는 폭언으로 혐한(嫌韓)파를 격려한 적도 있다. 다카이치 역시 총리 취임을 전후로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번 조각에서도 아베파를 중용함으로써 정치 노선에 변함이 없음을 과시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절대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결을 통해 못할 일이 없을 정도'로 탄탄한 기반을 자랑한다. 공명당과의 연정이 결렬됨으로써 한동안 취임 여부가 안개에 묻혔을 정도로 다카이치의 정치 기반은 약하다. 같은 보수계열인 유신회와 손을 잡고 '각외 협력(閣外協力)'이라는 어중간한 연정을 꾸리는 데 가까스로 성공할 정도다. 각외 협력이란 문자 그대로 유신회가 각료를 파견하지 않는, 내각 밖에서의 협조를 뜻한다. 의원정수 감축 등 양당이 연정 전제조건으로 합의한 사안의 진행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다. 한마디로 다카이치 총리의 통치기반은 약하다는 뜻이다. 다카이치는 자신의 약한 정치 기반을 아소 타로를 비롯한 아베파 중용으로 안정을 도모한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의 시정 방침, 또는 정치 노선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 북한에 대한 시각이다.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김정은이 오래 참았다'고 논평한 데 반해 다카이치는 '한미일 3국이 협력하여 대응책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다카이치가 대만 안보에 방점을 찍고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한국과 일본 반응에는 미묘한 차이를 느끼게 한다. 또 하나 중대한 차이점으로는 원자력 발전에의 대응책이다. 이재명 정부는 원전에 대해 극히 소극적인 데 반해 다카이치는 취임 직전 각성 대신(각부장관) 앞으로 보낸 '지시서'에서 무분별한 재생에너지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원전에 대한 간접적인 지원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이재명 대통령이나 다카이치 총리는 서슴없이 재정을 푸는 데는 다름이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미 민생자금을 푼 데 이어 신용불량 자영업자 구제 대책을 지시한 바 있다. 다카이치 총리 역시 '강한 경제'를 내세워 '보조금 지급을 통한 감세'를 추진한다. 이처럼 양국 통치자는 같은 듯 다른 면이 두드러지고 있으나 '한일간의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과거 역사 문제를 극복, 지금 새로 형성되고 있는 일종의 보호주의 경향에 효율적으로 맞서기 위해서라도 호흡을 맞출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반일과 혐한'은 잠시 접어두라는 것이 시대적 명령임을 알아야 한다.
<Who is>
이원두 칼럼니스트. 언론인. 번역가 한국일보 부장, 경향신문 문화부장 부국장 내외(현 헤랄드)경제 수석논설위원, 파이낸셜 뉴스 주필 한국추리작가협회 상임 부회장 등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