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K-게임 부흥' 외치며 싹을 자르는 모순

2025-10-17     변현경 기자

민주신문=변현경 기자|"게임은 질병이 아니다." 한국에서 이 문장은 근 6년간 상식이나 관념이 아닌 일종의 '선언'으로만 쓰여 왔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2019년 게임 이용 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하며 점화된 논의는 여태 결론을 내지 못한 '낡은 논쟁'이 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5일 'K-게임 현장 간담회'에서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문화산업 국가로 만들자는 게 정부의 생각"이라며 "게임은 중독물질이 아니다"고 못 박았다.

그럼에도 게임 업계의 그림자는 쉬이 걷히지 않고 있다. 논의가 오랜 시간 공회전을 거듭하면서 피로와 불신이 누적된 탓이다. 이번 이 대통령의 격려 섞인 발언 역시 또 하나의 '선언'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그간 쟁점은 게임 중독의 '질병코드 부여'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나, 이쯤 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질병으로 분류할지 말지의 문제를 넘어 게임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미리 꺾어 버리는 소모적 논쟁을 끝낼 의지가 없는듯한 정책적 신호로 읽힌다는 점이다.

게임은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실질적인 존재감을 보이는 핵심 콘텐츠 산업이다. 정부 또한 콘텐츠 강국으로의 도약에 있어 K-게임 부흥을 외치며 창작 역량과 수출 전략 등을 강조해 왔다.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정작 다른 한쪽에서는 질병 프레임이 굳어져 가는 현실이 방치되는 중이다. 그 모순의 비용은 꼼짝없이 업계와 유저들에게 돌아가는 모양새다.

논의가 새 국면을 맞지 못한다면 게임은 유쾌한 여가 콘텐츠로서 기능을 점차 잃어간다.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해 투자 및 개발 의지를 위축시키고, 이용자들에게는 '환자'라는 낙인을 남긴다. 산업의 성장세를 직접적으로 가로막는 규제도 공식화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중독'이라는 잣대가 불균형하다. 스마트폰, SNS, OTT, 쇼핑 등 이미 주류로 자리 잡은 그 어떤 여가 행위도 과도한 빈도와 몰입의 범주로 들어서는 순간 중독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지 않은가.

최근 기자가 만난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 역시 이 점을 지적하며 "게임 애호가로서의 자기방어가 아니다"고 호소했다. 문화적 다양성으로 용인되는 수많은 영역 중 게임만이 병리의 일종으로 치부되고 싶지 않다는 외침이다.

정책은 언제나 명분을 갖지만, 이번 명분은 실제 문제를 일으킨 특정 기업이나 인물이 아닌 하나의 산업 전체를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더 큰 무게가 따른다. 더구나 낙인찍히게 될 그 산업이 국가적 성장을 바라온 분야라면 더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게임은 질병이 아니다. 게임 산업의 가능성을 키우지 못하는 사회야말로 병들었을지 모른다. 부흥을 원한다면 이제는 정말로, 자라날 수 있는 토양부터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