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계 대부' 전유성, 폐기흉 악화로 별세…향년 76세
민주신문=이한호 기자|한국 코미디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수많은 후배들을 길러낸 '개그계의 대부' 전유성이 별세했다. 향년 76세다.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 협회는 전날 오후 9시 5분, 전북대학교병원에서 폐기흉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고인은 슬랩스틱 코미디가 주를 이루던 시대에 촌철살인의 지적인 개그를 도입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1969년 TBC 작가로 데뷔한 그는 유머 1번지, 쇼 비디오 자키 등 당대 최고의 프로그램을 통해 몸개그가 아닌 재치와 위트로 승부하는 새로운 코미디 흐름을 만들었다.
특히 '개그맨'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해 코미디언의 위상을 높인 일화는 유명하다. PC통신 시절 그의 아이디는 'gagman1'이었다.
또한 대학로 소극장 개그를 방송 무대로 끌어올린 KBS 개그콘서트의 기획자로, 공개 코미디의 전성기를 열었다.
후배 양성에도 열정적이었다. 2001년 '코미디시장'을 열고 예원예술대학교 강단에 서며 김신영, 조세호, 황현희 등 수많은 후배를 양성한 '개그계의 스승'이기도 했다. 애제자 김신영은 임종 직전까지 스승의 곁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연예계는 슬픔에 잠겼다. 동료와 후배들은 SNS 등을 통해 고인을 추모하며 애통한 마음을 전했다.
김학래 방송코미디언협회장은 "코미디의 인적 자원을 키워내고 위상을 높이신 분"이라며 "위중한 상태에서도 병문안 온 내게 농담을 건넬 만큼 천생 개그맨이었다"고 회상했다.
이경실은 "오빠와 함께한 시간은 늘 행복했다"며 고인을 그리워했고, 김대범은 "나이를 초월해 항상 젊은 감각의 신선한 개그를 선보이셔서 늘 감탄하며 배울 수 있었다"이라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고인은 '코미디계 아이디어 뱅크'라는 별명답게 공연 기획, 작가, 교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2007년 방송 은퇴 후에는 경북 청도에 '코미디철가방극장'을 열어 4400회가 넘는 공연으로 지역 문화 활성화에 기여했다.
또한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전유성의 구라 삼국지 등 다수의 저서를 남긴 작가이기도 했다. 2023년에는 마지막 에세이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을 출간하며 마지막까지 창작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고인은 팬데믹 기간 코로나19를 앓은 뒤 급성 폐렴, 부정맥 등으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 지난 7월 폐기흉 관련 시술을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치료를 받던 전북대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희극인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딸 제비 씨가 있다. 고인이 생전 활발히 활동했던 KBS 인근에서는 노제가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