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는 가계대출 정책

2025-06-20     이한호 기자

민주신문=이한호 기자|정부가 은행권을 향해 동시에 두 개의 깃발을 흔들고 있다. 하나는 '이자 부담 완화', 다른 하나는 '가계대출 억제'다.

이재명 대통령이 "해외와 비교했을 때 예대금리차가 벌어져 있는 게 아니냐"며 은행의 이자 장사를 지적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동시에 금융당국은 폭증하는 가계부채의 고삐를 죄라며 총량 규제의 칼날을 겨눈다. 

선의는 이해하지만, 방향이 다른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정책적 딜레마에 시장의 혼란만 깊어지고 있다.

정부가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명분은 분명하다. 기준금리가 인하됐음에도 체감하는 대출금리 인하 속도가 더디기 때문이다. 

시장 금리의 문제는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급증하는 가계부채, 그중에서도 부동산 관련 자금 수요 폭증에 있다. 정부 역시 이 문제를 인지하고 은행권에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정해진 한도 내에서만 가계대출을 취급하라는 요구다. 

바로 여기서 정책의 모순이 발생한다. 정부는 은행에 '금리를 낮추라'와 '대출을 줄이라'는 양립하기 힘든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부여했다. 

가격을 내리면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시장의 기본 원리다. 이는 운전자에게 '좌회전 깜빡이'를 켠 채 '우회전'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은 형국이다.

이런 정책적 혼선은 이미 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자영업자 대출 금리가 우량 담보가 있는 주택담보대출 금리보다 낮아지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모순된 목표를 억지로 달성하려다 보니 시장의 가격 시스템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부는 자본규제 강화 같은 우회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위험가중치 비율을 상향 조정해 은행이 대출을 꺼리게 만드는 방식이다. 어떤 방식이든 대출 문턱 자체를 높여 신용과 자산이 부족한 서민들의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제 정책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당장의 이자 부담 완화가 우선인가 아니면 미래의 시스템 리스크를 막기 위한 가계부채 관리가 우선인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둘 다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어떤 목표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 시장에 명확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 갈림길에서 머뭇거리는 동안, 정책에 대한 신뢰와 시장의 안정성만 흔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