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장기판 위의 말 'HMM'
민주신문=승동엽 경제부장|해운업계가 동요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초기부터 HMM 본사 이전 추진 가능성이 불거지면서다. 엄연히 공기업이 아닌 사기업을 정부의 '장기판 위의 말'로 활용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부산 유세 현장에서 HMM의 본사를 부산으로 옮기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북극항로가 활성화할 것이란 전망을 본사 이전의 핵심 근거로 제시했다.
HMM 본사는 서울 여의도 '파크원타워'에 위치한다. 실제로 본사 추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일 취임 후 첫 국무회의에서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 준비를 지시했다. 곧바로 해수부에는 부산 이전 추진단이 구성됐다. 해운업계에서는 HMM 부산 이전도 가시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HMM은 2016년 해운업 구조조정 당시 산업은행의 지원을 받아 채권단 관리하에 경영 정상화를 추진했다. 2020년에는 회사 명칭도 현대상선에서 HMM으로 변경했다. 산업은행을 비롯해 한국해양진흥공사, 국민연금 등 정부 측이 보유한 HMM 지분은 76.86%에 달한다.
선복량은 91만3867TEU로 세계 8위 규모다. 작년 해운업 호황으로 영업이익 3조5128억 원을 기록하며 코로나19 이후 역대 세 번째 호실적을 달성했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 역시 613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1% 늘었다. 시가총액은 23조 원에 달한다.
그만큼 부산 경제계와 지역사회는 HMM 본사 이전 가능성을 놓고 기대가 큰 게 사실이다. 국내 최대 선사를 유치하면 지역경제가 살고 부산의 해양 도시 이미지를 더 굳건히 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고 있다.
다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HMM 본사 이전을 놓고 찬성뿐만 아니라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내부 의견도 엇갈리는 상황이다.
특히 HMM 전체 직원의 55%가량을 차지하는 육상노조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 900여 명은 본사 이전을 놓고 상장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훼손하는 정치 폭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서울 여의도의 금융 인프라와 고객사 접근성 등을 강조하며 이전을 반대하고 있다. 수도권에 생활 기반을 둔 직원들의 인력 유출과 조직 불안정성도 같이 거론되고 있다. 전문가들도 본사를 이전하면 화주 영업과 선박 금융이 제때 이뤄지기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HMM이 공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장은 산업은행 등 정부 측이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공공서비스 제공을 주된 업으로 하는 공기업과 HMM은 성격 자체가 다르다.
국내에서 산업은행 영향권에 속해 있는 기업은 한둘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들 기업 모두를 공기업으로 분류하진 않는다. 같은 얘기를 반복하자면 HMM은 정부가 지정한 공공기관·공기업에도 포함돼있지 않다.
앞서 언급한 대로 육상노조도 '상장사의 자율성과 독립성 훼손'을 반대 이유로 제시했다. 민간기업의 자율성과 독립성 훼손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정부 입맛대로 본사 이전을 강행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선거 때마다 본사 이전 이슈가 불거지는 것도 곱씹어봐야 한다. 과거 총선과 지방선거는 물론이고, 제20대 대선에서도 HMM 본사 이전 공약은 지역 표심잡기용으로 등장했다.
핵심은 정부가 이 문제를 놓고 정치가 아닌 경제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HMM을 단순히 장기판 위의 말로 활용하는 것보단, 오히려 새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