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까지 수사 확대되나


 

장 씨, 한국일보 미국지사서 김한길 원내대표와 기자생활
활동일지와 은어로 작성된 ‘암호보고문’ 분석, 파장 예고

정치권과 시민단체, 노동계가 국가정보원과 검찰의 칼끝을 주시하고 있다. 386 운동권 출신 지하조직 ‘일심회’ 소속 조직원 5명이 줄줄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면서 수사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국정원 주변에서는 일심회에 포섭된 조직원이 10여명에 달한다는 얘기가 돌고 있어 이번 사건은 향후 수사 내용에 따라 대규모 간첩단 사건으로 번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특히 국정원은 고정간첩으로 지목한 장민호 씨의 구체적인 행동 반경을 알 수 있는 ‘활동일지’와 은어로 작성된 ‘암호 보고문’을 분석하고 있어 파장이 예상보다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1962년 생으로 올해 44세인 미국시민권자 장민호 씨의 본명은 ‘장석규’로 그는 1981년 서울 용산고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10월 휴학한 후 홀연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장 씨는 미국 명문 사립학교인 USC 랭귀지 스쿨을 수료하고 산타나 칼리지, 로스엔젤레스 시티 칼리지를 잇따라 수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UCLA를 다녔다는 얘기에서부터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를 다녔다, 미 해병대 출신으로 군복무를 마친 후 한국으로 들어와 성균관대에 입학한 뒤 82년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등 그와 관련된 구체적인 진술이나 신원, 미국에서의 생활 등은 명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 거주 당시인 1986년 장 씨가 한국일보 샌프란시스코 지사에서 사회부 기자로도 근무했던 사실이 드러나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이는 80년대 초중반 김한길 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한국일보 미주지사에서 근무했다는 점을 감안, 직장생활을 함께 한 동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이 때 인연으로 김한길 원내대표가 장 씨의 결혼식 주례를 서주기도 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후 캘리포니아 코스트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한 장 씨는 이곳에서 북한 대외연락부 소속인 김모 씨를 만나 1989년 처음 북한을 방문, 사상 및 모르스 통신교육 등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방북 직후 미국으로 돌아간 장 씨는 미 육군에 입대한 뒤, 주한미군에 지원해 한국에 돌아왔고 1993년까지 대전의 캠프 에임스, 용산의 제18 의무단에서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며 물류 담당 및 통역관으로 활동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군대를 제대한 1993년, 장 씨는 두 번째로 방북해 북한 조선노동당에 입당하고 충성을 서약, 본격적으로 국내 정세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 씨가 한국 정부기관에 본격적으로 취업한 것은 1994년. 당시 그는 통상산업부 산하 한국정보기술연구원으로 취업했었다. 이곳에서 국제협력과장으로 근무하던 장 씨는 중국 산업 연수단의 산업시찰 및 UC버클리 대학과의 해외연수과정 등을 진행하며 신기술에 대한 해외교류를 담당했다.

이후 연구원 경력을 인정받아 1995년부터 3년간 LG-EDS의 마케팅 담당자로 근무한 장 씨는 1998년 정보통신부 산하 해외 소프트웨어지원센터 마케팅 매니저로 근무, 사실상 1998년부터 불었던 한국 IT 기업 벤처신화의 핵심부서에 근무하면서 정부 정책 등을 접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 씨는 이 기간 두 차례(1998년, 1999년) 북한을 방문했고, 1999년 귀국해 본격적으로 일심회 조직원을 물색하는데 주력했다.

일심회 주축은 ‘삼민투’ 출신

공안당국은 장 씨가 80년대 초반 학생운동 조직인 ‘삼민투(민족통일, 민주쟁취, 민중해방 투쟁위원회)’ 멤버들과 80년대 중후반 조직인 전대협 출신을 주축으로 일심회를 구성해 각종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현재 두 조직을 포함, 줄잡아 100여명의 운동권 출신이 청와대와 국회, 주요 정당에 포진해 있는 점을 감안하면 진보 세력 진영에 ‘빨간 불’이 켜진 셈이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장 씨는 학연과 지연, 사업상 관계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접근, ‘탐색-제안-포섭’ 3단계를 거쳐 길게는 1∼2년 동안 검증한 뒤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는 식으로 조직원을 구축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국정원이 일심회 조직원으로 분류한 이정훈 전 민주노동당 중앙위원은 1985년 고려대 총학생회 삼민투위원장을 지내면서 미 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에 적극 참여했다.

이정훈 씨를 장 씨에게 소개시켜준 것으로 알려진 허인회 전 열린우리당 전국청년위원장 또한 85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 전국 삼민투 위원장을 맡았다. 이 씨(사학과)와 허 씨(정치외교학과)는 고려대 82학번 동기며 둘 다 미 문화원 사건으로 구속된 바 있다.

이러한 경위를 포착한 공안당국은 장 씨가 고교동문인 허 씨를 통해 연세대 총학생회 학술부장 출신인 손 씨와 이 씨를 소개받은 뒤, 다시 손 씨를 통해 전대협 사무국장 출신의 최기영 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을 포섭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일심회 연루 의혹을 받고있는 환경단체 간부 김모 씨는 83학번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대학 재학 때부터 이진강 씨와 친분을 쌓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박지영 기자
pjy0925@naver.com


암호 들여다보니… 비밀유지 위해 사용
민노당-민회사, 한나라당-나회사, 우리당-우회사
철저히 은어 사용, 조직원끼리 ‘사장’ 호칭 관심

지난 2001년 10월까지 모스 부호를 이용해 교신을 해왔던 북한 공작원들이 최근 이메일을 통해 교신을 주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조직원들끼리 지령과 보고문을 주고받을 때에는 철저히 ‘은어’를 사용, 당국에 발각되더라도 내용을 비밀로 유지할 수 있도록 신경을 곤두세웠던 것으로 알려진다.

공안당국이 장민호 씨에게서 압수한 물품 가운데는 그가 암호 해독용으로 사용했던 톨스토이의 명작 ‘부활’이 포함돼 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1993년 두 번째로 북한에 간 장 씨는 당시 단파방송을 통해 내려오는 지령을 해독하는 방법을 배웠고, 단파라디오 등 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공작금 1만달러도 받았다.

이후 장 씨는 매월 10일과 25일 오전 1시에 단파라디오를 통해 지령을 받은 뒤 이를 숫자로 바꾸고 부활의 몇 쪽, 몇째 줄에 있는 단어인지 찾아서 조합하는 방식으로 암호를 해독한 것으로 알려진다.

국가정보원이 입수한 일심회 보고문건에 따르면 이들은 민주노동당을 ‘민회사’, 열린우리당을 ‘우회사’, 한나라당을 ‘나회사’로 각각 표기했다.

조직원 장민호 씨와 손정목 씨, 이진강 씨 등이 직접 사업체를 운영하거나 회사원으로 재직 중이라는 점 때문에 ‘회사’라는 이름을 쓰면 외부의 의심을 덜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또 서로를 부를 때도 ‘최사장’(최기영 민노당 사무부총장), ‘장사장’(장민호 씨) 등의 호칭을 사용했으며, 좌파세력은 ‘좌회사’, 통일전선체는 ‘통회사’ 등으로 불렀다. 특히 이들은 북한 조선노동당을 ‘우리당’으로 불러 충격을 더했다.

또한 일심회 회원들은 새 회원을 포섭할 때 본명이 아닌 가명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2003년 손정목 씨를 통해 포섭된 것으로 알려진 최기영 전 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은 최근까지도 손 씨의 본명을 몰랐다고 한다.

손 씨와 한 달에 한 번 정도 술자리를 할 만큼 친분이 있었지만 손 씨는 본명이 아닌 ‘손낙호’ 또는 ‘손낙고’란 이름을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공안당국은 의례적인 만남에서 손 씨가 굳이 가명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는 점, 한 달에 한번씩 만나 술을 마시는 사이인데도 어느 대학 출신인지도 모르는 점에서 최 씨의 주장에 신빙성이 다소 떨어진다고 보고, 정확히 경위를 파악중이다.
<영>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