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신창원 노렸지만, 결과는 초라


 

병원서 주민번호 요구하자 ‘내가 이낙성이다’ 자백
중국집서 허드렛일하며 숨어지내, ‘정종철’ 가명사용

신창원(39·2년 6개월) 씨에 이은 두 번째 장기 탈주범으로 경찰의 속을 썩였던 이낙성(42) 씨가 지난달 31일 오후 3시 10분께 서울 성동구 성수2가 3동 영동병원 근처에서 검거됐다. 도피생활 1년 6개월 24일만에 붙잡힌 셈이다. 그동안 이 씨는 서울로 올라와 감호소 동료를 만나 30만원을 빌리고 북창동 인력시장을 통해 강남·서초·마포·구리·부천 등지에서 활개치고 다니며 ‘직장생활’까지 하는 등 수도권 일대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해 4월 7일 청송감호소 수감 도중 치질 수술을 위해 병원 치료를 받다가 탈주하면서 시작된 이씨의 도피행각을 뒤쫓았다.

병원의 신고로 붙잡혀

탈주 1년 6개월 24일 만인 지난달 31일 붙잡힌 탈주범 이낙성 씨의 검거 과정은 그동안 그가 경찰의 오랜 추적에도 좀처럼 덜미를 잡히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 씨는 검거 20여분 전인 이날 오후 2시 50분께 서울 성동구 성수2가 3동 영동대교 북단 인근의 영동병원에 제 발로 들어와 치료를 요청했다. 도착 당시 이 씨는 윗니 4∼5개가 부러져 있었고, 입술 아랫부분이 6cm 가량 가로로 찢어져 말을 못할 지경이었으며,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이 씨는 전날 서울 서대문구 신촌 인근의 한 포장마차에서 혼자 소주 6병 가량을 마신 뒤 택시를 타고 숙소인 성동구 성수동 여관으로 돌아가다 엉뚱한 근처 건물 2층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상처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측에 따르면 이 씨는 외래진료 접수과정에서 병원 직원이 인적사항을 묻자 ‘장상철’이란 이름을 댔다가 직원이 주민등록번호를 물어오자 “머리를 다쳐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뜸을 들였다. 이에 병원 직원이 “인적사항을 모르면 치료를 할 수 없다”며 대답을 촉구했고, 그때서야 이 씨는 “나는 이낙성이다. 감호소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됐는데 경찰이 잘 알 것”이라고 스스로 신원을 밝힌 뒤 병원 문을 나섰다.

이 씨가 병원 문을 나선 직후인 오후 2시 55분경 이 병원 원무과 직원은 성동경찰서 서울숲지구대로 “자신을 이낙성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신고했고, 신고를 접수받은 경찰은 현장에서 제일 가까웠던 이 경찰서 소속 유진기 경사에게 병원으로 출동할 것을 명했다.

유 경사가 병원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가 조금 안된 시각. 하지만 이 씨는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병원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이 씨를 발견하지 못한 유 경사는 상황을 경찰 상황실에 보고하려던 찰라 한 시민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유 경사가 이 씨의 뒤로 다가가 팔짱을 끼며 “이낙성 씨”라고 외치자 이 씨는 “네”라고 짧게 대답했고 “주민등록번호를 불러봐라”는 유 경사의 요구에 천천히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대 이 씨가 탈주범임이 드러났다.

현장에서 이 씨를 검거한 서울 성동경찰서 유진기 경사는 “이 씨가 검거과정에서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지시를 따랐지만 자수의사를 밝히진 않았다”면서 “검거 당시 이 씨는 진회색 바탕에 줄무늬가 있는 상의에 검은색 바지의 평범한 모습으로 탈주 전보다 장발이었으며 몹시 수척해 보였다”고 전했다.

이 씨는 경찰조사에서 스스로 신원을 밝힌 이유에 대해 “도주생활에 지쳤고 치료를 받고싶어서 신분을 밝혔다. 쫓기는 생활이 힘들어 자수하려 했다. 죄송하고 괴롭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이 씨는 상처 치료를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 ‘장상철’이란 가명을 썼으나 평소에는 자신이 즐겨읽던 무협소설의 주인공인 ‘정종철’이란 이름을 써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집서 일하며 여관 전전

좀처럼 행적이 나타나지 않아 외국으로 도망갔다거나 숨졌다는 등 근거 없는 소문이 무성했던 이낙성 씨가 실제로는 서울 한복판에서 생활해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강도 등 혐의로 2001년 말 체포돼 징역 3년에 보호감호 7년을 선고받은 이 씨는 2004년 1월말부터 옛 청송감호소(현 청송 제3교도소)에서 보호감호를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4월 6일 치질수술을 위해 경북 안동의 한 병원에 입원한 이 씨는 이튿날인 7일 새벽 1시께 감시 소홀을 틈타 병원복 차림에 교도관이 벗어둔 점퍼를 걸친 채 그대로 도주했다.

탈주 직후 이 씨는 택시를 잡아타고 곧장 서울로 올라와 교도소 동기인 엄모(39) 씨를 만났다. 엄 씨에게서 30만원과 옷을 건네 받은 이 씨는 북창동 인력시장을 통해 일자리를 수소문, 구리의 한 중국음식점을 소개받아 설거지 일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결과 이 씨는 신분 노출을 우려해 배달 일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7월 초부터 한달 동안 이 씨를 고용했던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H중국음식점 업주인 오모(45) 씨는 “이낙성 얼굴 자체를 몰랐던데다 경찰 전단지에 나온 사진과도 달라 보였다”며 “지금 언론에 나온 이 씨를 보니까 살이 많이 쪘다. 당시 이 씨는 많이 말랐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오 씨는 이어 “말이 좀 어눌했지만 설거지와 면 뽑는 일 등을 잘 했다”며 “평소 농담도 잘하고 성격도 원만했던 그가 탈주범이었다는 보도를 접하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 씨는 한 달에 120만원 정도 벌었으며, 긴 도주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술을 자주 마셨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씨가 중국음식점을 은신처로 택한 이유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그가 교도소에 가지 전 중국음식점에서 일한 경력이 있어서인 듯하다”고 말했다.

구리와 마포의 중국음식점에서 5개월 간 일하다 그만 둔 이 씨는 이후로 서울 시청, 신촌 등지의 음식점에서 일용직으로 일해왔으며, 세인의 눈을 피해 음식점 인근 여인숙이나 여관을 전전하며 은신해왔다. 하루 혹은 며칠 정도 일당 3만원 가량을 받고 일하다가 돈이 모이면 일을 쉬고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일을 하는 생활을 검거 직전까지 계속해 왔던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 씨가 신분을 숨기고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하루 일하고 하루 돈을 받는 일당직으로 일해서 인적사항이 필요없었다”면서 “본명을 밝힐 필요가 없고 서류를 작성한 것도 아니어서 일자리를 비교적 쉽게 구했다”고 설명했다.

징역 7년 선고받을 듯

탈주범 이낙성 씨는 또 어떤 사법처리 수순을 밟게 될까.

보호감호를 받던 재소자 신분으로 탈주한 이 씨에게는 우선 도주죄가 적용되며 이 씨가 달아날 때 교도관의 지갑과 휴대전화가 들어있던 점퍼를 훔쳐 입었기 때문에 절도죄가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형법상 도주죄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절도죄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각각 규정돼 있다. 이 경우 형을 부과하는 방법 중 ‘가중주의’에 따라 경합범 처벌을 하면 징역 6년에 3년을 더해 최고 징역 9년이 선고될 수 있다.

그러나 형을 가중할 경우에도 ‘각 죄에 정한 형의 장기를 합산한 형기를 초과할 수 없다’는 단서가 있기 때문에 결국 징역 7년을 초과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지영 기자
pjy0925@naver.com


탈주범 이낙성씨 도주 및 검거일지

▲2005.4.6 - 청송감호소 수감 중 치질 수술을 받기 위해 경북 안동의 한 병원에 입원.
▲2005.4.7 - 오전 1시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환자복 차림에 교도관 점퍼 훔쳐 입고 병원서 탈주.
▲2005.4.7 - 택시를 타고 상경해 오전 4시 20분께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앞에서 교도소 동기 엄모(39) 씨를 만나 옷을 갈아입고 도피자금 8만원을 건네 받음.
▲2005.4.7 - 오전 5시 30분께 서울지하철 2호선 사당역 근처로 이동한 뒤 잠적.
▲2005.4.9 - 이 씨의 교도소 동기 김모(45) 씨, 강화도에 거주하는 조모(49) 씨에게 ‘전화 세 통을 해달라’고 요청. ‘인천 지역번호로 부재중 전화 3통이 걸려왔다’는 김 씨의 신고로 경찰은 대규모 경력을 투입해 검문검색을 벌였으나 사흘만에 허위 제보로 밝혀짐.
▲2005.4.12 - 법무부, 이 씨 탈주와 관련해 지휘 책임을 물어 청송감호소 보안 과장 직위해제.
▲2005.4.13 - 이 씨의 탈주를 돕고 도피자금을
건넨 혐의(범인은닉)로 교도소 동기 엄 씨 구속.
▲2006.10.31 - 오후 3시 10분께 서울 성동구 영동병원에 치과 치료를 받으러 내원했다 검거.
<영>


일문일답 박현 서울영동병원 대리
“윗니와 턱 뼈 다 부러졌다”

다음은 청송감호소 탈주범 이낙성 씨를 경찰에 신고한 서울영동병원 원무과 대리 박현(34) 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어떻게 신고하게 됐나.
▲(이낙성 씨의) 차트를 만들기 위해 인적사항을 알려달라고 하자 이 씨가 처음엔 ‘정종철’이라며 주민번호를 종이에 적었다. 이 씨가 치아와 턱을 다쳐 치과 치료가 필요한데 (영동병원엔) 치과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더욱이 이 씨 상태가 좋지 않아 보호자가 같이 다른 병원으로 이동해야 할 것 같아 보호자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아는 사람이 없다”면서 종이에 ‘경찰’이라고 적으며 경찰을 불러달라고 했다. 이 씨는 “괴롭다”면서 종이에 다시 ‘이낙성’과 ‘감호소’를 적으며 “감호소에서 나왔다고 하면 경찰이 올 거다”라고 해 가까운 파출소를 114에 문의했고 서울숲 지구대 번호를 알려줘 신고하게 됐다.

-언제 탈주범인지 알게 됐나.
▲처음엔 경황이 없어 탈주범인지 몰랐고 경찰에 신고한 뒤 원무과 여직원이 이 씨가 탈주범이라고 해서 알게 됐다.

-이 씨의 상태는 어땠나.
▲이 씨가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었고 성형외과 최시영(37) 과장이 이씨의 상태를 보기 위해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윗니와 턱이 다 부러져 말도 제대로 못해 말하는 것보다 글로 쓰는 게 더 빠를 정도였다. 턱 밑에 거즈를 많이 대고 있었는데 피는 이미 마른 상태였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옷은 검은 줄무늬 상의에 검은 양복바지 차림으로 일반인과 같았다.

-거즈를 대고 있었다고 했나.
▲이 씨 팔에 링거 주사를 맞은 흔적이 있어 응급실에 같이 있던 간호사가 “어느 병원에 있다 나왔냐”고 묻자 이씨가 건대병원에 있다가 오늘 아침에 물을 마시러 건대병원을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물을 많이 마신 뒤 공터에서 자다가 영동병원으로 왔다고 했다.

-이 씨가 병원을 나간 과정은.
▲이 씨가 응급실에 오늘 오후 2시 45분께 들어왔다가 경찰을 불러달라고 해 55분께 지구대에 신고했다. 다시 응급실에 들어오니 이씨가 물을 마신다며 응급실을 나가려고 해 만류했으나 뿌리치고 병원을 보통 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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