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잡힌 포르노 공급 대부


 

네티즌, 경찰 홈피에 ‘괴변’ 늘어놓으며 선처 호소
경찰 “네티즌들의 의식 없는 선처글 이해 어렵다”

포털사이트 게시판이 발칵 뒤집혔다. 지난 2004년부터 일본 포르노 동영상을 매일 20∼30개씩 올리며 네티즌들 사이에서 ‘김본좌’라는 가명으로 유명해진 김모(28) 씨가 지난 10월 18일 부산 사상경찰서에 불구속 입건된 것을 두고 네티즌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나라 IT 산업발전에서 기여(?)하는 등 ‘공로’가 많은 만큼 김본좌를 석방해 주자는 ‘옹호론’에서부터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어져 초고속인터넷망 사업자들이 그를 제거했다는 식의 ‘음모론’까지 쏟아졌다. 인터넷 화제로 떠오른 ‘김본좌’의 실체에 대해 긴급 추적했다.

일본 포르노물을 국내에 공급해 온 일명 ‘김본좌’가 지난주부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물론 ‘본좌’는 본래 이름이 아니다. 일부 네티즌들이 그의 ‘업적(?)’을 높이 사 익살맞게 붙여 준 별칭이다.

본좌란, 원래 무협소설에서 쓰연던 말로 ‘근본 본, 자리 좌’자를 써 자신을 높이거나 ‘최고의 나’를 표현할 때 사용한 단어였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상으로 옮겨지면서 한 분야의 ‘권위자’나 ‘대가’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인터넷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것은 그가 경찰에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다. 그의 체포와 관련된 기사는 순식간에 포털사이트의 가장 많이 읽은 기사에 올랐고, 그의 별칭은 인기검색 순위 1위를 차지했다.

김본좌, 넌 누구냐

평범한 직장에 다니던 김모(28·인천 부평구) 씨는 2년 전 별다른 생각 없이 모 인터넷 파일공유 사이트에 감상평이 담긴 몇 편의 동영상을 올렸고, 그 일로 인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의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웹사이트 업체인 T사 업주에까지 흘러갔고, 지난 2004년 3월 T사로부터 사업 제의를 받게됐다. 당시 T사는 김 씨에게 “회원이 동영상 한 편을 다운받을 때마다 10%의 수익을 떼어주겠다”고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마침 부모님이 다리를 다쳐 일을 못하는 상황이 되자 김 씨는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T사의 인터넷사이트 내에 ‘kimcc’라는 클럽을 개설, 일본에서 제작된 포르노물을 본격적으로 퍼 나르기 시작했다.

일본 현지에서 업데이트 된 다음날 그는 어김없이 자신의 카페에 자세한 설명과 함께 동영상을 올렸고, 김 씨의 동영상은 조회수 1만여 건을 훌쩍 넘기며 ‘색티즌(색을 밝히는 네티즌)’ 사이에서 이름을 날렸다.

최신 일본 음란물을 꾸준히 제공해온 그는 색티즌들로부터 거인이나 최고수를 뜻하는 ‘김본좌’로 불리며 인지도를 굳혔다.

김 씨의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 지난해 10월 급기야 웹하드 S사이트에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스카우트하기에 이르렀다.

김 씨가 S사이트에 스카우트 됐다는 소문은 금새 동종업계에까지 들어갔다.
당시 업계에서는 “김 씨를 어떻게 스카우트했는지 S사이트가 대단한 업체”라는 얘기가 돌 정도로 김 씨의 명성은 대단했다. S사이트가 김 씨에게 제시한 계약 조건은 지분율 50대 50으로 업계 최고였다.

그러나 김 씨는 S사이트로부터 이익금을 제대로 입금받지 못해 결국 지난 8월 10일부터 S사이트에 음란물을 올리는 것을 그만뒀다.

경찰에 따르면 2년 6개월 동안 김 씨가 올린 음란동영상은 2만여개. 전송된 양만 100테라(1테라는 약 1조)바이트에 이른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20∼30여개의 음란물을 퍼 나른 셈이다.

김 씨 또한 경찰조서를 통해 “거의 매일 새벽에 7시간에서 10시간 가량 음란동영상 20∼30편을 꾸준히 올렸다”며 “최근 2년간 최신 음란물을 올려달라는 회원들의 성화에 하루도 제대로 쉬어본 날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그동안 김 씨가 벌어들인 돈은 5,000만원 상당에 불과했다. 클럽 회원 3만1,000여명이 동영상을 다운받을 때마다 적립금 10%가 쌓이고 일정비용이 차면 웹사이트 업체로부터 수고비를 받는 형식으로, 대부분의 수익은 웹사이트 업체가 챙겼다.

경찰 관계자는 “동영상 한 편을 다운받는데 드는 비용은 300원으로 그 중 10%에 해당하는 30원을 김본좌가 갖고, 나머지 270원은 업체가 가져가는 식의 수익분배를 갖추고 있었다”며 “김 씨의 음란물로 P2P 업체는 5억원의 불법 이익을 얻었지만 처벌은 1,000만원 벌금에 그쳤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김 씨의 아버지가 사고로 직장을 다니지 못하게 되고 할머니도 눈 수술을 해야하는 등 돈이 필요해 음란물을 올리기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그는 조서를 통해 호기심에 포르노물을 다른 네티즌과 공유하려다 이 지경까지 온 것 같다며 후회했다”고 김 씨의 심경을 전했다.

한편 부산 사상경찰서 지능수사팀은 지난 10월 11일 김 씨를 정보통신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한 뒤 다음날인 12일 구속영장을 신청다. 하지만 부산지방법원은 김 씨가 도주 우려가 없어 영장을 기각했다.

네티즌 빗나간 옹호

지난 10월 18일 김 씨의 체포소식을 전해지자 네티즌들은 그를 옹호하는 글을 달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포르노계의 대부 김본좌 불구속 입건”이라는 인터넷 뉴스 속보에는 네티즌들의 안타까운 심경이 담긴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네티즌들은 “김본좌는 2년 반 동안 한국이 IT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기여했다”는 황당한 논리를 펼치며, 말머리에 근조를 뜻하는 ‘▶◀’ 표시를 달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받기만 해서 미안해” 등의 릴레이 댓글 운동을 펼쳤다.

또한 인터넷에는 그와 관련된 패러디 글들이 난무했다.
“김본좌께서 경찰차에 오르시며 ‘너희들 중에 야동(야한동영상) 한 편 없는 자 나에게 돌을 던지라’하시니 경찰도, 형사도, 구경하던 동네 주민들도 고개만 숙일 뿐 말이 없더라. - 본좌복음 연행편 32절 9장 -”

“조사실에 계시던 김본좌께 담당형사가 물을 건네매 ‘목이 탈것이니 드시오’하니, 본좌께서는 ‘아니오. 빨리 수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업로드를 마쳐야 하오. 나를 기다리는 수십만명의 사람이 있소’하시니 담당형사와 조사관들이 이내 숙연해지며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더라. - 본좌복음 수사편 25절 3장 -”

성경을 패러디한 이 같은 글은 ‘김본좌 어록’과 ‘김본좌 복음’으로 불리며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받아 삽시간에 인기검색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심지어 일부 네티즌들은 김본좌를 선구자로 받들며 “야동계의 슈바이처이자 콜럼버스이며 문익점”이라고 칭송하기도 해 사태의 심각성을 더했다.

이러한 네티즌들의 반응에 대해 전문가들은 “익명의 공간에서 이뤄지는 무책임한 댓글놀이가 자칫 비뚤어진 영웅주의로 이어져 제2, 제3의 ‘김본좌’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지영 기자 pjy092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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