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길어 나무서 떨어진 다람쥐

감호소 출소 후, 부녀자 홀로 있는 부잣집 골라 절도·성폭행
피해물품, 수천만원짜리 골프채·산악자전거·귀금속 등 망라

여자 혼자 있는 강남 고급 전원주택만을 골라 반년간 수십여 차례에 걸쳐 강도·강간을 일삼아 온 일명 ‘강남 산다람쥐’가 마침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등산로 인근의 고급 빌라를 대상으로 여성들이 혼자 있는 낮 시간대를 골라 무고한 부녀자를 농락하고, 수억원 가량의 금품을 훔친 45살 조모(무직) 씨를 특수강도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경찰에 따르면 전과 7범인 조 씨는 지난 6월부터 최근까지 모두 48차례에 걸쳐 5명의 여성을 강간하고, 총 1억2,4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 신출귀몰한 조 씨의 범죄행각에 대해 낱낱이 파헤쳐 봤다.

청계산·대모산과 인접한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경기 성남 수정구의 고급 전원주택 단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인사들이 몰려 사는 이곳 주택가에 지난해 봄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절도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같은 기간 청계산 자락을 따라 위치한 다른 마을에서도 하루걸러 한집 꼴로 금품이 털렸으며, 심지어 도둑과 맞닥드린 몇몇 부녀자는 심한 구타와 함께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이틀에 한번꼴로 범행

강남 일대 부녀자를 공포로 몰아넣은 소문 속 주인공은 45살 조 씨.

동종 전과만도 7개나 갖고 있는 그는 특수강도 등의 혐의로 청송보호감호소에서 복역한 후 지난해 1월 15일 만기 출소했다. 하지만 그의 고질병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출소한 지 일년도 채 안 되 또 다시 범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만 것이다.

지난 5월 19일 오후 4시 30분.
청계산 등산로 자락을 서성이며 범행 대상을 물색 중이던 조 씨는 강남구 율현동 홍모(48·여) 씨 집 베란다 창문이 반쯤 열려 있는 것을 확인, 침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미리 준비해간 길이 30cm의 일자형 드라이버로 안방서 자고 있던 홍 씨를 위협해 성폭행한 뒤 그 곳에 있던 휴대전화 충전기 전선으로 반항하는 피해자의 양손을 묶고 현금과 패물 등 332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

조 씨는 또 같은 날 낮 12시 40분,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 A(20·여) 씨의 집에 침입해 2층에 거주하던 A 씨를 드라이버로 위협,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의 허리끈을 빼내어 움직이지 못하도록 양손을 묶은 뒤 성폭행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러한 범행을 저지른 뒤에도 그는 피해 여성의 지갑에서 현금 10만원을 빼 유유히 달아나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경찰 조사결과 조 씨는 범행 도구로 길이 30㎝의 일자형 드라이버를 즐겨썼으며, 지금까지 10명의 여성이 그에게 성폭행을 당하거나 상해를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 씨가 지난 6월부터 최근까지 벌인 범죄 행각은 ▲강도강간 5회 ▲강도상해 5회 ▲절도 38회 등 모두 48차례로, 이는 반년간 이틀에 한번 꼴로 범행을 저질러 온 셈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물적 피해만도 ▲금으로 만든 골프공 ▲시가 500만원 상당의 산악용 자전거 2대 ▲명품 귀금속 8점 ▲외국 돈다발 등 총 1억2,400만원을 호가했다.

조 씨의 범행 대상에는 유명 원로 국악인과 모 기업 부회장, 명문대 교수 등 유력 인사들도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베테랑 털이범 조 씨

지난 봄부터 서울 강남의 대모산과 청계산 등 등산로 인근의 고급 빌라를 대상으로 여자들이 혼자 있는 낮 시간대를 골라 강도·강간사건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자 서울 수서경찰서는 전담반까지 편성해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그 때마다 조 씨는 수사망을 요리조리 따돌리며 교묘히 빠져나갔고, 이에 전담팀은 조 씨를 가리켜 ‘산다람쥐’란 별칭을 쓰게 됐다.

한편 경찰은 피해자 진술을 통해 ‘범인은 등산객으로 가장하기 위해 등산조끼를 착용하고 있으며, 범행시 일자형 드라이버를 사용한다’는 점과 계획된 범행이라는 점을 들어 ‘전과를 가진 동일범’의 소행으로 판단, 수사망을 좁혀가고 있었다.

서울 수서경찰서 강력3팀 관계자는 조 씨의 범행 수법에 대해 “출소 후 경기도 이천 형의 집에서 살았던 조 씨는 범행시 경기도 성남까지만 차량을 이용한 뒤 이후부터는 등산로를 따라 움직이며 범행 상대를 물색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범행할 집이 생긴 뒤로는 산에 숨어들어 저택의 동향을 감시, 가족들과 자녀들이 집을 떠난 점심 무렵이 돼서야 가정부를 위협해 금품을 털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찰 관계자는 “산 밑 전원주택이 대부분 개인주택으로 침입이 수월하다는 점과 자연경관을 신경쓰며 창살을 설치하지 않는다는 점, 낮시간에는 방범시스템을 풀어놓는다는 점 등을 미리 알고 경비가 소홀한 틈을 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본다”면서 조 씨의 계획된 범행에 혀를 내둘렀다.

경찰 관계자는 또 “조 씨의 집을 수색한 결과 현금 415만원과 산악용 자전거 2대 귀금속 등 8점, 범행도구 3점 등을 압수했으며, 강취한 현금 대부분은 윷놀이 도박판 등에서 도박자금으로 탕진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수서경찰서 강력3팀은 부유층 단지 특성상 신고되지 않은 피해도 많을 것으로 보고 현재 여죄를 추궁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pjy0925@naver.com


두 번 울린 성폭력 ‘선정보도’

‘빨간모자’ ‘○○다람쥐’ ‘△△발바리’…. 성폭력 사건 보도에 자주 나타나는 가해자의 ‘별칭’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이하 민우회)는 올 1월부터 7월까지 성폭력 관련 기사 전체를 모니터한 결과 “우리나라 신문들은 성폭력 사건 보도에서 공공성보다 선정성이 도드라진다”고 지적하며 80여건의 문제적 보도실태를 모델로 제시했다.

민우회가 제시한 보도내용을 살펴보면 ▲발바리 세포가 빠르게 분열하고 있다 ▲발바리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서울 발바리도 잡아라 등 모든 신문이 ‘발바리’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런 경향은 사회면 가십란에서 자주 발견됐다.

흥미 본위 속칭 남발

민우회는 이러한 언론보도 실태에 대해 “범죄의 심각성을 희석하고 희화화해 독자의 호기심과 선정적 느낌을 자극하고 있다”며 “심지어 피해자에게 명백한 성폭력인 사건을 연인사이의 연애관계, 짝사랑이 빚은 결과 등으로 묘사하는 일도 잦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 언론사는 “성인이 되면 (피해자와) 결혼하려 했다”는 가해자의 진술을 액면 그대로 옮겨 문제를 낳기도 했다.

민우회는 또 “‘부모가 이혼해 결손가정에서 생활해온 12세 소녀가 가출했다가 끝내 성폭력 피해자로 전락했다’는 보도는 성폭력 피해가 가정 환경 때문에 벌어진 것처럼 왜곡됐다”며 성폭력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보도내용에 대해 강력히 비판했다. 성폭력으로 피해를 보았음에도 ‘타락’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전락’이란 단어를 사용해 피해자가 나쁘게 묘사되었다는 것.

민우회 활동가 이선미 씨는 “이러한 언론보도로 인해 성폭력은 ‘딸들과 딸 가진 부모가 조심해야 하는 범죄’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됐다”면서 “이는 성폭력 예방보다 성폭력에 대한 그릇된 사회 통념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꼬집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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