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작업


 

외제차 타고 일정지역 맴돌다 수줍은 듯 ‘접근’
작전상 ‘즉석’ 금물, 일주일 뒤 ‘원나잇 스탠드’

‘야타족’이 급성장했던 시점과 비슷하게 ‘헌팅족’이 호황을 누렸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채팅에 밀려 최근엔 자취를 감춘 듯 했다. 그러나 일부 ‘헌팅족’들이 강남의 압구정동, 신촌 대학가, 대학로 등지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 이목이 집중된다. 실제로 만남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채팅보다는 현실에서 바로 파트너를 만들 수 있는 헌팅을 선택한 셈이다. 자정을 훨씬 넘긴 서울 강남 압구정동의 풍경은 ‘광란의 밤’을 보낸 술 취한 여성들과 그들을 타깃으로 한 ‘헌팅족’들의 차들로 빼곡했다. 지난 10월 21일 늦은 저녁, ‘헌팅의 대명소’로 거듭나고 있는 압구정동 밤거리를 둘러봤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 ‘헌팅’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미팅’ ‘소개팅’ ‘반팅’과 비슷한 만남의 한 종류로 인식됐던 헌팅은 길거리 등에서 파트너를 사냥한다는 장난스런 표현으로, ‘즉석 만남’의 한 종류이다.

과거 대학로·신촌·압구정동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에서든지 이뤄졌던 헌팅은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오프라인 상에서는 급격히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헌팅족’들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대략 10여 년 전. 소위 ‘잘 나간다’는 이들의 주된 놀이 무대가 홍대 주변에서 압구정동으로 옮겨가던 즈음이었다. 외제차에 명품 의상으로 무장한 이들을 두고 언론들은 ‘야타족’ ‘오렌지족’ 등의 이름을 붙여 일제히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들은 사회적 비난을 한 몸에 받았으나 어느덧 사람들의 기억 뒤로 잊혀져 갔다.

그러나 자취를 감춘 듯 했던 헌팅이 최근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어 이목이 집중된다.
10여년이 지난 요즘, ‘헌팅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압구정동에 나타난 것. 지인의 소개로 알게된 ‘헌팅족’ 서동인(가명·남·28) 씨에게 취재 협조를 부탁했다.

압구정동 헌팅족 서 씨

지난 10월 21일 밤 9시경에 도착한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는 수많은 행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인근 편의점 앞에서 만난 서 씨는 “10분 가량을 주기로 계속 주변을 맴도는 외제 차량이나 편의점 앞에 가만히 차를 세워 두는 이들이 바로 사냥감을 기다리는 헌팅족들”이라며 “하지만 괜히 말을 걸진 말라”고 주의를 줬다. 그 이유에 대해 서 씨는 “공들여 작업하는 선수(헌팅족)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아니나 다를까 현장에 도착한 취재팀은 편의점 앞에 세워진 BMW 차량 한 대를 발견했다. 그리고 주변을 오가는 외제차를 유심히 살펴보려 했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아 정확히 분간하는 게 힘들었다.

20여분의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그 BMW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움직인 거리는 채 10여m뿐. 조수석에서 내린 한 20대 남성이 그 옆 인도를 걸어가는 여성 두 명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놀라는 눈치를 보이던 두 여성은 금세 이 남성의 얘기에 웃음을 보이며 질문에 대답을 했다. 그렇게 5분 가량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이 남성은 자신의 휴대폰에 여성들의 연락처를 저장하는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여성들이 차에 함께 타지 않을 것으로 보아 이들의 ‘사냥’은 실패로 끝난 것으로 보였다. 여성들은 그 자리를 떠났고, 남자도 BMW 차량에 올라탄 뒤 유유히 사라졌다.

다시 주변 정황을 지켜보며 기다리기를 15분, 취재팀은 방금 전에 사냥에 나섰던 BMW가 다시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이들이 바로 ‘헌팅족’임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약속 시간인 10시가 조금 지나서 서 씨에게 연락이 왔다. 로데오 거리를 따라 계속 들어오면 유흥가 중심에 위치한 연예인 포장마차(이하 포차)M 앞에서 만나자는 전화였다.

그곳에 도착하니 서 씨가 자신의 벤츠 승용차 앞에 그를 소개해 준 취재원과 같이 서 있었다. 서 씨와 인사를 나누기가 바쁘게 우리는 벤츠 승용차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서 씨는 헌팅족들의 이동경로에 대해 “우리가 만난 M포차나 S갈비집을 중심으로 계속 주변을 돌며 사냥감을 찾는다”면서 “크게 씨네시티 극장부터 로데오 메인거리 입구까지”라고 설명했다. 씨네시티 극장 옆길로 들어가 M포차와 S갈비집을 지나 C아파트 옆으로 해서 로데오 메인거리로 나온다는 것.

이어 서 씨는 “헌팅족들의 주된 대기 장소는 BMW가 서 있던 편의점과 인근의 또 다른 편의점 앞”이라면서 “사냥 루트를 돌아다니거나 대기 지점에서 주변을 오가는 여성들을 지켜보며 사냥감을 찾는 게 그들의 일과”라고 덧붙였다.

번호따고 일주일 뒤 ‘섞어’

이들의 작업 방식 역시 예전 ‘야타족’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들이 길가를 걷는 여성들에게 다가가 얻어내는 최고의 성과는 ‘연락처’가 전부였다. BMW를 타고 사냥에 나섰던 남자들이 실패했다고 생각한 것은 취재진의 판단착오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 서 씨는 “보통 1주일 전쯤에 사냥한 여성과 밤 11시나 12시경에 만나기로 약속을 정한 뒤, 2시간 가량 일찍 나와서 다음 사냥에 돌입한다”며 “만나자 마자 술을 마시자고 하면 실패 확률이 크기 때문에 첫 만남에서는 연락처 정도만 받아내고 며칠 동안 전화상으로 친분을 쌓은 뒤 만날 약속을 잡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약속을 밤 11시나 12시 정도로 늦게 잡는 이유는 상대방의 의사를 타진하기 위해서다. 적절한 핑계로 약속 시간을 늦추자고 부탁하면 응하는 여성이 의외로 상당수라는 것이 서 씨의 전언이다. 또한 그는 만약 그 시간에 나오겠다고 하는 여성은 대부분 ‘그날은 집에 안 들어간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고 해서 나중에 다시 연락을 하거나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만남 자체가 신중하거나 의미있는 만남이 아니었기 때문에 또다시 연락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

이들에게는 이미 하루동안 같이 보낸 사람보다는 새롭게 만날 또 다른 누군가와의 만남에 대한 기대가 더 크게 작용하는 듯 했다.

여성과 하룻밤으루 즐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헌팅족의 기본 준비 자세’라는 게 서씨의 강조 포인트다.

헌팅족의 기본인 차량에 대해 그는 “외제차 세단이 좋긴 하지만 국내차의 경우 최소한 그랜저 수준은 되야 한다”며 “예상외로 스포츠카나 SUV 계열 차량은 여자들에게 잘 안 먹힌다”고 살짝 귀띔했다. 특히 작고 귀여운 유럽형 모델 차량을 여성들이 좋아할 것 같지만 이 역시 ‘사냥’에는 유용하지 못하다고 한다.

의상 또한 절대 화려해서는 안 된다. 멋을 부릴 경우 선수임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단정하고 깔끔해 보이는 수준이 적당하다고. 상황을 곁들여 설명하자면 ‘부근에 살고 있는데 잠시 일이 있어 방금 집에서 나온 듯 한 옷차림’이 가장 안성맞춤이다.

대화 내용 역시 단조롭다. 물론 주된 내용은 ‘친구가 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집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므로 연락처라도 알려주면 고맙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대부분 연락처를 알려준다는 게 서 씨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서 씨는 “최대한 수줍은 듯 접근해서 편하게 말을 붙이면 연락처를 알려준다”면서 “당장 술을 마시러 가자는 게 아니라 별 부담감 없이 연락처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락처를 받았다면 3일 정도 매일 전화를 걸어 친근감을 쌓는 게 중요하다.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인 뒤 만나자는 약속을 잡는 데 약속 시간은 반드시 11시나 12시경으로 정해야 한다. 이에 응할 경우 별 무리 없이 그 날 ‘사냥’은 성공한 것이다.

일단 약속이 정해지면 99%는 술자리를 같이 하게된다고 한다. 처음 만난 사람끼리 금방 친해지기 위해선 술자리 만한 게 없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일단 술을 같이 마시다보면 공통된 얘기거리도 생기고 이야기도 쉽게 나온다고 한다.

서 씨는 “약속이 잡힌 날 두 시간 가량 일찍 나와서 다음 사냥 대상의 연락처를 따낸 뒤 약속 장소로 향한다”며 “1차는 주로 소주를 마시고 2차로 맥주를 한 잔 마시러 가거나 노래방을 가는 데 보통 이 정도 수준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것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고수부지로 GO GO!

서 씨의 말대로 순순히 이에 응하는 여성도 있겠지만 쉽게 틈을 보이지 않는 여성도 있다. 이에 대한 최후의 수단으로 그는 ‘한강 둔치’를 꼽았다.

서 씨는 “술도 깰 겸 바람 좀 쐬러 가자고 한 뒤 한강 고수부지로 향한다”며 “찬바람을 맞으며 잠깐 대화를 나눈 뒤 차 안으로 들어오면 그 온기에 대부분 잠이 든다”고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차가운 데 있다가 따스한 차안으로 들어오면 술기운이 확 오르기 마련이라는 것.

그는 이어 “그런 상태에서 따뜻한 데 가서 쉬었다 가자고 하면 대부분 OK한다”며 “그 상황에서도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아직 그런 경험은 없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서 씨는 두 시간 가량 압구정동을 돌아다니며 실제 사냥중인 것으로 보이는 광경을 지목해 알려주었다. 그도 약속 시간 12시가 가까워지자 사냥해둔 여성을 만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서 씨는 중견 기업체에 근무중인 회사원이었다. 다만 사주가 부모라는 점이 조금 특이할 뿐. 대부분의 헌팅족은 이런 부유층 자제들로, 예전 ‘야타족’이나 ‘오렌지족’의 계보를 잇고 있다.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졌던 헌팅. 이제 과거보다 그 규모는 현저하게 줄었지만 아직도 이러한 만남을 기다리고 즐기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쉽게 만나고 쉽게 즐기려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것. 이들을 잘못했다고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시대 젊은이들이 이러한 만남을 즐기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봄직한 일이다.
마이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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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보고 뽕따는 ‘투잡스 헌팅족’
투잡스 헌팅족의 24시

작업걸기 위해 하루 두 번 출근
경제적 어려움 땐 아르바이트도

젊은 직장 남성들 사이에서 ‘투잡스 헌팅족’이 뜨고 있다. ‘투잡스 헌팅족’이란 직장을 가지고 있는 남성이 젊은 여성에게 ‘작업’을 걸기 위해 또 하나의 직업을 가지는 것을 일컫는다.

명문 K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계열사인 모 건설회사 대리로 있는 윤모(32) 씨는 오후 7시 이후에는 압구정동 한 카페의 사장님으로 변신한다. 대학교수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란 그는 두 달 전 뜻이 맞는 친구 5명과 함께 돈을 투자해 카페를 개업했다.

경제적 어려움은 없으면서도 굳이 자신의 돈을 투자해 카페를 운영하는 이유는 오로지 ‘작업’을 위해서다. 카페에 오는 여성 손님 중 미모가 뛰어날 경우 공짜로 칵테일을 주면서 작업에 들어간다.

윤 씨는 “요즘 여성들은 능력있는 남자를 좋아해 ‘직장에 다니면서 카페를 운영한다’고 말하면 넘어오는 여성이 상당수”라고 말했다. 현재 그는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즐겁기 때문에 힘들지 않다”며 매일 밤 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가고 있다.

물론 실제 카페 주인은 그를 비롯해 동업자 6명이지만 여성 손님들에게는 저마다 자신이 혼자 운영하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투잡스 헌팅족’은 직장을 가진 20대 후반에서 30대 사이의 젊은 남성들이 많다. 이들에게 직업 선택의 기준은 경제적인 이유보다 이성과의 만남이다. ‘돈도 벌고 여자도 사귈 수 있다’면 이들에게는 최고의 직장이다.

회사원 황모(31) 씨는 “비싼 데이트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며 여성을 사귀기보다 함께 일을 하면서 애정을 쌓는 것이 효율적인 연애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자신의 사업을 하지 못하는 일부 남성들은 ‘주말 아르바이트’를 이용하기도 한다. 특히 주5일 근무제가 확산되면서 주말에 여유가 생긴 일부 젊은 남성들은 ‘작업’을 위해 다른 임시 직장을 찾고 있다.

은행원 강모(33) 씨는 “물 좋다고 소문난 모 여대 근처의 헬스장에서 주말에만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젊은 여성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임도 보고 뽕도 따려는’ 젊은 남성들의 심리와 능력있는 남성을 선호하는 여성들의 추세, 주5일 근무제 등이 맞물려 ‘투잡스 헌팅족’은 당분간 늘어날 전망이다.
마이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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