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비난 여론 두렵지 않다...진실 못 밝힐까 두려울 뿐"

 

▲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통과를 주장하며 단식을 하고 있는 광화문 광장

[민주신문=강신복 편집위원] 17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사상가인 존 로크(John Locke)의 '사회계약설'과 2400여 년 전의 '맹자의 방벌설', 그리고 '헌법 제 1조'를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집권자 통치자는 '국민이 대통령'임을 명심해야 한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필자는 27년간 평균 10개 신문을 신문스크랩을 해 오고 있다. 지난 5월 20일자 모 신문(조간)을 꺼내 봤다. 『'국민 못 지킨 정부' 수술대 오르다』대제목(헤드라인)과 함께 '대통령의 눈물'을 소제목으로 실으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 눈물은 이제 볼 수 없다. 그 감동은 이미 사라졌다. 지난 5월 19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박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여러분께서 겪으신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세월호 참사에 대해 직접 사과를 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해경을 해체하고 안행부·해수부 기능 대폭 축소, 인허가·안전 관련 기관장에 공무원 출신 배재, 국민 안전 강화를 위해 '국가안전처' 신설…'4월 16일을 '국민안전의 날'로 신설하고 與野 민간 조사위원회를 만들고 필요하면 특검도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 그런 약속은 가물가물 해졌고 사태의 심각성은 더욱 증폭되고 있는 형국이다. 

"성역없는 진상규명 위한 특별법" 각계 각층 지지 잇따라  

지난 8월 21자 아침신문(경향)에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38일째 단식 중인 '유민 아빠' 김영오 씨(47)와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 겸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만나 이야기하는 장면이 "지금 세월호법으론 진상규명 못해" 대제목과 함께 큰 사진으로 클로즈업(close up)되어 실렸다. 결론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여야 특별법 재합의안을 거부한 것이다. 진상조사위에 수사·기소권 부여하는 안을 밀어 붙이기로 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 가족 230여명은 '긴급총회'을 열고 '진상조사위 기존 안 고수' 표결서 75%의 압도적인 찬성표로 '비난 여론 안 두렵다. 아이들 죽음 진실 못 밝힐까 두려울 뿐'이라고 유가족들의 굳은 의지를 전한 것이다.  
 이에 필자 역시 지난 20일 오전 11시 20분경에 단식 중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있는 세월호 ‘국민단식장’이 마련 된 서울 광화문 광장을 다녀왔다. 필자가 지난 4월 30일 본지 (5월 4일자 게재)에 『[현장르포] 안산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가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대한민국을 적시다!』표제로 2면 분량의 기사를 썼고 112일 만에 다시 취재를 하기 위해 광화문 현장을 찾은 것이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한 단식 현장은 대한민국의 참담한 현실을 여과 없이 민낯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각계 각층과 수많은 시민들이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한 천만 서명운동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민심은 어디로 가고 집권 통치자와 국회의원은 무엇을 하며 그 소중하고 귀한 시간만을 낭비하고 있는 지 개탄스러울 뿐이었다.   
 

▲ 37일째 단식중인 '유민아빠' 김영오 씨

남부지방에 폭우가 내리고 있다는 뉴스와 달리 서울 광화문 광장은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았다. 한 두 방울 빗방울이 10시경 내렸을 뿐 흐린 날씨였다. 취재를 하기 위해 버스로 이동한 필자는 서울신문사에서 내려 동아일보 사옥 앞 횡단보도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시민과 마주쳤다. “노원구에서 왔다”는 김영옥(40) 씨는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5월 16일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 특별법과 특검을 약속했습니다. 이제 대통령이 결단을 하세요! 참여연대’라고 쓴 손팻말(피켓)을 들고 있었다. 필자가 기자임을 밝히자 “우리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는데 방학 중에는 못 왔는데 유치원이 개원되어 이렇게 하루 2∼3시간 씩 이렇게 손팻말(피킷)을 들고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조그마한 힘이 되고자 동참했다”고 답했다.
그 반대편에 또 다른 1인 시위자는 ‘세월호 철저한 진상규명을 밝혀주세요!’라고 적힌 손팻말을 두 손으로 머리 위로 올리고 무릎과 복부로는 ‘세월호 선원 노트북에서 “국정원 지적사항” 파일발견, 세월호 실소유주가 국정원?, 세월호 진상조사특별법이 꼭 필요한 이유! 다음카페 엄마의 노란손수건’이라고 적힌 피켓을 땅에 세워 놓고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광화문 광장 양 옆 행단보도에서도 1인 시위자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손팻말에 ‘연극인은 유가족이 원하는 세월호 특별법을 지지합니다’, ‘가만히 못 있겠다’, ‘유가족이 요구하는 특별법 외면하는 새누리당은 각성하라’, ‘특별법은 국민의 명령이다, 청와대는 응답하라’는 구호를 적은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비장함을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을 뒤로 하고 이순신 장군이 내려다보는 광화문 광장 앞쪽으로 자리를 옮기자 광장 왼편엔 사람 키보다 높은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노란리본’ 탑이 지나가는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 길게 늘어선 이동식 탁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세월호 참사 철저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한 나라 건설을 위한 특별법 제정 촉구 천만 명 서명’대(臺)였다.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서명대 앞으로 모여 서명하고 있었다. 숙연한 모습이었다. 서명대 옆으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영화인 동조단식 12일차’를 알리는 게시판을 건 천막 안에서는 영화배우, 영화감독들이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천막 옆 알림판에는 배우 문소리, 고창석, 장현성, 조은지, 지 우, 영화감독 봉준호, 조원희, 황동혁, 임순례, 윤종빈 씨 등 약 100여 명이 이미 단식농성을 하고 다녀간 인증샷을 보고 있을 때 마침 주말TV드라마 속에서 본 낯익은 탤런트가 있어서 다가갔다. 그는 다름이 아니라 영화〈퇴마록〉,〈살인의 추억〉,〈스톤〉(2014)에 출연했고 지난 2011년 MBC 창사특별기획 《빛과 그림자》에서 조태수 역을 맡은 배우 김뢰하 씨(49)였다. 필자가 신분을 밝히자 “수고가 많다”며 “어제 11시부터 단식농성에 참여했고 지금 끝났다”며 “일정 때문에 더 참여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했다. 
 

▲ 지난 7월 23일, 세월호 100일 특별법 촉구 국민행진에 참석한 박영선 비대위원장과 문재인 상임고문.

필자는 그들 뒤로 하고 그 옆 국민단식농성장에 수많은 시민들이 동조 단식을 하는 것을 보고 숙연한 마음으로 앞을 지나 정중앙에 있는 천막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천막에는 지난 19일 현재 진도로 내려가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서 단식 16일차에 접어든 가수 김장훈 씨가 있었다. 단식 37일차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를 걱정했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국회의원(전 대통령후보)도 함께 있었다. 단식 38일째를 맞은 김영오 씨는 수척한 얼굴로 간간히 위로하러 온 시민, 시민단체 사람들과 악수를 하며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생명의 위험도 감수한 채 오직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 앞에 필자는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하지 못했다. 다만 문재인 의원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요구하자 문 의원은 윤건영 보좌관을 통해 대신하게 했다. 윤 보좌관은 “의원님께서는 어제 11시에 단식 농성에 참여하셨고 오늘도 계속하실 것 같다”며 답했다.
 필자가 점심때도 지났는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또 다른 천막을 지나는 데 낯익은 사람들이 보였다. 농성장 좌측 천막 안에 TV에 자주 출연하는 지리산 청학동 김봉곤 훈장과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단식농성에 참여하고 있었다. 다가가 인사를 건네며 “취재차 왔으며 인터뷰에 응할 수 있느냐”고 묻자 옛날 서당 훈장모습을 한 김봉곤 훈장은 “오늘 새벽 6시에 청학동을 출발하여 5시간 30분 만에 여기에 도착하여 국민단식농성에 참여하게 됐다”며 “세월호 특별법이 유가족, 국민의 뜻대로 제정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곽노현 전 교육감 역시 김봉곤 훈장처럼 “세월호 특별법은 특검을 통해 책임자 처벌은 물론 안전한 국가를 만드는데 시금석이 될 것이라”말했다. 천호선 정의당 대표도 인터뷰를 통해 “성역없는 진상조사를 위한 유가족의 뜻이 담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민단식 농성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 8윌 7일 세월호 특별법 1차 여야 합의 후 국회의사당  세월호 유가족 딘식농성장 폐쇄 후 모습

"낮은 곳의 아픔 보듬어 주던 교황의 리더십 필요할 때" 

광화문 광장을 떠나 260번 버스를 타고 국회 앞쪽에 도착해보니 지난 7월 24일 세월호 참사 100일째 되는 날이 생각났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국민대행진’이다. 세월호 참사 가족과 국민 4∼5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23일 오전 9시 안산 합동분향소를 출발, 1박 2일에 걸쳐 서울광장 합동분향소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일정으로 박영선 원내대표를 비롯한 문재인, 도종환, 박홍근 등 15명의 국회의원이 이 행진에 참여했다. 마지막 이튿날 필자 역시 참여하게 되었다. 오전 11시 50분부터 마지막 중간 기착지인 신도림역 앞에서 신경민 최고위원 일행과 함께 합류하여 국회의사당까지 약 4km를 도보행진을 했다. 폭우가 쏟아진 가운데 이날 행진 도중에 박영선 원내대표와 문재인, 도종환, 박홍근 의원에게 필자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건에 물었다. 이때만 해도 이들 국회의원 모두가 한결같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이렇게 국민대행진을 하는 것 아니냐”며 “특검을 통해 잘못을 저지른 관계자를 처벌하고 안전한 국가사회를 만든 게 우리 당의 목표라”고 했지만 7·30보궐선거에서 참패를 한 새정치민주연합이 보궐선거가 끝나자마자 지난 8월 7일 ‘세월호 특별법 관련 특별검사 추천권을 현행법대로 한다’고 합의 했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여론은 새정치민주연합과 박영선 원내대표에게 화살이 빗발쳤다. ‘유가족 입장을 반영하겠다’던 박 원내대표가 기존의 입장을 바꿔 합의했다는 사실에 많은 국민들은 실망했고 충격을 받았던 게 사실이고 여야 원내대표가 7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지난 19일 세월호 특별법 재합의 안을 발표했지만 이것마저 유가족들은 거부했다. 김무성, 이완구, 박영선 원내대표 등은 이로 인해 여야 정치 리더십이 실종, 침몰하였고 세월호 특별법이 장기 표류하게 생겼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가 지난 4월 30일 본지에 실은 기사 일부를 실으면서 마칠까한다. 『구조 174명, 사망 205명, 실종 97명, ‘꼴도 보기 싫은 정부’… 돌려세워진 대통령의 조화, 성난 민심에 세월호 침몰 기사를 볼 때 마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억장이 무너진다.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온나라가 통곡하였고 슬픔에 잠겼다. 세상에 어찌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믿기지 않은 인재가 일어났다. 경악과 분노를 넘어 망연자실(茫然自失)했고 두려워 어찌 할 바 모를 공황에 빠졌다. 17살 어리고 여린 꽃망울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엽고 사랑스런 자식들이 입시지옥에서 잠시 벗어나는 즐거운 수학여행 길에 까르르 웃고 장난치며 난생 처음 타보는 유람선에 몸을 싣고 동료 학우들과 파도치는 푸른 바다와 성산 일출봉, 한라산의 멋진 광경을 학창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담으며 재잘대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려는 부푼 꿈도 잠시, 칠흑 같은 공포와 무서움, 차디찬 물속에서 사투를 버려야 했던 내자식, 내동생들이 못난 어른들의 잘못으로 피지도 못하고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마감해 갔다. 누가 이 나라의 희망이자 동량들을 차가운 몰속에 내버렸단 말인가. “엄마 보고 싶어” “힘들어. 살려줘. 무서워. 구조 좀”』그들의 천진난만한 웃음과 죽음의 공포에서 울부짖는 그들의 모습이 재차 클로즈업 되고 있어 더욱 더 안타깝고 가슴 시리다.
통곡으로 다시 살아나는 슬픔을 어찌 감내야만 하나 아니 물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식을 잃은 어미의 심정을 헤아려 꽉 만힌 경색정국의 돌파구를 마련해줘야 한다.
최근 4박5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더욱 낮은 곳으로 내려와 상처받은 사람과 소통하고 보듬어 주는 모습을 통해 어렵고 지친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정치권도 하루빨리 유가족, 특히 광화문광장에서 목숨을 건 39일째 단식 농성 중인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단식투쟁을 할 수 밖에 없는 근원적인 불신의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게 국민을 위하는 길이고 안전한 국가사회를 만드는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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