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으로 끝난 기러기 인생

뒷바라지 딸 유학 실패, 아내에 대한 서운함이 복수심으로 발전
‘가산탕진’한 아내에 대한 복수심에 친딸 상습 성폭행해 충격

수년간 세 딸의 해외 유학생활을 뒷바라지해오던 50대 기러기 아빠가 부인과 딸의 실패한 해외 유학생활에 배신감과 박탈감을 느껴 친딸을 귀국시킨 뒤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경기도 분당경찰서는 친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김모(50)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 씨는 지난 2003년 5월 경기도 성남시 자신의 집에서 당시 17살이던 친딸을 성폭행하는 등 3년여 동안 수십차례에 걸쳐 딸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조사에서 김 씨는 딸의 해외 유학을 뒷바라지하면서 아내와 딸에 대한 서운함이 커져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비극으로 끝난 기러기 가족의 사건 전말에 대해 알아본다.

한달 수입 1,000만원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던 김 씨 가족의 불행은 자녀들의 교육문제로 인한 아내와의 갈등에서부터 시작된다. “차라리 한국에서 고액과외를 시키는 편이 어떠냐”는 김 씨의 의견과는 달리, 아내는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해외유학을 다녀와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아내의 고집을 꺾지 못한 김 씨는 지난 2002년 아내와 중학교 3년생이던 큰딸(당시 16세)과 초등학생 두 딸 등 일가족 4명을 캐나다 토론토로 해외 조기유학을 보내고 일명 ‘기러기 아빠’로 한국에 남았다.

기러기 아빠 생활

김 씨 일가의 유학 및 기러기 아빠 생활은 처음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김 씨는 “혼자 벌어서 매달 고액을 송금하기도 어려우니 현지에 집을 임대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지만 아내는 “집을 구하는 것이 낫다”며 극구 한국의 아파트를 처분, 현지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집을 구입했다.

하루아침에 조그마한 단칸방으로 내몰린 김 씨. 하지만 ‘자식들이 잘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하루하루를 이겨냈다.

학원강사였던 김 씨는 아이들의 교육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퇴근 후에는 과외 아르바이트까지 감행해 많을 경우 한달에 600여만원을 벌었지만 아내에게 송금하기로 한 800만원에 못 미쳐 부족한 돈을 구하기 위해 부모와 친지를 찾아다니며 손을 벌려야만 했다.

기러기 아빠생활이 길어질수록 김 씨는 외로움과 함께 가족들에 대한 서운함이 깊어져 갔고, 이로 인해 기러기 아빠에 대한 삶의 희망도 점차 잃어갔다. 특히 자신은 가족을 위해 갖은 고생과 수모를 견디며 살고 있는데 반해 수억원 짜리 고급주택과 고급 승용차를 굴리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아내에 대한 반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날이 갈수록 이들 부부 사이는 점점 멀어져 갔고 심한 다툼도 잦아졌다. 급기야 김 씨는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했으나 이마저 거절당했다.

참다 못한 김 씨는 캐나다 가족을 찾아갔고, 아내와 심한 다툼이 벌어졌다. 큰딸의 신고로 현지 경찰이 출동하는 바람에 김 씨는 격리조치까지 당했다. 당시 그의 아내는 김 씨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1년에 한두 번씩 캐나다에 찾아오는 대신 그 경비까지 송금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운함이 복수심으로

그러던 2003년 어느 날, 김 씨는 “경제적으로 어렵기도 하고 큰딸이 유학생활을 잘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으니 직접 키우겠다”며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큰딸을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국내에 들어와서도 공부보다는 외박을 자주하는 큰딸. 김 씨는 아이들이 잘되길 바라며 지금껏 혼자 한국에 남아 고생했던 것이 억울하기만 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 김 씨의 아내에 대한 복수심은 딸에 대한 상습적인 성폭행으로 왜곡돼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 씨의 큰딸은 이때부터 2년 간이나 아버지의 성폭력에 시달리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지난 2005년 캐나다의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돌아갔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더 이상 유학생활을 계속할 수 없게 되자 김 씨 아내와 세 딸은 지난 5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가족들이 함께 사는 와중에서도 김 씨의 딸에 대한 성폭행은 계속됐다. 아버지의 성폭력을 견디다 못한 큰딸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어머니에게 털어놓았고, 이후 김 씨는 아내와 부부싸움을 한 뒤 가출해 도피행각을 벌이다 지난 10월 10일 경기도 평택에서 체포됐다.

김 씨는 경찰조사에서 “아내에 대한 복수심과 큰딸에 대해 걸었던 기대감이 무너진 허탈함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것 같다”며 “내가 왜 그랬는지 생각하면 귀신이 씌였던 것 같다”고 뒤늦게 범행을 후회했다.

경찰에 따르면 유학에 실패하고 돌아온 아내와 딸들은 갖고 있는 재산을 모두 써버려 현재 성남의 한 반지하 월세방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기러기 가족의 문제가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이 사건을 수사해보니 실상은 더 심각했다”며 “한국의 교육문제가 빚은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한탄했다.

한편 김 씨 아내는 “김 씨의 일방적인 진술로 상당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영 기자


‘절도중독’ 여인의 인생유전

지난 9월 27일 오후 2시30분 서울 강남 N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있던 주부 박모(여·49) 씨 곁에 나이 지긋한 한 중년 부인이 다가갔다. 여인은 박 씨 곁에서 잠시 물건을 고르는가 싶더니 갑자기 박 씨의 핸드백으로 손을 가져갔다.

순식간에 핸드백 지퍼가 열리며 현금 22만원이 든 지갑이 여인의 손에 딸려 나왔다. 지갑을 빼든 여인이 황급히 자리를 뜨려는 순간, 멀찌감치 떨어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경찰이 여인을 덮쳤다. 경찰은 수개월 전부터 서울 전역의 백화점에서 소매치기 신고가 잇따르자 범인을 잡기 위해 전담반을 구성하고 2개월 째 잠복근무 중이었던 것.

이날 경찰에 붙잡힌 범인은 임모(여·57) 씨. 경찰조사 결과 임 씨는 지난 9개월 동안 31차례에 걸쳐 2,600만원을 훔친 것으로 드러났다. 임 씨의 소매치기는 최근에 시작된 일이 아니었다.

어린시절에 소매치기를 배운 임 씨는 1970년대 여성 소매치기단 애순이파에서 활동했고, 1991년에는 언니 등 3명과 함께 일본 백화점으로 소매치기 원정을 떠났다가 현지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소매치기 인생이 남긴 족적은 절도 등 전과 12범이라는 기록으로 남았다.

이번에 붙잡힌 임 씨는 누적 범행에도 불구하고 구속을 면했다. 검찰은 임 씨의 최근 범행을 일종의 ‘정신병’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임 씨가 정신병 치료를 받은 적이 있고 절도 전과는 있지만 실형을 산 지 오래됐다는 점을 고려했다”며 “입원치료하겠다며 아들이 제출한 탄원서도 참조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 임 씨의 환경은 소매치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유복한 것으로 밝혀졌다. 아들은 규모가 큰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으며, 며느리는 모 방송사 아나운서로 활동 중이다. 임 씨의 아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절도중독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 나은 것으로 믿고있었는데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해 가족도 괴롭다”며 “이번에는 반드시 완치될 때까지 치료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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