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은 엘리트, 심성은 파렴치


 

구인광고 면접 보러 온 여성 잇따라 성폭행
“경영방침이다”며 모텔 끌고 간 뒤 못쓸 짓

면접을 보기 위해 찾아온 20대 여성들을 잇따라 성폭행한 파렴치범이 최근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부장검사 차동언)는 지난 9월6일 미취업 여성들을 꾀어내 성폭행한 차모(39·무직)씨를 강간 및 강간치상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차씨는 올 6월 인터넷 취업정보 사이트에 “여직원을 채용한다”는 거짓 광고를 낸 뒤 이를 보고 찾아온 박모(23·여)씨 등 여성 3명을 강제로 욕보인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 전말에 대해 알아본다.

의사집안의 막내 외아들로 태어난 차씨는 유복한 환경 속에서 남부럽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냈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으며, 실수를 하더라도 조용히 무마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는 엘리트 누나들의 그늘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 관계자는 “아버지와 누나들은 모두 사회에서 인정받는 위치에 있는데 유독 자신만 소외당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며 “특히 큰누나의 경우 유명 피부과 전문 프랜차이즈 병원의 원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어 “심지어 차씨는 장기간 당뇨병을 앓아 발기부전에 매우 예민한 상태였다”며 “자멸감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성도착증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검찰에 따르면 차씨는 지난 1998년과 99년 강간 혐의로 각각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았다. 이른바 돈으로 사건을 무마시킨 것이다. 강간죄는 친고죄로 분류돼 쌍방 합의가 이뤄지면 공소권도 자연 소멸된다.

2001년 10월에는 “S대학교병원 피부과 의사”라고 사칭해 만난 한 여성을 자신의 무쏘 승용차에 강제로 태워 성폭행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피해여성의 나체사진을 찍어 “경찰에 신고하면 인터넷에 유포하겠다”고 협박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차씨는 성폭력 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지만 이 또한 쌍방 합의로 두 달(55일)만에 풀려났다.

세살버릇 여든까지

한동안 자숙하며 지내던 차씨. 하지만 그의 고질병은 집행유예 만기일을 몇 달 앞두고 또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올 6월 차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인테리어 업체 D사의 이름으로 유명 인터넷 취업정보 사이트에 ‘19∼25세 미만의 미혼 여성을 디자이너로 채용한다’는 내용의 모집공고를 냈다.

하지만 D사는 이미 2002년 12월 관할세무서에 폐업신고를 해 신입사원을 채용할 필요가 전혀 없는 회사였다. 애초부터 면접을 보기 위해 찾아온 입사희망여성을 성폭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지난 6월24일 차씨가 쳐놓은 덫에 첫 번째 희생양이 발생했다. 23살의 박씨는 모집공고를 본 뒤 면접을 보기 위해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위치한 D사를 찾아갔다.

차씨는 사무실을 방문한 박씨에게 자신을 인사담당 팀장이라고 소개한 뒤 “우리회사는 팀워크를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가족처럼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면접자에게 밥과 술을 대접하는 것이 사장님의 경영방침이다. 앞서 면접을 본 사람도 술을 마시면서 직원들과 친해져 취업이 확정시 됐다”며 술자리의 불가피함을 강조했다.

또한 차씨는 “나는 인테리어업에 아는 사람이 많아 우리 회사에 취직이 안 되더라도 다른 직장을 알아봐 주겠다”며 미취업 여성들을 꾀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박씨는 곧 만취했고, 이를 눈치 챈 차씨는 “차를 운전해야 하니 회사 앞 모텔로 자리를 옮겨 술 한잔 더하자. 회식 때도 종종 이렇게 마시곤 한다”며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박씨를 모텔로 유인하는데 성공한 차씨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반항하면 죽여 버리겠다. 죽는 것이 무섭냐, 성관계 갖는 것이 무섭냐. 진짜 쓰레기가 무엇인지 보여 주겠다”고 협박한 뒤 인사불성의 박씨를 강제로 성폭행했다.

박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준 차씨는 두 번째 면접을 보러온 윤모(25·여)씨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한모(19·여)씨에게도 비슷한 수법으로 치욕을 안겨줬다.

특히 그는 한씨를 성폭행한 다음 날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네 이력서에 집 위치가 나와 있다. 다시 만나주지 않으면 강간사실을 가족과 남자친구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해 또 다시 성폭행 하는 등 악한의 극치를 보여줬다.

제 꾀에 ‘들통’

차씨의 파렴치한 행동은 그와 5년간 동거해온 A씨의 제보로 막을 내렸다. 그동안 차씨는 피해 여성들을 협박해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다”는 진술을 하게 한 뒤 이를 MP3로 녹음해왔다. 나중에 여성들이 자신을 고소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묘수였다.

하지만 차씨의 동거녀가 우연한 기회에 문제의 녹음파일을 듣게 되면서부터 상황이 역전됐다. 동거녀는 차씨와 피해여성을 간통 혐의로 고소했고, 수사과정에서 차씨가 여성들을 강간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와 관련 검찰 관계자는 “현재 차씨는 ‘난 당뇨병을 앓고 있어 상대방의 도움 없인 성관계를 가질 수 없다”고 말하며 동의하에 성관계를 가졌음을 주장하고 있다”면서 “아마 법정에서도 이러한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지영 기자


[미니 인터뷰]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 관계자
“뛰어난 화술로 농락”

-피해여성은 밝혀진 3명밖에 없나.
▲당시 차씨는 30여명의 미취업 여성을 상대로 모두 면접을 봤다. 실제로 차씨의 사무실을 수색한 결과 30여장의 이력서를 압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진 박씨와 윤씨, 한씨 이외의 피해여성은 나타나지 않은 상태다.

-피해여성들은 왜 모텔까지 따라가게 됐나.
▲취업난이 극심한 가운데 타 기업보다 근무조건이 월등히 좋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입사희망자로 하여금 ‘꼭 이 회사에 다녀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할 만큼 차씨의 화술이 뛰어났다고 한다.

-면접 볼 당시 수상한 낌새는 없었나.
▲피해자들에 따르면 3∼4시간 씩 면접을 봤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디자인에 관한 얘기는 거의 없었고, 애인은 있느냐, 혼자 사느냐, 취직을 하면 2∼3일씩 출장을 가야하는데 가능하느냐는 신변잡기적인 내용만 물었다고 한다.

-유사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이유는.
▲차씨의 경우 ‘돈이면 다 해결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성폭력 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지만 이 또한 돈으로 해결을 봐 55일만에 풀려났다.

-이번 사건 또한 죄값을 치르지 않고 풀려날 수 있다는 얘긴가.
▲강간죄로 인한 집행유예 기간이 남아있는 가운데 또 다시 동일 범죄를 저질러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합의를 했다손 치더라도 한씨의 경우 강간죄뿐만 아니라 강간치상 죄까지 묶여 있어 실형을 선고받지 않을까 생각된다.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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