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코리아’ 열풍 ‘현대증권’ 인수…자본금 ‘4조’ 업계 3위 도약
한미 합작 ‘연합SB’가 전신…‘투톱 체제’로 안정 속 경쟁력 강화

[민주신문=조성호 기자]

서울 여의도 KB증권 사옥. © 민주신문 조성호 기자
서울 여의도 KB증권 사옥. © 민주신문 조성호 기자

국내 증권가의 시련의 계절이 길어지고 있다. 지난해 활화산 같이 타오르던 국내 주식시장은 올해 들어 급격히 냉랭해졌다. 코스피지수는 올해 상반기에만 무려 20% 가까이 빠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습 사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 등 대내외 악재로 경기 침체 우려가 높아지자 투자 자본이 자연스럽게 빠져나가고 있어서다.

증권사들 수익도 반토막나고 있다. 지난해 ‘빚투(빚내서 투자)’ 열풍과 ‘동학개미’ 운동으로 역대급 수수료 잔치를 벌였지만 오히려 부메랑이 돼 돌아온 셈이다.

그동안 ‘호황’ 시기를 보낸 증권가는 최근 사명 변경, 사옥 이전 등에 나서며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에 국내 주요 증권사들의 탄생 역사와 과거를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 한미 합작증권사가 실질적 모태

KB증권은 1962년 설립된 국일증권을 전신으로 하고 있다. 다만 실질적인 모태는 1995년 설립된 연합에스비(SB)증권이다.

연합에스비증권은 당시 미국 3대 증권사 중 하나인 살로먼브라더스와 아남산업‧에스콰이어‧미륭상사 등 국내 5개 기업이 공동으로 설립한 ‘합작증권’이다. 설립 후 같은 해 ‘한누리살로먼증권’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앞서 1990년 당시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은 외국 유수증권사의 선진금융기법을 도입해 국내 증권산업의 선진화와 대외경쟁력을 제고시키기 위한 합작증권사 설립 허용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한누리살로먼증권은 동방페레그린증권에 이어 국내 두 번째 합작증권사였다. 살로먼브라더스가 지분 49%를, 국내 5개 기업이 51%의 지분을 보유했다.

당시 재경원은 “국내 증권산업의 선진화와 대외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내증권산업의 개방정책에 부합하고, 한미간 자본협력관계 증진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7년 살로먼브라더스가 트래블러스그룹(현 씨티그룹)으로 편입된 후 경영권을 국내기업으로 넘기면서 사명도 ‘한누리투자증권’으로 변경했다.

이후 2008년 KB국민은행이 한누리투자증권을 인수하면서 ‘KB투자증권’으로 거듭나게 됐다.

◇ 빼놓을 수 없는 이름 ‘현대증권’

KB증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바로 ‘현대증권’이다. KB투자증권과 현대증권이 합병하면서 지금의 ‘KB증권’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현대증권은 1962년 설립된 국일증권이 모태다. 1975년 기업공개(IPO)를 통해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상장된 국일증권은 1977년 현대그룹으로 편입된 후 1986년 현대증권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후 현대증권은 1988년 미국 뉴욕사무소, 1989년 홍콩 사무소, 1992년 런던 현지법인 설립 등 해외시장 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특히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3월 ‘저평가된 한국을 사자’라는 바이코리아 펀드는 출시 4개월 만에 수탁액 10조 원을 돌파한 데 이어 1년도 채 안 돼 30조 원까지 넘어서는 등 국내 주식형 펀드 열풍을 불러왔다.

이 당시 현대증권의 실적(1999년 4월 1일~2000년 3월 31일)을 살펴보면 2조2841억 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이중 수탁수수료 등의 수익액만 1조3852억 원에 달했다. 영업이익은 4562억 원, 당기순이익은 3052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1년전(1998년 4월 1일~1999년 3월 31일)과 비교하면 매출액은 146%, 영업이익 8.9% 늘어난 수준이다. 특히 당기순이익의 경우 무려 4배 가까이 급등했다.

바이코리아 펀드는 증시뿐 아니라 당시 외환위기 침체로 유동성 위기에 놓은 기업들의 주식을 끌어안는 등 한국경제의 큰 힘이 됐다는 게 주된 평가다. 아울러 현대그룹 계열사의 주식도 적극 사들이면서 그룹의 돈 줄 역할도 담당했다.

대우 사태와 IT 버블 붕괴 영향 등으로 바이코리아 펀드는 수익률 마이너스(-) 70%까지 곤두박질쳤고 수탁액도 쪼그라들면서 신화는 1년 만에 무너졌다.

악순환 속에서도 현대증권은 사이버영업소 개설, 투자자문업‧선물업‧신탁업 등을 추가하며 사업을 지속했고, 2013년 10월에는 종합금융투자사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해운경기 장기침체로 인한 그룹사의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었다. 현대그룹은 당시 현대상선(현 HMM) 유동성 위기 해결을 위해 현대증권을 비롯해 금융계열사(현대자산운용‧현대저축은행)를 시장에 내놨다. 종금사로 지정된 지 불과 두 달 만이다.

매각 절차는 약 3년간 이어졌다. 그동안 일본계 사모펀드인 ‘오릭스PE’가 인수를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KB금융지주와 한국금융지주, 홍콩계 사모펀드가 참여하며 매각과정은 혼돈 속에 빠졌다.

2016년 5월 KB금융은 1조2500억 원의 인수가를 제시하며 현대증권 인수에 성공했다. 이후 KB금융은 같은 해 12월 KB투자증권을 현대증권에 흡수 합병시키며 사명을 ‘KB증권’으로 변경했다. 이로써 현대증권은 설립 30년 만에, 코스피상장 4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박정림(왼쪽), 김성현 KB증권 각자대표. © KB증권
박정림(왼쪽), 김성현 KB증권 각자대표. © KB증권

◇ 변화보단 안정 속 ‘투톱체제’ 유지

종금사 지위를 갖고 있던 현대증권이 KB투자증권을 흡수합병하면서 자기자본 약 4조 원의 대형증권사가 탄생하게 됐다.

합병된 KB증권은 자기자본 3조9247억 원으로 당시 미래에셋증권(7조8373억 원), NH투자증권(4조5288억 원)에 이어 업계 3위로 올라섰다. 2019년 6월에는 국내 증권사 중 세 번째로 발행어음 사업자를 따내기도 했다.

KB증권은 출범 초부터 현재까지 투톱체제를 유지 중이다. 출범 초 KB증권은 윤경은‧전병조 대표를 내세워 합병 법인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는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한 그룹 지주사의 판단이다. ‘한 지붕 두 가족’이 모인 만큼 조직 내 균형 유지와 양사 간 문화 통합에 초점을 맞췄다는 평가다. 윤 대표는 현대증권, 전 대표는 KB투자증권에서 각각 대표직을 역임했다.

윤‧전 대표가 물러난 후 KB증권은 2019년 박정림‧김성현 각자대표를 새롭게 선임했다. 두 대표는 지난해 임기만료를 앞두고 한 차례 더 유임되며 5년째 KB증권을 이끌게 됐다.

1963년생 동갑내기로 ‘토끼띠’인 두 대표는 올해 지속 성장을 위한 키워드로 ‘실행’을 꼽았다.

김성현 대표는 “올해는 특히 더 냉철한 시장분석과 상황판단이 필요하다”며 “협업을 통한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실행에 집중하는 KB증권이 되자”고 당부했다.

박정림 대표는 “가장 신뢰받는 평생금융파트너는 변함없이 추구해야 할 KB금융그룹의 비전이자 가치”라며 “대면채널뿐만 아니라 디지털채널에서도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는 자산관리 넘버원 플랫폼으로 도약하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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